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2 06:17:03
애초부터 이재명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했었다.
뭐, 항상 지지율에서 앞서 있었으니까.
이낙연이 있다 해도, 그의 대항마가 될 수 없었다고 생각했었고, 표면적인 결과만 봤을 적에는 당연한 결과였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자세히 그 면면을 뜯어 보니, 3 차 선거인단 투표에서 놀라운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다.
그동안 떠들썩했던 이재명에 대한 여러 이슈들에 대한 반감, 거기에 덮친 대장동 사태로 인한 지지층 이탈이 이낙연 후보에게 몰린 것이다.
적잖이 놀라고 있다.
이낙연 후보의 득표율만 놓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뒷심을 말이다.
난 그가 당 대표직을 맡을 때부터 어느 정도 대권 행보에 대한 예상을 하긴 했었는데, 그가 대표 재임 때 뚜렷한 존재감을 펼친 것도 아니었고, 뭔가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대권을 노리는 것이 아닌, 단순히 차기 정치 커리어에 초점을 둔 것이라고만 여겼었다.
그런데, 이재명에 대한 집요한 대장동 의혹 공세, 경선 결과에 대해 말없이 수용할 것이란 예견도 깨지고 말았다.
흐물대고 점잖을 것이란 생각보다 상당히 뒷심있고, 집요한 면모에 놀란 것이다.
투표 결과에 이의 제기를 한다 하더라도, 경선 룰에 대한 모순점을 파고들 여지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낙연 후보 측 주장에 따르면, 사퇴했던 후보들의 사퇴 직전에 받은 표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게 되면, 이재명은 과반 승리가 아니기 때문에 결선 투표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당헌에 나와 있는 조항을 폭넓게 유권해석한 것이다.
물론, 내가 들어도 꽤 부자연스러운, 즉, 억지에 가까운 논리이다.
일반적인 해석에 의하면, 사퇴했던 후보들의 표는 전부 인정받지 못 한 것이지, 사퇴 시점을 기점으로 해서 인정되고 말고의 전례는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어 보인다.
대다수의 상식에 빗대 봤을 적에 이낙연 후보의 주장은 당연히 반려될 수 밖에 없었고, 후보자 자격으로 이의 제기는 할 수 있고, 송 대표가 절차 상 형식적으로 받아 주는 것이지, 이 또한 반려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이 번 경선에서 이재명의 승리는 예견된 것이었고, 예정된 시나리오 대로 흘러 간 한 편의 간극일 뿐이었다.
이에 대해 송 대표가 굳이 짜여진 시나리오를 무시하고, 골치 아픈 변수를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명분도, 실리도 전혀 없는 이의 제기일 뿐이다.
다만, 이낙연 측에서는 3 차 선거인단 득표율과, 이재명과 좁혀진 지지율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상당하다.
대장동 사태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재명의 지지율도, 3 차 선거인단에서 와해되기 시작했다는 희망을 가져 볼 법 하다.
대장동 사태가 좀 더 빠른 시점에 터져서 수사가 진행되었다면, 겉잡을 수 없는 흐름을 타고 역전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찌 이의 제기를 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어차피, 공짜나 다름 없는 후보자 고유 권한인데.
이낙연 측도 잘 알고 있다.
이 번 이의 제기가 먹히지도 않을 것이고, 유권해석에 따른 명분도 약하다는 것을.
뒤늦게 따라 잡았다고는 하나, 아직도 여전히 여권에서는 이재명이 대세이다.
그럼 무의미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의 제기에 힘을 집중하는 것을 무엇일까.
이의 제기가 받아 들여지지 않다 하더라도, 이 것이 여권 분열로 인한 이재명 표를 뺐아 가서 당선에 실패하는 결정적인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경선에는 실패했지만, 너가 대권을 못 잡게 할 수 있는 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의 제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경선 불복과 이재명 공격, 심지어, 탈당 후 신당 창당 후 대선 출마까지도 내다 볼 수 있다.
대통령 당선은 힘들겠지만, 차기 대권에 대한 포석, 이재명이 싫은 여권 지지자 층들을 흡수해서 세력을 형성하는 과정을 밟게 되는 것이다.
예전 이회창에게 크게 한 방을 먹였던 이인제처럼.
여권 내에서도 여러 모로 이낙연 후보의 이의 제기에 상당히 짜증을 느끼고 있겠지만, 강하게 어필하지 못 하고 달래는 투로 가고 있는 것이 그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이의 제기에 가장 짜증날 양반이 이재명이고, 그 성질머리라면 충분히 과격한 어투로 이낙연의 이의 제기에 화를 내도 골백번을 낼 수 있다.
그럼에도 차분하고 신사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은, 경선 승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대선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여권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핵심이 이낙연 후보인데, 이낙연 후보가 불복과 더불어 이재명과 돌아 서게 되면, 공들여온 대권 탑이 무너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선 후 분열된 여권 민심을 잘 봉합해서 한 힘으로 뭉치는 것이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이 시점에서, 이낙연의 이의 제기는 이재명에겐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내 생각에는 이낙연 후보가 이미 여권 분열 행보로 결심을 굳힌 것이 아닌가, 조심스런 예측을 해 본다.
초지일관, 3 차 선거인단 마무리까지 이재명에게 졌거나, 이재명이 과반을 훌쩍 넘기면, 아무 미련없이 곧바로 경선 결과를 수용하고 여권 통합 행보로 직행했을 것인데, 계속되는 이재명 관계자들의 수사와 지지층 이탈의 흐름을 버리기는 너무 아깝다.
여권 주자 중에 이재명을 제외하면 자신이 유일한 대안이고, 현재 불리하게 돌아 가고 있는 이재명의 악재에 대한 낙전표는 이낙연에게 몰릴 것이란 건 뻔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호기를 놓치고, 순순하게 이재명에게 무릎을 꿇는다?
따라서, 경선 당선은 물건너 갔지만, 너를 끌어 내려서 동반 탈락하는 물귀신 작전은 가능하다는 것이 이낙연 측 행보로 보이며, 이 것이 얼마나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이 번 대선의 관전 포인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