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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2. 2023

부산에서 구해 온 자디스 오케스트라 레퍼런스

2021-06-11 00:20:29

나에게 자디스 진공관 앰프는 선망의 기기였다.

무엇보다도 금색의 번쩍이는 전면 패널, 세련되고 우아한 프랑스 풍의 음색은 낭만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디오 광인 내게, 어두운 방을 밝히는 진공관의 불빛, 탄노이 스피커를 울리는 유려한 진공관의 소리는, 내가 꿈꾸었던 오디오 시스템 구축의 희망이었다.

문제는, 제대로 된 오디오 회사의 진공관 앰프는 제법 비싸고, 자디스는 그 중에서도 또 비쌌다.

자디스의 가장 하급 모델인 오케스트라 레퍼런스는 신품이 무려, 330만 원에 달한다.

'무려'라는 표현이 무색하리만 치, 전체 오디오 앰프 시장 중에 그 금액은 그다지 비싼 축에 끼지도 못 한다.

수천만 원 단위를 넘어, 억대에 달하는 것도 있으니까.

물론, 그 금액과 성능이 정비례하는 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이슬만 한 차이로 수백, 수천만 원이 벌어 지는 것이 있으니까 말이다.


본론을 얘기하자면, 자디스 앰프를 그래도 그나마 중고로 저렴하게 구하기 위해 늘 장터를 물색하였지만, 물건 자체가 귀했고, 또 나온다 하더라도 너무 고가 기종이었다.

파는 입장에서는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고 내 놔서 돈만 있다면 당장 집어 오고 싶었지만, 그럴 돈은 내게 없다.

그러던 와중에, '이 게 정말 꿈인 지, 생시인 지.', 내가 희망하던 자디스 앰프가 장터에 매물로 올라 왔다.

그 것도 시세보다 아주 저렴한 금액에.

흥분된 심정으로 판매자에게 문자 메세지를 보냈고, 예상했던 대로 파손의 우려로 인해 택배 거래는 불가하다는 답변이 돌아 왔다.

거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아니면 이 가격에 이 매물을 얻지 못 한다는 조바심이 들었고, 얼른 부산으로 가기 위한 교통편을 물색했다.

문자를 주고 받기 보다는, 심도있게 통화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통화 가능하냐고 문자를 보냈고, 바로 통화로 시간을 조율했다.

내가 지금 출발해서 부산에 도착하면 밤 11 시가 된다, 늦은 밤이라도 좋다면 그 시간에 만나고, 아니면 내가 부산에 도착해서 1박을 하고 다음 날에 거래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판매자는 친절하게도, "됐다, 무슨 물건을 거래하겠다고 구태어 1박을 하느냐, 내가 역까지 물건을 가지고 가겠다."고 배려했다.


그 연락을 주고 받던 시점이, 고양이가 정확하게 집을 나가서 근 일주일 만에 돌아 온 시점이었다.

아마, 단 30 분이라도 늦었다면, 나는 문을 닫고 나가서 고양이가 집을 찾아 돌아 왔다 하더라도, 다시 다른 곳을 찾아 떠나거나, 정말 극한 상황에 몰려 죽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참, 이 타이밍을 보면 신기하고도 신기할 노릇이다.

가평 예약자를 위해 꾸려 놓았던 짐을 풀고, 얼른 다시 고양이 먹거리를 마련해 놓고 기차 시간에 맞춰 출발을 했다.

부산까지는 기차로 무려 6 시간이 걸렸지만, 기차 여행을 즐기는 나에게는 영동 지방의 수려한 산세와 더불어, 경상도를 가로 질러 구경하는 재미를 즐길 수 있어서 괜찮았다.

재미있는 것은, 나는 경북은 몇 번 와 본 적은 있지만, 태어 나서 부산은 커녕, 경남 땅 자체를 처음 밟는 것이었다.

