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7 23:40:34
어제 우체국에 택배를 보내가 위해 외출을 했다.
마침 여유가 되고, 날씨도 좋고 해서 모처럼 아랫 마을을
건너 갔다.
그 물건은 백자 사발을 시흥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다소 늦은 시각이지만,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들렀다.
버스 시각 때문에 점심을 늦게 먹는 건 어쩔 수 없다.
얼마 전에 리모델링한 식당이 있길래, 이 참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오래 된 중국집이었는데, 그 식당은 배달 중심인 듯, 내방 손님은 그다지 신경을 안 쓰는 듯 느껴 졌다.
메뉴판이 없다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다지 달갑지는 않은 인상을 받았다.
볶음밥을 먹었는데, 그렇다고 잘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앞으로 그 식당은 안 가기로 했는데, 간판도 그렇고, 상호도 바뀌었길래, 이 번에는 다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식당 앞에서 들어 서기 전에 문 밖에서 내부를 살짝 들여다 봤는데, 간판만 바뀌었지, 예전과 다른 게 없어 보였다.
내가 호기심이 많아서 여러 식당을 많이 다녀 보지만, 그냥 모험하지 말고 인근에 유명한 곳에서 식사를 했다.
그 식당은 그 동네에서 제일 유명하면서도 잘 나가는 식당일 것이다.
내가 늦은 점심에 갔을 때만 해도 주문이 한창 밀려 있어서, 오던 전화 주문도 오래 걸린다고 얘기를 했을 정도니까.
모처럼 기온이 영상 16 도까지 오르는, 화창한 봄날씨였다.
그에 반해, 나는 추위를 상당히 많이 타는 고로, 두꺼운 겨울 패딩에다, 그 것도 춥다고 지퍼까지 채웠다.
내 체질과는 참 반대이다.
글쎄, 나의 성급하고 다혈질 적인 성격을 다스리기 위한 신의 배려가 아닐까?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조금 더 차분하게 사고하고, 언행에 있어 심사숙고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점은, 성격적으로 활기를 잃고 추위를 너무 쉽게 탄다는 것이다.
20 대만 하더라도 이러지 않았는데, 정확한 원인을 모르겠다.
덕 분에, 안 그래도 추운 이 산골 속에서 한 겨울에는 완전무장을 하지 않고는 하루는 커녕, 반나절도 버티기 힘들다.
그래도 올 겨울은 대비를 잘 한 덕택에 큰 탈이 없이 한결 수월하게 지낼 수 있어 감사하다.
그런 와중에 맞이하는 모처럼의 푸근한 봄기운, 근사한 산수, 그리고 강변은 참 반가로웠다.
도보에 둘러진 펜스 사이로, 유일하게 강변으로 접근할 수 있는 아랫 길이 나 있는 곳이 있다.
모처럼의 여유를 느끼고자, 그 길로 강 가까이에 접근했다.
마침 노래가 듣고 싶어서 핑크 플로이드의 위시 유 워 히어를 틀어 놨다.
나들이 갈 적에 잘 그러지 않는데, 어차피 데이터도 남겠다, 내가 그 곡을 좋아 하기도 하지만, 애잔하면서도 여유가 느껴 져서 그 때 그 분위기와 잘 어울리기도 했다.
글쎄, 가끔씩 나는 바다건, 강이건, 흐르는 물을 보면 뭔가 모르게 끌린다.
타 오르는 불도 그렇지만, 물을 보면 또 다르다.
흐르는 물은 다투지 않는다.
물이 접하는 모든 사물에 대해 철저히 그 사물에 대해 자신의 형태를 맞추고, 양보를 한다.
참 여유로우면서도 관용적이다.
동해에 가서 바다를 접했을 때도, 어제도 마찬가지였지만, 아주 잠깐 물을 보면서, 순조롭게 흐르는 물 소리를 들으면, 정신이 멍해 지면서 뭔가 비워 지는 느낌이 든다.
계속해서 그 느낌을 이어 나가 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냥 갈까, 하면서 길목을 향해 봤는데, 역시 뭔가 미련이 남는다.
