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속선의 삶

나중해 9, 1월 20일자 악몽 일기

2021-03-03 05:55:07

by 속선

웬만해선 악몽을 꾸는 일이 거의 없는 데다, 악몽을 꾼다 해도 중간에 깰 정도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번에 꾼 악몽은 유례가 드물도록 생생하게 꾼 악몽이었다.

오죽하면 내가 이 기록을 남기기 위해 이 새벽에 컴퓨터를 켰으랴.


줄거리는 이와 같다.

꿈 속에는, 알고 지내는 이웃 둘이 있는데, 한 명은 그냥 평범한 이웃이었고, 한 명은 목사 신분이었다.

내가 꾼 느낌으로는, 그 둘과 지내는 내용이 아주 자연스러이 정형화될 정도로 분량이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고 나중에 긴장감이 고조가 되는 부분만 기억에 생생히 남는다.

어쩄거나 잘 지내다가 한 명이 나를 의심하게 된다.

내 기억으론 다른 이유였던 것 같은데, 그는 내가 그의 지갑을 훔쳤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현실 상황이라면, 직접적으로 그가 나를 의심하면서 추궁하지 않는 한 그의 생각을 알지 못 하지만, 꿈이라 그런 지, 그가 나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심증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이웃이 목사에게 그 얘기를 하자, 그는 일단 내 편을 들어 주었다.


"그래, 그런데, 이 거 그냥 일단은 묻자."


목사라서 윤리적 관념으로 의심은 나쁘기 때문에, 의심하는 이웃을 다독이는 투로 자중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상황을 말없이 지켜 보면서,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헛다리를 짚고 있다며, 속으로 비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둘의 태도가 돌변했다는 것을 직검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아주 생생하게 꿈을 꾸었는데, 목사가 그 이웃의 의심을 믿게 되었는 지, 둘이 나를 본격적으로 잡을 것이라는 위협을 느꼈다.

그 걸 느끼고부터 슬슬 멀어 지려고 움직였다.

그러다가, 헤드 라이트를 켠 한 검은 승용차가 나를 쫓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이 팍 들었는데, 차 외관 만으로는 그 둘 일행인 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침 배경이 주택가의 골목이었던 지라, 나는 쫓기는 도중에 다른 골목으로 방향을 틀어 버렸다.

정말 그 일행이 쫓는 것인 지, 단지 관련없는 차량인 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랬더니, 그래도 그 차가 나를 따라 오는 지라, 더 불안해 하며 다음 골목에서 한 번 더 꺾어져 들어 갔다.

이 번에도 마찬가지로.

한 세 번 반복하니, 이 것은 상관없는 차가 우연히 나하고 같은 길목을 가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나를 타켓으로 잡고 쫓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캄캄한 밤의 주택가 골목은 밤의 야음이 만연한 가운데에서도, 아주 노란 가로등이 곳곳을 환하게 비추어서 어둡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 가운데, 역시 주택가인 지라 주민들이 곳곳에 각자의 집 주변에 보이는 것이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쫓기는 것이 얼마 가지 않아, 나는 더 이상 힘이 부쳤는 지, 이윽고 그들에게 잡힐 것 같은 절망감과 공포감에 빠졌다.

어떤 멘션 단지 즈음에 이른 듯 보였고, 마침내 나를 쫓던 그 승용차에서 내린 일행들이 내려서 나를 향해 달려 왔다.

그 광경을 본 나는, 그 자리서 절규하면서 크게 외쳤다.


"아아! 납치야!"


깨고 스마트폰을 보니, 아마 3 시 43 분 즈음 되었던 듯 하다.

그 외침은 필시, 이 납치 광경을 지켜 보는 주민들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그들에게 들리기 위해 크게 외친 것이었다.

나는 실제로, 내 육성으로 외치는 것을 들으면서 꿈을 깨게 되었는데, 내가 살면서 이토록 치밀하면서도 생생한 악몽을 꾼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 지를 스스로 반문할 정도로 생생하고 무서운 꿈이었다.

