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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3. 2023

내가 겪어 본 주류 업계의 담합

2022-06-06 21:38:41 

오늘, 오리 고기 업체의 담합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이 글을 드디어 쓰고자 한다.

어차피, 술집도 폐업한 마당에, 홀가분하다.


이미 술 장사를 하고 있는 분들은 어느 정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들인 텐데.

술 장사를 하려면, 당연히 주류 도매 업자를 선정해서 거래해야 한다.

그냥 마트에서 박스 채로 사다가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다.

아무래도 탈세에 대한 문제가 크겠지.


수요와 공급이 풍부한 수도권에는 도매 업자들의 카르텔이 성립하기 힘들다.

어떤 술집이 개업하면, 술집 주인은 유리한 조건의 도매 업자를 선정해서 거래할 수 있다.

허나, 나처럼 지방 시골에서는 이런 일은 어림의 '어'자도 꺼낼 수 없다.

이미 판도 자체가 특정 업체가 아니면 술 장사가 불가할 정도로 완벽하게 짜 놨기 때문이다.


실제 겪은 일인데, 창업 초기에 도매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몇 군데 도매 업체에 문의를 했지만, 연락을 주겠다고 하면서 아예 전화 회신이 없던가, 멀어서 안 된다는 이유로 퇴짜를 놓았다.

거리 상, 그 업체가 더 가까웠음에도.

내가, 회사 명을 밝히긴 조심스러운데, 여튼 국내 최대 주류 회사의 영업사원을 직접 만나서 들은 얘기들이다.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하기 어려운 그들 만의 비밀스러운 카르텔 수법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주류 도매 업체, 자기들끼리 위수 지역을 정해 놓고, 서로 침범하지 않도록 약속했다.

위수 지역에 대한 설정없이, 서로 마구잡이로 경쟁해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지역이 자기네 위수 지역이 아니란 이유로 거절한 것이다.

타 업체가 독점하고 있는 위수 지역을 침범하면, 선전 포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공급 단가를 최대한 비싸게 부를 수 있고, 싫으면 말고 식의 배짱 영업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술집 입장에서는 이미 한 업체 밖에 공급이 몰린 상황에서, 비싸게라도 술을 공급받지 않으면 영업이 불가하기 때문에, 비싼 단가라도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거래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국내 최대 주류 회사라는 오비, 하이트진로, 롯데도 함부로 못 하는 게 수도권 주류 도매 업체가 아니고, 시골 주류 도매 업체이다.

만일, 대기업 영업 사원과 지방 도매 업체와 갈등이 생기면, 도매 업체는 해당 기업의 제품 발주를 불매해 버린다.

그럼 당연히 그 도매 업체에서 담당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그 대기업의 제품을 공급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매 업체가 오비 제품의 카스를 불매해 버리면, 하이트 진로의 테라를 밀어 줘 버린다.

소매상인 술집에서는 카스가 없어도 대체제로 테라가 있으므로, 영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비 입장에서 해당 지역의 점유율을 고스란히 뺐기게 되는 셈이 된다.

그래서, 대기업 영업 사원도 함부로 못 건드리는 것이 수도권 도매 업체가 아니라, 도리어 시골 도매 업체이다.

발주, 공급, 양 쪽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카르텔이 얼마나 강하냐면, 자기들과 인접권을 형성하고 있는 주류 도매 업체들끼리 서로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정보를 공유한다.

소위 말해, 자기네들의 '단톡방'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너희 지역 소매점에서 우리한테 거래 문의가 왔는데, 우리가 밀어 냈다는 정보를 전달해 준다.

빠져 나갈 틈이 없이, 해당 지역을 독점하고 있는 주류 업체와 거래하도록 판을 짠다.

서로 이렇게 상부상조하고 있는 것이다.

철저한 모니터링과 정보 공유, 그들끼리 연합을 형성해서 독점권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여기서 나온다.

더군다나, 우리 지역 대표는 인접 지역의 도매 업체의 지분까지 보유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상호와 지역만 다른, 같은 대표의 회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서로 단가를 낮춰 가며 경쟁할 이유도 없고, 치열한 영업전을 벌일 이유도 없다.