상류 쪽에는 바위로 살짝 언덕진 곳이 있어, 그 곳은 물소리가 더 잘 들린다.
그 곳에서 더 가까이 물소리를 들으며 시도해 봤다.
일단에 든 생각은, 내가 요새 여러 음악을 들으면서 느낀 것, '무엇이 더 좋은 소리인가.'에 대해서였다.
고 음질, 고 해상도 음원을 듣다 보면, 객관적으로 음악을 즐기기 보다, 도리어 수치적으로 접근하면서 본질에 접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는 항상 있었다.
사실, 우리가 듣는 모든 음원은 스튜디오나 실황에서 녹음된 기록을 간접적으로 듣는 것이다.
아무리 고 음질의 레코드, 아예 마스터 테잎을 듣는다 하더라도, 직접 연주하는 것을 듣는 것만 하겠는가.
왜 고음질을 추구할까?
그 물음에 대한 답변은, 녹음된 음반을 내 입맛에 맞게 듣기 좋은 것이 아닌, 레코드 물의 한계를 넘어, 최대한 녹음된 원음에 가깝게 듣고자 하는 욕구일 것이다.
나 역시도 DXD 급 음원, 심지어 그보다 더 수치적으로 월등한 음원을 접해서 들어 본 적이 있다.
순수 DXD를 능가하는 것은 아니리라 보지만, 어쨌든 듣다 보면, 디지털 음원임에도 거의 마스터 원본에 근접한, 매우 아날로그 적인 소리였다.
그러나, 그 초 고음질의 음원도, 아무래도 진짜 원본 중의 원본, 마스터 테잎만 하겠으며, 마스터 테잎 또한 어디까지나 당시 연주의 그림자일 뿐, 실제 연주를 듣는 것만 하겠는가.
나는 그 강물 소리를 들으면서 잠시 이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내가 물 소리가 녹음된 음반을 듣는 것보다, 실제 물소리를 직접 듣고 있는데, 이 때는 외려 음질이 좋다, 나쁘다를 따지니 않으니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실제 연주와 노래보다, 실제론 녹음으로 인해 왜곡된 연주를 더욱 즐기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왜곡이 없이 순수하게 음악을 재생한다는 오디오 기기들, 대표적으로 B&W 스피커나 앰프, 케이블에 집착을 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물론, 환경 상 실제 연주를 즐길 수 없으니 음반을 듣는 것이 당연하지만, 원음에 집착하는 오디오 광에게 마스터 원본과 실제 연주를 번갈아 가면서 듣도록 해 주고 싶다.
제 아무리 좋은 레코드 음반, 초 고가 장비도, 전혀 왜곡이 없는 실제 연주보다 왜곡을 생길 수 밖에 없을 텐데,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지 궁금하다.
그는 정말 눈 앞에서 펼쳐지는 실제 뮤지션의 연주를 레코드보다 더 즐길 수 있으련 지.
음질에 대한 생각도 잠시, 나는 흐르는 물 소리와 인간이 어떻게 심층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지가 화두였다.
내가 물을 보면서 느꼈던 잠깐의 멍함이 핵심이라고 보는데, 왜 어떤 상황에서 그런 느낌으로 연결이 되었고, 그 것은 어떤 원리로 벌어 지나.
그리고, 그 느낌을 지속해서 들어 가다 보면, 인간은 어디에 닿나.
글쎄, 우리가 상상으로 구전되던 도인의 이미지, 계곡 가 바위 위에 여유롭게 앉아 눈을 감으며 명상하는 모습은 여기에 근거가 있지 않을런 지.
옛 선인들은 물 소리를 들으면서 온갖 상념을 씻고, 그 빈 의식 속에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강 가까이 바위에 쭈그려 앉아 약 몇 분 동안 물소리를 듣고 왔는데, 조금은 그 느낌이 무엇인 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것이 무엇인 지는 의문에 남는다.
허나, 집착할 필요는 없다.
때가 이르면 모든 것이 자연스레 이뤄 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