그 꿈 속 광경은 마치, 영화 황해의 경찰 추격 장면을 보는 것처럼 긴박하면서도 위기감이 가득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의심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꿈에 대해 근본적으로 이 것이 꿈일 것이라는 눈치를 채고 있었다는 것이다.

꿈이 점점 긴장감이 고조될 수록 더욱 생생해 졌고, 그럴 수록 한 편으로 이 모든 상황이 꿈일 것이라는 느낌 또한 또렷해 졌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꿈인 줄 알면, 그 모든 배경과 인물들이 허상일 뿐임을 알고, 그 상황에 더 이상 긴장감을 느낄 필요가 없을 텐데.

그냥 꿈이니까 깨 버리면 될 텐데, 꿈이라고 눈치를 채면서도 여전히 꿈 안에서 열심히 도망을 가고 있는 것이, 참 역설적으로 재미있다.

끝 말미에 내가 납치라고 소리를 칠 적에 나는 꿈이라는 것을 자각했으므로, 내가 자고 있는 멀쩡한 방에 외칠 필요가 없으므로, 큰 목소리로 힘껏 외칠 필요가 없다고 느껴서 크게 외치려던 것도 목소리에 힘이 빠지게 되었다.

꿈을 꾸다 보면, 완벽한 시나리오와 배경, 상황에 몰입되어 꿈이라는 눈치를 채지 못 하고, 온전히 속아 버리는 꿈이 있는가 하면, 지금처럼 알 듯 모르 듯 하게 눈치를 채는 경우도 있다.

그 게 참 묘하다.


나는 지금도 기억 나지만, 내가 어렸을 때 육교에 떨어 지는 꿈 중, 지면에 완전히 떨어 지는 즈음에 비로소 "이 건 완전히 꿈이구나."를 자각하면 꺤 적이 있다.

그 전에 여기에 이사오기 전에, 내가 마치 죽어서 영혼이 되는 것 마냥, 내가 살고 있던 집에서 둥둥 떠다니다가, 커다란 창문에 부딪힐 때,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꺤 적도 있다.


꿈을 깨고 나서도, 그 것이 현실이 아닌 꿈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그 공포감은 여전히 잔존해 있었다.

내가 사는 이 곳은, 그 어떤 곳보다도 야음이 짙은 산골이었다.

이런 곳에 몇 년을 살면서 이 터가 무섭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오늘 이 꿈을 꺤 직후, 이 깊은 야음이 무섭게 느껴 졌다.

마침, 내 방의 문이 살짝 열려 있었는데, 그 것은 키우던 고양이가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도록 배려한 틈이었다.

잘 때는 보온을 이유로 완전히 닫고 자는데, 뻗어 버려서 그냥 열어 둔 채로 잠든 것이었다.

그 방을 가득 장악하던 어둠과, 그 살짜기 열려 있는 방문의 틈이, 그 것이 오늘따라 유달리 무섭게 느껴 졌던 지.

거기다, 정적 가운데 둥~ 하면서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등줄기의 소름을 돋게 했다.

이 밤에 그런 소리가 왜 날까, 아마 대설 때문에 천정에 고인 고드름이 떨어 지면서 내는 소리였을 것이다.


두려움이나 불안, 그 것은 내가 내 삶을 방만하게 살면서 내 몫을 못 해내고 있으므로 발생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나는 이 음기가 무거운 곳에 몇 년을 살면서 잘 지내다가, 하필 오늘 그 꿈을 꾼 뒤로 그 밤과 어둠이 무섭게 느껴진 것이란 말인가.

여태껏 강도, 도둑 따위가 그 밤에 내 집을 쳐 들어 와, 나를 헤치려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밤이니까 집 안이 어두운 것은 당연한 것이고, 꿈은 꿈일 뿐인 것이고, 내가 살고 있는 집 안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다.

꿈 속 그 일행이 현실로도 뚫고 쫓아 올 일은 없다.

