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그 후 1

2022-03-12 05:36:14

by 속선

"국민 여러 분, 오롯이 제 부족함 탓입니다. 제가 진 것이지, 국민이 진 것이 아닙니다."


연설문을 접어 양장 안 주머니에 넣으며 퇴장하는 모습에 의기소침함이 느껴 진다.

평소 모습 답지 않다.

수많은 기자들의 심경을 묻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그대로 준비된 리무진에 탑승하여 서둘러 자택으로 향한다.


"이렇게 조지는구나..."


넋두리를 뱉으며,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문다.

눈치가 빠른 수행원이 얼른 라이터를 꺼내서 불을 붙인다.

한껏 담배 연기를 빨아 크게 내뱉은 뒤, 한 동안 말이 없다.

달리는 리무진 속, 한 동안 정적 속에 툭 던진 한 마디.


"작업 들어 가자."


건네 받은 A4 용지 안에는 몇몇 주요 인물의 목록이 적혀 있었다.

그 때 수행원은 퍼뜩 느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또 이렇게 몇 사람을 보내는구나.


며칠 후...


여의도 어딘가에서 대선 캠프 해단식이 한창이다.

실내는 온통 노란 색 일색이다.


"심 대표 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에는 꼭 제대로 된 진보 정권 창출 이뤄 보죠."


"에이, 애초부터 힘들다는 것 아시면서 그러시네. 허허."


지지자들의 눈물과 탄식을 뒤로 한 채 사무소를 빠져 나와, 주차장으로 향한다.

예전같으면 수행원이 항상 일정한 자리에 차를 대기하고 있을 법 한데, 없다.

이상하게 여긴 심 대표가 수행원에게 전화를 건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아 대표 님, 제가 차를 대려고 했는데, 바퀴에 빵구가 나서 운전을 못 하고 있습니다."


"차 바퀴에 빵구가 났다고?"


"예, 누가 일부러 그런 것 같습니다."


"나쁜 자식이네. 일단 경찰에 신고하고, 그럼 나는 일단 오늘 그냥 지하철타고 갈 게."


쓸쓸히 자택으로 향하는 귀가길.

하필 그 때 비는 왜 그렇게도 오던 지.

소낙비가 내리는 주택가의 어두운 골목길.

어딘가에서 들려 오는 익숙한 음악 소리.


'Oh You're Holiday, Such a Holiday...'


"......? 이 건 비 지스의 홀리데이 아니야?"


"비 지스의 홀리데이, 내가 좋아 하는 곡이지. 그리고, 너의 장송곡이기도 하고."


의아해 하는 심 대표의 말을 듣고 있기라도 한 듯, 어두운 골목길을 뚫고 한 남자가 심 대표를 향해 저벅저벅 다가선다.

그 남자는 검은 색 자켓 차림에, 왼 손에는 파란 비닐 우산을, 오른 손에는 권총이 쥐어 져 있다.


"이 후보 님? 왜 여기서..."


"이젠 '후보 님'이 아니지, 0.7% 차이로 낙선한 패배자일 뿐."


"후보 님 낙선은 안타깝지만, 그 건 제 탓이 아니잖아요."


"후훗... 그럴까? 너가 받은 2.4%, 너만 아니었으면 내가 충분히 역전 가능한 선거였겠지."


"그, 그 건, 나 때문이 아니라, 다른 후보가 '철수'했기 때문에..."


비닐 우산을 쓴 남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권총을 쥔 오른 손을 서서히 들어, 그 녀를 겨냥한다.

비내리는 어두운 골목길에 울리는 한 발의 총성을 뒤로 한 채, 남자는 빠른 걸음으로 현장을 떠난다.


"이 번 대선에서 3 위를 기록했던 대선 후보 심 씨가, 자택 앞 골목길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대표는 가슴에 총상을 입고 쓰러 진 채, 즉사한 것으로 밝혀 졌습니다. 한 편, 경찰은 평소 심 대표 주변에 원한 관계에 있는 주변 인물들부터 수사해 나갈 것으로..."


한 남자가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고 있다.

아마, 비를 잔뜩 맞은 모양이다.

현관에는 비에 젖은 파란 비닐 우산이 우산통에 꽂혀 져 있고, 마찬가지로 비에 젖은 검은 자켓은 빨래 바구니에 담겨져 있다.

샤워 가운 차림의 남성은 쇼파에 앉아, 뉴스 속보를 차분히 지켜 본다.


"경찰은 살인 용의자를 찾지 못 한 채 장기간 미궁 속에 빠질 것으로 전망한 가운데, 심 대표의 사망 당일, 수행 차량에 구멍을 낸 혐의로 입건된 30 대 남성의 여죄를 추궁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해당 남성이 심 대표 차량에 구멍을 낸 것에 재물 손괴죄를 적용할 수 있겠지만, 심 대표 사망과는 무관하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응, 그래. 너가 고생하는구나."


담배를 한 개피 꺼내 물고, 빈 담배갑을 찌그러 뜨리며 내 뱉는 한 마디.


"2.4 프로, 너만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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