2021-11-23 10:05:13
요즘에 틈틈이 옛 고전을 조금씩 접해 보고 있다.
동양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접해 봤을, 또는 접해 봐야 할 고전으로는 단연 공자의 논어가 아닐런 지.
옛 가르침이라고는 해도, 꽤 좋은 내용들이 많이 있었다.
사후나 신을 논하는 종교나, 형이상학 적인 도가 철학과는 다르게, 현실적으로 인간이 갖추고 배워야 할 좋은 덕목들이 많았다.
허나, 개 중에는 요즘 시대를 살아 가는 현대인들 눈높에 맞지 않는, 고전이라고 보기엔 다소 수준이 미흡한 부분들도 더러 있었고.
지금 다루고자 하는 내용 중에는 내가 논어를 읽으면서 가장 어처구니가 없었던 구절 하나를 다뤄 보기로 했다.
공자의 집에 누군가 찾아 왔는데, 아마 제자 중에 한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자는 그 제자가 행실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시중을 드는 제자에게 부재 중이라고 돌려 보내도록 지시한다.
선생이 안 계신다는 답변을 듣고 발길을 돌리는 찰나, 공자는 자택 안에서 유유히 거문고를 튕기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즉, 없다는 것은 핑계일 뿐, 내가 왜 너를 거짓말로 돌려 보내는 지를 생각해 보고 반성하라는 뜻이란다.
이런 자가 무려 동양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한 사상가인 지, 참으로 치졸해 보였다.
제자의 행실이 좋지 않다면, 그 것을 바로 잡도록 교육을 하는 것이야 말로, 공자 당신이 중요하게 할 일이 아니었나.
행실이 안 좋다고만 하지 말고, 일부러 가르침을 받기 위해 찾아 온 그 제자를 맞아 들여서, 그의 행실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가르침을 줄 수 있어야지, 그 걸 그런 식으로 졸렬하게 시종을 시켜서 없다고 해 놓고, 뒤에서는 거문고나 튕기고.
이 게 뭐 하는 짓인 지, 참.
제자를 편애하는 것인 지, 착한 제자만 가르침을 주고, 그렇지 않은 제자는 내 팽개치는 선생인 지, 저렇게 도량이 좁은 자를 어떻게 동양의 대사상가로 칭송할 수 있는 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기 행실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그렇게 행동하고 다닐 자는 없다.
그 걸 일깨워 줄 수 있는 자가 스승인데, 정작 가르침을 청해 일부러 찾아 온 제자를 따뜻하게 맞이해서 잘 가르치지는 못 할 망정, 그 걸 치졸한 방식으로 내 치다니.
그렇게 해 놓고선, 그 제자에겐 자기 행실을 돌아 보도록 하는 방편이라나.
타인의 티끌을 지적하기 전에, 본인의 그러한 행실부터 돌아 보길.
학문을 가르치는 선생을 넘어, 인생, 정신적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라고 한다면, 못난 제자의 티끌도 스승의 감내하고 거둘 수 있어야 한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들은, 공자에 대해 다시 재발견해야 한다.
그의 가르침이 지금도 유효한 것인 지, 그의 가르침이 정녕 흠없는 진리인 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