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1 01:19:49
'기도'란 단어를 접하면, 아무래도 종교나 신앙의 개념으로 받아 드리기 쉽다.
여기서 내가 다루는 기도의 의미는 기존 신앙의 개념과는 다소 다르다.
기도란, 내가 하지 못 하는 일을 타력의 힘으로 이루거나, 신세를 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삶 속에서 내 주변의 다른 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나, 신께 기도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같다고 본다.
나는 기도를 좋아 하지 않았다.
특히, 기독교의 기도를.
하나님은 한도 없이 거룩하고 위대하며, 그 안에 기생하는 인간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발가락 사이나 핥아야 하는 버러지로 그리는 것 같았다.
난 그 게 싫었다.
그런 내가 벌써 기도를 한 지가 몇 년이 되었던가.
물론, 교회를 가지도, 절에 가지도, 모스크도 가지 않는다.
때론 뒷 산에서, 때론 집 근처에서,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는 그냥 방 안에서 할 때도 있다.
기도라고 해서 꼭 "해 달라.", "도와 달라."만 하진 않는다.
내가 도움을 받은 게 있다면, 내가 모르는 것을 일깨움 받은 것이 있다면, 그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것이 도리이자, 예의인 것이다.
그런 의미로 기도를 하기도 하고, 내가 살면서 잘못된 것이 있거나, 후회되는 것, 살면서 내가 타인에게 한 잘못이나 실수를 고하는 것도 포함된다.
뭐 어떤가.
나를 감출 필요도, 포장할 필요도 없다.
알몸으로 신에게 나아 간다.
그 때 그런 일이 있었고, 내가 어쩌지 못 해서 그런 일이 벌어 졌고, 그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내 잘못이 무엇인 지 알겠노라고.
지인들에게 하지 못 할 말, 경찰, 법관한테 하지 못 할 말을 한다.
무거운 내면의 짐을 신께 던져 버린다.
구하는 기도보다는 감사의 기도, 내 자신의 부족함을 고하는 것이 훨씬 가치있는 기도이다.
이 쯤 됐고, 본론을 얘기하자면.
기도를 통해 내 삶의 계획이나 희망을 고하면, 신께서 그에 맞게 길을 터 주는 느낌이다.
물론, 눈에 보이지도, 그렇게 해 준다는 답변을 들어 보진 않았지만, 느껴 진다.
마치, 잘 짜여진 한 판의 체스판처럼 삶이 순조롭다.
전혀 기대치 않은 적절한 때에 중요한 인연을 만나 도움을 얻는다던가, 곤경에 빠질 적에도 유일한 탈출구를 발견한다던가, 마치, 나만을 위해 딱 짜여진 길을 걷는 것만 같다.
지금까지 창업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지만, 속된 표현을 하자면, 대체적으로 너무 절묘하게 아다리가 잘 맞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단순히 우연의 연속이라 치부하기엔 너무 어색한.
아까도 기도를 하고 왔다.
내가 신께 의존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의 도움을 거절하는 것도 아닌, 그런 길을 가고 싶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