그럼에도 그 어둠이 무서웠다는 것은, 단순히 기분이라고 넘겨 짚을 일이 아니라, 내가 무언가 독촉받을 정도로 내 몫을 못 하고 있음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

두려움은 어둠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추궁할 다른 존재에 대함이며, 어둠은 단지 막연하게 그 존재를 각인시켜 주는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즉, 두려움은 내가 자초해서 만든 것이다.


꿈의 내용과 내 현실 상황을 대조하며 복기해 봤다.

쫓기는 꿈이나 무서운 꿈의 본질은, 내가 알기로는 무언가 삶 속에 내 역할을 잘 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게 무얼까.

누군가에게 협박, 독촉을 강요당하는 것은 실제로 내 삶 속에 타인으로부터 빚을 진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꼭 금전, 유형적인 것만이 아닌, 인간관계에 있어, 서로 간의 역할 중에 내가 그 역할을 상대방에게 다 하지 못 했거나, 확정해서 해석하면 다양한 이유를 추측해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쫓기거나, 애써 무언가를 감추는 꿈 또한 마찬가지 맥락이다.

내 삶 속, 내가 주어진 몫을 무언가 못 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이럴 때는 빨리 내 주변 상황 속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꿈이란, 내가 자발적으로 구성해서 꾸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가만히 자고 있는데 꾸어 지는 것이지.

그 것은 수면 중, 외적인 존재의 간섭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나를 둘러싼 타 영혼이나 신이 꿈의 환영으로써 나에게 메세지를 전달해 주는 것이다.

지금의 내 상태, 또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

그러므로, 오늘 꾼 악몽은 나에게 추궁성 문책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만, 어떤 부분에서 내가 잘못을 하고 있는 지는, 포괄적으로 함축할 수 있었지만, 정확히 구체적으로 감이 오질 않았다.

요즘에 내 생활이 다소 느슨해 진 것은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나 역시도 이 부분에 대해 항변할 요지는 있었다.


아무리 되짚어 보아도 구체적인 이유를 알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자, 즉시 추스리고 일어 나서 자던 방을 나섰다.

거실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분 탓에 방을 나서기 조금 두려웠지만, 돌파하기로 했다.

작은 방에 도착해서 예를 갖추고, 무릎을 꿇고 신께 항변하기 시작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것 말고는 없노라고.

요 사이에 공부도 잘 되지 않고, 자금적으로 여유도 되지 않고, 몸까지도 예전같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느냐고.

나 역시도 이런 생활이 아주 질녁머리가 난다고.

당신께서는 내 과보를 독촉하고 계시지만, 저 역시도 그러지 못 해 환장하고 있는데 뭘 어떻게 하란 말인 지요.

나는 도저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 지, 뭘 해야 될 지를 도무지 모르겠노라고.

정말 모르고 미치겠어서, 알기 쉽게 말씀해 주시라며.


꿈을 다르게 해석할 가능성도 염려해 봤지만, 아무리 봐도 이 것은 문책성 선몽이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가고 있다면, 나 역시도 이러고 있을 리는 없겠건만, 설마 남은 것은 본부에 연락하라는 것일까.

정말 그 것 만큼은 지금 상황에서 하고 싶지는 않은데.

본부에 전화하는 것은, 내 체면이 어느 정도 선 후에 하고 싶은데, 이런 꼴로는 싫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내가 내 삶에 최선을 다 하지는 못 하고 있다는 불편한 죄책감이 나를 무겁게 했다.


바깥을 보니, 동이 트기 직전의, 산 능선 부분이 살짜기 붉은 기가 감도는 새벽녘이었다.

잠이 깨서 다시 잠을 재촉할 겸, 이 선몽을 기록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쓰다가 얼마 안 지치고 다시 졸음이 왔지만, 중요한 기억을 망각하기 전에 핵심적인 부분만 완성하고 다시 잠에 들었다.

신께 항변하는 부분부터는 지금, 저녁에 글을 완성하였다.

차후에 이 글을 다시 보고 있을 때는, 나는 어떤 이가 되어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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