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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2. 2023

재즈는 어렵고 난해하다

2021-02-05 00:32:15

난 재즈를 몰랐다.

록과 블루스, 팝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뭔가 그 음악들이 좋기는 해도 정형화된 틀 안에 충실하다는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주어진 키와 박자, 코드, 기승전결의 진행.

좋은 것이 널리 쓰이게 마련이고, 좋으니까 널리 쓰이는 것이지만, 좀 뭔가 틀을 깨는 획기적인 음악에 대한 호기심이 들기 시작했고, 그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 재즈이다.


현대 음악에 있어 재즈가 중요하다는 말은 익히 들어 봤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해괴하고 이상한 음악처럼 들렸다.

재즈가 광범위한 영역과 역사를 형성할 정도로 발전된 음악이고, 나 역시도 재즈를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을 했다.


록과 팝은 쉬운 게, 대표적인 아티스트를 통해 접근하기 쉬웠다.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 건스 앤 로지스는 접해 보겠다는 생각을 못 할 정도로 자연스레 섭렵했는데, 재즈의 거장이라는 아티스트들이 너무 많았고, 재즈 안에서도 군소 장르가 있다던데, 뭐가 뭔 지도 파악이 쉽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스레 재즈에 재미를 들리게 된 아티스트가, 바로 테이크 파이브로 유명한 더 데이브 브루벡 쿼르텟이었다.

블루 노트의 유명한 멜로디로 유명한 재즈의 명곡, 여유있으면서도 운치있는 곡으로 재즈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지금은 더 데이브 브루벡 쿼르텟의 음반을 10 장 정도를 제법 모았으며, 아직 못 들어 본 트랙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참 기대가 된다.

재즈는 남부와 동부가 유명한 걸로 알고 있는데, 의외로 서부 출신이란다.

이 것이 재즈의 참 묘미구나라는 것을 느낄 정도로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외에도 척 맨지오네, 허비 핸콕, 스틸리 댄, 듀크 엘링턴 등의 아티스트들을 그런 대로 좋게 즐기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재즈는 재미없고 괴이한 음악이라는 느낌을 불식시키진 못 했다.

첫 째로 제프 벡, 그리고 더욱 그런 생각을 아주 확고하게 만든 이가 마일즈 데이비스였다.

제프 벡의 블로우 바이 블로우가 상당한 재즈 기타의 명반이라던데, 난 그렇게 들리지가 않는다.

별 재미가 없다.

제프 벡 자체에 길을 들이질 못 했다.

제프 벡이 3 대 기타리스트라고?

모르겠다.

에릭 클랩튼과 지미 페이지는 조금 알겠는데, 제프 벡은 영 모르겠다.


재즈 사에 빠질 수 없는, 굉장히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아티스트가 마일즈 데이비스이다.

나 역시도 재즈 밖을 빙빙 겉돌 때도 마일즈 데이비스가 항상 재즈 계에 중요한 아티스트로 거론되고 있는 것을 모르진 않았다.

그래서 요 사이에 제대로 대표적인 명반, 카인드 오브 블루를 덤벼 보았는데, 글쎄올시다.

재즈가 휘갈기는 음악이라고는 하지만, 듣고 나면 뭔가 남는 것이 없다.

록과 블루스에도 애드 립은 있게 마련이고, 자유롭게 자신의 악상을 표현한다 해도, 이렇게 난해하고 막연하게 들리진 않았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그보다 더욱 형식이 흐물하고 마구 휘갈기는데, 내가 이 걸 왜 듣고 있는 지를 모르겠다.


코드가 뭔 지도, 스케일이 뭔 지도, 곡의 기승전결이란 것도 없는 것 같다.

소위 말해, 후리한 느낌은 좋지만, 너무 풀어 놓았다는 느낌이다.

뭔가 곡의 형식, 뼈대가 없다.

카인드 오브 블루의 첫 번째 트랙, 소 왓이 그나마 그래도 들리는 편이고, 추후에도 앨범을 통으로 계속 들어 볼 생각은 있다.

도회적인 느낌의 재즈가 괜찮다는 느낌은 건졌다.

지금 쓰면서 듣고 있지만, 데이비스의 다른 앨범인 빗치스 브류는 뭐 전위적인 느낌이다.

내가 재즈에 대해 갖고 있던 난해함, 막연함을 덕 분에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 줬다.

이 건 뭐, 거의 스튜디오 정규 앨범이 아니라, 즉흥 잼을 녹음해 놓은 것 같다.

내가 어렵게 느끼는 재즈의 전형이었다.


아, 이런 건 있다.

데이비스의 앨범을 듣고, 다른 재즈나 기존에 너무 들어서 식상하던 록, 팝이 더욱 신나게 들린다.

어쩌면, 나는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이 물린다는 느낌이 들 때면, 마일즈 데이비스의 앨범을 들을 수도 있겠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일부러 맛없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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