그마만치 경상도와는 그다지 인연이 없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 제 2 도시인 부산은 한 번 쯤 가 볼 법도 한데 말이다.


역에 도착하니, 이미 판매자는 물건을 갖고 준비해 있었다.

어색한 인사와 함께, 간단하게 몇 마디 인사와 대화를 나눴다.

멀리서 왔다며 내가 기특한 지, 값까지 깎아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 지.


물건을 잘 거래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돌아 오는 귀환길이었다.

여러 루트를 물색해 봤지만, 내가 왔던 기차편을 타고 그대로 돌아 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태어 나서 처음 밟는 부산 땅.

기왕 온 김에 부산을 잠시 둘러 보고, 늦은 밤이지만 부산 앞바다도 보면 좋을 것 같았지만, 늦은 밤에 다소 거리가 있어서 그 것은 포기했다.

이미 자정 즈음에 시장은 대부분 문을 닫거나, 닫는 중이었다.

몇 십분을 걸으니, 마치 강남역 주변의 유흥가와 같은 거리에 도착했다.

마침 토요일 저녁이었으니, 밤을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보였다.


저녁을 못 먹어서 어딘가 식사를 하고팠으나, 당연히 여는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부산까지 와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고 싶지는 않았고, 그렇게 헤매다가 겨우 맥도날드에 들러서 햄버거를 들고 나와, 어느 벤치에 앉아 먹고 여관으로 향했다.

역 근처의 낡은 여관이었는데, 새벽 1 시를 넘겼을 때였다.

분명 문은 열려 있어 들어 갔는데, 카운터에 있어야 할 주인은 없고, 불도 꺼져 있었다.

몇 차례 재촉을 하니, 겨우 불이 켜지고, 나이 지긋한 여 주인은 나에게 열쇠를 건넸다.

뭐, 예상을 했지만, 내가 묵은 방은 공기부터 담배 절은 내의 골방이었다.

천장은 곰팡이와 얼룩으로 이루 말도 못 하고, 방에 있는 것만으로도 목이 칼칼해서 창문을 여니, 바깥에는 에어컨 실외기 소음이 이루 말을 못 했다.

외에도 쓰자면 이루 말을 다 못 하지만, 불평을 하고자 쓰는 것은 아니고, 나에게는 이런 방마저도 받아 준 여관 주인이 고마울 따름이다.


먼 거리를 와서 피곤해서 잠이 잘 오련만, 낯선 곳이라 그런 지, 좀채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날을 샜다.

어쨌든, 아침에 일어 나 인근 시장에서 돼지국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날이 밝아 부산을 조금 더 둘러 보고 싶었지만, 기차 시간 때문에 그대로 돌아 왔다.


무게 때문에 꽤 고생을 했지만, 집에 와서 자디스를 연결해서 들어 봤다.

아쉽게도 앰프가 구형 기종이라, 전원 케이블을 교체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 일체형이었다.

게다가, 험 소음도 들렸다.

소리 또한 내가 원하던 소리에는 살짝 미치지 못 했지만, 저렴한 금액에 자디스 앰프를 들을 수 있어서 참으로 무량할 따름이다.


그윽하면서도 유려한 소리, 투명하면서도 햇빛에 반짝이는 바닷물과도 같은 소리.

제작 년도를 보니, 1999 년도.

20 년도 넘는 기종이니, 참으로 오래 됐다.

나중에 더 상급으로 교체하면 기본 시세는 충분히 보장되니, 팔아도 손해는 없으련만, 지금 쓰면서 드는 생각은.

이 앰프만큼은 난생 처음 부산까지 가서 업어 온 첫 자디스 앰프라서 팔지 않겠다는 심정이다.

험도 있는 데다, 뒷 면 전원 케이블까지 일체형이라서 참으로 구닥다리지만, 지금의 생각은 그렇다.

내가 나이가 더 들었을 적에, 이 앰프를 보면서 그 때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살아 가고픈 것이랄까.


황금빛 꿈을 꾸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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