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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의 비혼 출산 의견에 답변

2021-03-30 19:47:06

by 속선

여태까지 유례가 없는 현상을 다루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종합되지 않은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따라서, 조금 더 상세하게 제 뜻을 설명해 드리고자 한다.


첫 째로, 많은 분들이 아버지 없이 자라게 되면 제대로 성장하지 못 한다는 말의 뜻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여 주셨다.

아버지가 없이 성장하게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될 가정 교육과 도움을 받지 못 하므로, 이 것은 좋지 못 하다는 뜻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아버지의 부재를 어머니가 매꿔야 하며, 아이가 자라면서 받아야 할 성장의 양분,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될 성장의 뒷받침을 못 받은 만큼 아이는, 아버지를 둔 아이보다 더욱 분발해야 한다는 것을 말했던 것이지, 이 것이 옳지 못 하다, 나쁘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될 양분을 못 받아서 결핍이 된 만큼, 아버지를 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다수를 형성한 현대 사회에 뒤쳐지는 만큼 고생을 해야 한다.

이에 대해 성인이 된 아이는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 해 고생을 하거나, 극단적인 예로 반 사회적, 아웃 사이더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성이 아버지의 역할까지 오롯이 다 감수하겠다면, 또는, 애초부터 사회와 다소 거리가 떨어진 변두리에서 자라도 좋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좋지 않다."라고 의견을 표명한 것이지, "나쁘다.", "잘못됐다."라고 표현한 적이 없다.


개인의 선택권 안에 있는 사항에 대해 내가 간섭할 자격은 없다.

나는 "좋지 않다."고 표현한 부분은, 말 그대로 내가 "좋지 않다."고 표현했던 부분이지, 간섭을 한 적은 없다.

내가 한 행위가 간섭이 되려면, 사유리가 하는 행동에 직접적으로 제동을 걸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 것인데, 나는 그냥 블로그에 "좋지 않다."라고만 표현한 것이 어떻게 간섭이 되는 지를 반문하고 싶다.

만일, 단순히 사적인 인터넷 공간에 표현한 것으로만 간섭이 된다라고 한다면, 그 간섭이라는 주장으로 내 글에 댓글로 반대 의견을 표현한 것은 어째서 간섭이 아니고, 내가 블로그에 표현한 것은 간섭 행위로 간주되는 지를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그 것이 간섭이 맞다면, 양 쪽 다 반대한다는 것만으로도 간섭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


아버지가 없이 홀어머니, 심지어 두 부모님 없이 그야말로 고아로 자라는 분들도 적지 않다.

자수성가의 신화를 이룬 분들, 부모 도움없이 어린 나이에 온갖 고생을 다 맞아 가면서 홀로 서기를 하신 분들을 보면, 경외스럽기 그지 없다.

그런 분들은 우리 사회의 좋은 본보기이자, 힘과 용기를 잃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롤모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것은 해면 표면에 보여 지는 빙산의 봉우리일 뿐, 부모의 도움없이 모든 것을 혼자 헤쳐 나가는 도중, 그 난관을 극복하지 못 하고 주저 앉은 분들을 우리는 보지 못 했는가 말이다.

왜 나는 부모 없는 가정에 태어 나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 지, 혹은 왜 나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 가셨는 지, 생을 비관하는 인생을 살면서 주저 앉거나, 생을 등지는 분들 또한 보지 않았는가 말이다.

부모가 없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교육과 사회 생활, 대인 관계를 배우지 못 했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배척을 당한다.

그 때문에 세상을 비관하고, 사회를 탓하고, 납득할 수 없는 운명에 절망하는 낙오자의 한탄을 듣지 못 하는가 말이다.


부모와 가정의 역할이 이래서 중요한 것이다.

가장 밑바탕, 가정에서 잘 성장해서 사회의 일원으로 합류시키는 것.

옛날에 그래서 '부모없이 자란 자식', '애비, 애미도 없는 놈'이 그리도 큰 욕이 되었던 것이다.

그 속 뜻은, 단순히 그 사람의 가정이라는 배경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 부모가 없어서 제대로 된 기초 교육 조차 못 받은, 기본도 안 된 자라는 멸시가 담긴 말이었다.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할 수 있게끔 우리 신체가 성별적으로 조성이 된 것도 이러한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우리 모두가 홀로 완전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남녀의 구분도 필요없이 태어 나야 맞겠고, 혼자 출산과 양육이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서로가 완전하지 않으므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도록 배려하고, 서로를 돕고 더불어 살라는 뜻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의 출산과 양육이 이 안에 내포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수정으로 홀로 아이를 양육하는 것에 대해 나는 누군가의 의사에 좋지 않다고 표명만 할 뿐이지, 내가 하지 말라고 간섭할 이유도, 자격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단지 블로그에 그런 의견을 게시했을 뿐, 나는 청와대 청원을 올린 당사자도 아니며, 청원에 동의하지도, 피켓들고 구호 외친 적도 없다.


우리에겐 결과물이 필요하다.

단순히 의학적 기술로 인한 새로운 선택의 길이 열렸다고 해서, 그 선택이 항상 옳은 선택, 좋은 선택만 하란 법이 없다.

앞으로 인공수정과 법적 제도가 사회적으로 더욱 공론화될 것인데, 우린 아직 매뉴얼이 없다.

어떤 여성에게 인공수정을 허락해서 최소한 사회 생활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아이로 양육할 것인 지의 기준과, 이 것이 사회 단체나 기업, 정부 차원에서 어떤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지에 대한 데이터를 마련해야 한다.

모든 여성에게 허락해 주면 안 된다.

여성이 남성의 몫까지 다 해서 헌신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데에 전념할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하며, 우리 사회는 이런 여성을 돕는 문화 풍토와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내가 사유리가 힘든 길을 택했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이다.

그 녀는 이런 매뉴얼이 전혀 전무한 상황에서 선뜻 출산을 선택한 것이다.

망망대해에 나침반과 지도도 없이 나서는 것과 같다.

매우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시점에 놓여 있으면서, 우리가 뭘 해야 될 지를 모르고 있다.

아직 우리는 완성되지 않은 새로운 관념의 가정과 출산에 대해 서로 저마다의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두고 우리가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면서 최적의 답을 산출하는 데에 힘을 모을 것인가, 우리가 이 힘을 저마다 싸우면서 소모하면서 미래를 대응하지 못 할 것인가의 시점에 놓인 것이다.

우리가 인공수정이란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누구에게 선별적으로 허용하고, 어떻게 그 사회 구성원을 도울 것인가에 대한 대응책, 매뉴얼.

그 결과물을 지금부터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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