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속선의 삶

기타 치지 마라, 못 써

2021-02-16 00:07:12

by 속선

아직 고등학교 다닐 때였을 거다.

그 때가 아마 명절 때였던 것 같은데, 아무튼 친척 집에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남자들은 화투나 치고 TV나 보면서 놀고 있었고, 여자들은 주방에서 분주하기 바빴다.

명절 때의 일상이란, 그저 특집 방송이나 보면서 먹고 노는 것 말고는 없었다.

나 역시도 그 때를 그저 실없이 보내고 있었는데, 친척 어른들과 자연스레 말이 섞일 수 밖에 없다.

뭐 하고 지내냐, 진로는 어떠냐, 뭐 그런 얘기였겠는데, 이런 저런 얘기를 해다가 내가 기타를 배우고 있다는 얘기를 어느 할머니에게 엉겁결에 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그 친척 할머니는 내 손을 부여 잡으며, "그런 거 하지 마, 못 써.", 안쓰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 뒤에 이어지는 얘기는 당연히 공부에 매진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식의 뻔한 설교가 이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냥 옛날 어른이길래 그렇게 얘기하시는가 보다, 하고 넘기고 말았고, 충분히 예상 가능한 반응이기도 했다.

옛날 분들은 잘 교육시켜서 집안 중에 출세자가 나오는 것이 으뜸이었으니까.


먼 친척 뻘이었지만, 그래도 그 때 어른들의 기타, 직업적 음악에 대한 인식이 그랬다.

딱 '딴따라', 바로 그 것이었다.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배짱이처럼 시간이 까 먹으면서 날나리 되기 쉽상인.


난 그 때 기타와 음악말고는 나를 매료할 만 한 것은 없었다.

쉽게 말해, 프로 기타리스트를 꿈꾸던 시절이었다.

직업인으로 먹고 산다는 미영 하에, 정말 열심히 연습을 했다.

다만, 길을 잘못 들어 섰을 뿐.


지금 다시 기타치면 딴따라 된다는 논리에 대해 다뤄 보자.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떨 지.


유수의 기타리스트들은 많다.

딴따라라, 기준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단지 무대에 올라 흔한 대중음악이나 한다는 의미이면, 제 아무리 일류의 기타리스트라도 딴따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엄청난 인기와 부유함을 얻었다고 할 지라도 말이다.

그렇지 않고 이류, 그보다 못 한 삼류로 마이너, 인디 무대나 뛰면서 겨우 근근히 먹고 사는 생계형 뮤지션을 뜻한다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보수적인 어른들이 썩 반기지는 않을 법 하다.


"기타쳐서 뭐 먹고 살래?"

"그렇지 않아요, 판을 내고 방송국에 나가면, 엄청 돈벌고 출세할 수 있어요!"

"네가 뭘로 출세를 해! 그냥 학교 다니면서 취직이나 해!"


나야 기타에 미쳤고, 그 당시에는 기타가 낭만이었고, 밴드가 하고 싶었다.

지금은 위의 대화처럼 기타나 악기보다는, 가수나 춤을 추는 아이돌을 꿈꾸겠지.

이제는 가수, 연예인이 돼서 출세하는 것을 본 기성 세대들도 만류를 하기 보다는, 도리어 더 적극적으로 밀어 주는 추세인 듯 하다.

하고 싶은 걸 하는 건 참 좋다.

이제 어른이 된 나는, 그런 젊은 친구들이 있다면, 말린다기 보다는 본인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심사숙고해서 덤벼 보고, 좌절하더라도 후회하지 말고 자신의 결정을 존중하고 다른 길을 찾아 가라고 말이다.

음악에 미친 것과, 음악 주변의 인기와 부에 미치는 것은 다르니까.


난 내 결정에 후회 안 한다.

비록, 프로가 되는 데 실패하고, 시간을 까 먹은 것도 있지.

하지만, 거기서 내가 온전히 잃기만 한 것은 아니고, 그 게 아닌 다른 걸 또 얻었으니까.

그 걸 밑천삼아서 다른 길을 가면 되고, 그래서 지금 여기에 이르렀다.

난 후회 없다.


여러 정상급 기타리스트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참 귀신같이 잘 친다며 감탄을 하지만, 옛날처럼 마냥 부럽지만은 않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과 어려움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나 역시도 그들처럼 출세한다고 해서 얼마 간의 행복감 따위에 젖을 수는 있겠지만, 내가 그 자리에 가서 겪어야 될 어려움 또한 자초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에사 든 생각이, 내가 당시 꿈꾸었던 기타리스트로써의 행복한 삶은, 꼭 그 길이 아니고서야 안 될 이유는 없다.

그보다 더 좋은 길이, 더 빠르고 쉬운 길이 얼마든지 산재하고, 다만 내가 기타에 눈이 멀이 코 앞이 어두웠을 뿐.


지금은 그 친척 할머니가 여전히 어떤 촌수의 누구인 지도 전혀 기억이 안 나고, 아마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돌아 가셨을 가능성이 높다.

만일, 그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제는 같은 만류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할머니, 이제는 치라고 해도 안 쳐요. 그냥 듣기만 하려고요."

매거진의 이전글성질 더러운 버스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