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속선 Jul 12. 2023

무서운 음악: 황병기의 미궁,

Aphrodite's Child - 666

황병기 교수의 미궁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진 곡이었다.

벌써 수십 년이 지났는데, 나 역시도 그 때는 곡이라기 보다는, 무서운 느낌으로 접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 때 그 노래를 몇 번 들으면 죽는다던지, 악령에 씌인 곡이라느니, 별의 별 소문이 무성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오죽하면 그 곡을 듣고 그런 얘기가 나도는 지, 나 역시도 많이 수긍이 간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가공된 루머들에 동의까지 하지는 않지만, 참 그럴 법하게 무서운 곡이다.

그 곡을 작곡한 황 교수 본인도 이미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인터넷 상에 검색을 찾을 수 없지만, 그 곡 안에서 여성 목소리가 "으음~", 하는 부분이 귀신이 간 빼먹는 소리다, 그 전에 나는 가야금 마찰음이 시신을 써는 소리라는 당시 루머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상상력 매칭이 참 절묘하다.

글쎄, 곡에 대한 해설을 찾아 볼 수 있었지만, 어차피 난 이 곡에 관심이 없다.

내가 미궁을 다시 듣게 된 계기는, 국악에 대해 더 이해하고자 몇 곡을 듣다 보니, 황병기 교수는 그래도 국악으로 널리 잘 알려진 분이라 들어 보자는 심산이었고, 그 중에 대표곡인 미궁을 다시 들어 본 것이다.


가야금에 첼로 활을 활용하겠다는 아이디어, 판에 박힌 국악 고전이 아닌, 정말 파격적이면서도 실험적인 곡을 만든 황 교수 님의 열정은 참 대단하다.

나는 국악에 대해 고루하고, 죽어 있는, 전통과 민족주의로 겨우 연명하는 좋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지만, 이런 틀을 깨고자 하는 실험에 대해서는 절대 함부로 악평을 할 수가 없다.

제 아무리 우리네 가락이 우수하다 할 지라도, 현대인들이 외면하면 그냥 그 것은 박물관 전시물 밖에 되지 않는 것을.

박물관 전시물은 말 그대로 과거 역사의 잔유물이지, 무대와 대중들 속에 파고 들어서 생명을 발산하는 음악이 아니다.

나는 미궁이 국악의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도약적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국악의 새로운 도전이기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음악적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나의 평가이다.

음악이란, 말 그대로 소리를 통해 즐거움으로 승화하는 것이니까.

미궁을 듣고서 어떠한 느낌으로든지 좋았다면, 그 것은 음악으로써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고로, 미궁이 황 교수의 어떤 메세지 성이 강한 음향 효과와 소리, 육성의 창작물이지, 음악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미궁으로 객석의 여성을 공연 도중에 뛰쳐 나가게 할 만큼, 미궁을 듣는 모든 이들을 완벽하게 무섭게 한 것이란 것이다.

가야금의 음산한 마찰음보다, 곡 중 목소리로 출연하는 홍신자의 멘트와 웃음소리가 압도적으로 무서움을 준다.

게다가, 이제는 윗 층의 층간소음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반격기로, 이 미궁을 크게 틀어 놓는 데에 쓰인다고 하니, 황 교수의 의도와는 다르게 여러 용도로 곡이 활용되고 있다.

러닝 타임 길겠다, 몇 번 반복해서 틀어 놓으면 윗 집과 원수지기 딱일 듯.


이 곡 말고도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666이란 앨범이 있다.

나는 한 번 듣고 내팽개 쳤는데, 다시 들을 생각은 없다.

앨범을 명반이라 평하지도 않을 뿐더러, 앨범 제목 666에서 이미 알아 차렸 듯이, 사타니즘이나 공포를 컨셉트로 하였다.

프로그레시브를 표방하면서도, 핑크 플로이드 식의 앨범을 통으로 컨셉트 화한 것도 아니고, 내가 보기엔 컨셉트를 만끽할 만한 요소가 미약한, 그냥 평범한 앨범이다.

순사대로 쭉 듣다 보면 그냥 평범하고 짧막한 곡들의 나열이다가, 어떤 기호로 표기된 곡에 이른다.

그 게 아마 무한을 표시하는 기호일 것이다.

그 곡 역시, 곡이라 보기 힘들지만, 미궁처럼 여성이 무언가 특정한 주술을 계속해서 열광적으로 반복하는 곳울 듣게 된다.

흡사, 흑마법이나 사타니즘의 광신적 의식을 연상시키는 공포감을 준다.


비교를 하자면, 666의 그 곡도 무섭지만, 황 교수의 미궁이 월등히 무섭다.

미궁의 홍신자의 압도적인 광기와 퍼포먼스는, 666이 따라 올 수가 없다.


두 곡 다 작품성보다는 외적인 주목성이나 실험성에 의미를 둔 곡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미궁은 한 번 쯤 들어 본 분들이 많을 테고, 이 기회에 666의 그 문제의 곡을 들어 보면 궁금증이 풀릴 것이다.

찾기 어렵지 않다.

666 앨범의 트랙 중 하단에 속하고, 유일하게 기호로 된 곡을 찾으면 된다.

아마, 미궁에 단련된 분들은 이 게 뭐 그리 무섭냐고 너스레를 떨 수도.


2021-02-27 23:39:27

매거진의 이전글 Neil Young - Heart Of Gol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