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13 21:27:53
누구는 권력자라 수십 억의 뇌물을 받아도 솜털 형기를 받고, 자신은 고작 60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훔쳤는데도 실질적으로 17 년의 형기를 선고받은 데에 불만을 품은 사건이었다.
누가 봐도 형평성이 맞지 않은, 불공평한 처사였다.
그 것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데, 법은 존재하되, 그 법의 해석과 적용을 시키는 법조인들의 재량이었기 때문이고, 그들 또한 더 강한 권력자의 영향력에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도 이해해야 한다.
법은 만인에 공평하다는 말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지향점이었을 뿐, 현실에서 법은, 법이란 테두리보다 사이즈가 큰 자들에게 얼마든지 편집과 요리될 수 있는 카테고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지강헌 씨가 당시 권력자들과 친분 관계가 있는 자였나, 혹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자였나, 당시 정권에 친 성향의 인물이었나?
아무 것도 아니었다.
법은, 엄밀히 말하면 법조인은, 약자에게 엄혹하고, 강자에게 관대할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배경이 있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법이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포괄하는 카테고리에 있었던 게 아니고, 역으로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있는 권력자들에 의해 포괄된 '물건'이었던 것이 현실임을 받아 들이지 못 했던 것이다.
유명한 조형품이 있던데, 그 눈을 가린 여성이 저울을 들고 있는 작품.
맞다, 그래야 한다.
헌데, 현재 검사와 판사, 기타 법조인들이 피고인과 원고인을, 실제로 눈을 가리고, 아무런 편견 없이 재판에 임하나?
아니다, 그들이 누구인 지,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 지, 변호인이 소위 말해 정말 끝발있는 아무개 회사인 지, 혹은 권력자의 친척, 가족이라던 지, 정말 원리원칙대로 형을 때린다면, 보복이 두려운 자임을 안다면, 엄격하고 냉정하게 사법 처리를 할 수 없다.
컴퓨터가 판단하고 형을 때리는 것이 아닌, 인간이 때리기 때문에.
지강헌이 부르 짖은 '무전유죄, 유전무죄'는 우리 사회의 사법기관이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나아 가야 할 이상향이었을 뿐, 그 것이 현실적으로 지강헌 본인에게도 완벽하게 적용되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것에 괴리가 있었던 것이다.
지강헌에게 17 년 형을 선고한 판사도, 수십 억의 권력자에게 관대한 형을 내렸던 판사도, 애초부터 그럴 수 밖에 없는 포괄적 배경에 놓여 있음을 이해하지 못 한 것이다.
법은 존재하지만, 법의 존재는 실질적으로 법조인들에 의해 좌우지되므로, 정확할 수가 없었다.
부당하지만 그 게 현실이고, 우리가 아직도 극복하지 못 한 숙제이다.
'홀리데이'는 나 역시도 장중함을 느끼는 명곡이다.
그는 왜 그 인질극을 벌이던 와중에 뜬금없게도 비 지스의 홀리데이를 듣고자 그토록 외쳤을까.
홀리데이가 깔리면서 들리는 그의 한맺힌 절규.
본디 홀리데이란 휴일을 뜻하는 게 아니고, 종교적 의미를 가진 '성스러운 날'의 의미이다.
글쎄, 그가 사회의 정의와 불합리를 공포하기 위해 절규하면서 쓰러진 것이라면, 절묘하게도 이 사회의 사법 형평성을 위해 순교한 '홀리데이'라 할 수 있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