이런 이유로, 일반적으로 주류 도매 업체에서 술집에 공급해 주는 냉장고도 임대받지 못 하고, 내가 직접 사야 했다.

아무리 못 해도 한 대 정도는 공급해 주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임에도.

담당 영업 사원은 결제가 떨어 지지 않았다는 전형적인 핑계를 대면서 거절했다.

내가 그 업체에 직접 찾아 가서 대표 입에서 "한 대, 대 줘."라는 말을 면전 앞에 들었음에도, 그 것은 흘러 가는 말의 립 서비스였을 뿐, 냉장고도 내가 직접 샀다.


이렇기 때문에 낙후된 시골에 다양한 주류, 양주, 와인을 접할 수 없는 것이다.

몇몇 공급 업체들끼리 담합해서 위수 지역을 정해 놓고, 싫으면 공급받지 말라는 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그 흔한 수입 맥주 리스트를 내가 영업 사원에게 보내도, 처음 보는 술이 많다는 반응이 참 어이가 없었다.

편의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수입 맥주들이었음에도, 나보다 다양한 주류를 알아야 할 영업 사원임에도 말이다.

흔한 카스나 참이슬 만으로도 충분히 도매 영업이 가능한데, 뭐하러 재고 걱정을 해야 하는 수입 주류를 취급하겠는가.

물론, 시골이라 수요가 없는 것도, 그들 입장에서 재고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허나, 이 정도로 보수적이고 낙후될 정도인 지는 몰랐다.


내 지역의 영업 사원이 나에게 한 연락처를 건내 주더니, 거기로 연락을 해 보란다.

내가 원하는 것은 국산 맥주가 아닌, 수입 맥주였기 때문에.

그 것은 꽤 먼 지역의 업체였는데, 국내에서 상당히 알아 주는 대형 수입 주류 업체였다.

해당 영업 사원과 미팅도 해 봤는데, 자기네 커버리지에서 살짝 벗어 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들도 거래처가 늘어 나면 마냥 좋은 게 아니고, 평수와 테이블은 얼마나 되는 지, 얼마나 주류 회전이 될런 지를 가늠해 본다.

거리는 핑계이고, 내가 보기엔 입지가 별로라서 회전력이 딸리는데, 과연 배달비와 인건비를 충당할 지에 대한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수입 맥주를 포기하고, 중도에 와인을 선회한 것은 이런 이유였다.

갑의 위치에 있는 주류 도매 업체들에 휘둘리기 싫어서.

첫 공급을 받았던 10 박스 중, 2 종의 4 박스가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라던가, 이미 기한이 임박해 있던 것이었다.

영업 사원에게 이 얘기를 했지만, 해 주겠다는 말 뿐, 그들은 환불해 주지 않았다.

당시에는 영업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대립해서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그냥 손해를 감수하기로 했다.

와인은 유통 기한이 딱히 없기 때문에, 이런 스트레스에서 해소될 수 있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다.

결국은 이마저도 망했지만.


주류 도매는 깡패들이 한다는 말이 있다.

정말 조직 폭력배들이 연루되었다는 말은 옛 말인 듯 하고, 그들은 어느 정도 그런 기질을 갖고 있다.

내가 겪어 봐서 하는 말이다.

수도권의 주류 업체 대표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어지간하면 그들과 대립하지 말라는 충고를 해 준다.

몇 년 전 일인데, 수도권 주류 대표가 이 쪽 지역에 거래를 트기 위해 왔는데, 이 지역 업체가 톨 게이트에서 바리게이트를 치고 막고 있더란다.

이 일로 수도권 주류 사장은 대판 싸우고 다시 돌아 갔는데, 이 쪽 지역을 그들이 완벽히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권 다툼의 여지가 생기면, 여차 하면 무력 행사도 불사하는 게 그들이다.

실제로, 이 번 지방 선거에 그 주류 도매 대표는 시의원 후보로 출마했는데, 폭력 및 협박 전과가 후보 중 최다였다.

이러니, 유통 기한 지난 맥주 반품이 문제가 아니고, 그들하고 갈등을 빚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우리 지역 뿐이 아닐 것이다. 

다른 낙후된 지방에서도 충분히 이런 일이 있을 것이고, 우리 나라 법이 도매 업체가 아니면 불법 매입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주류 도매 업체들의 낙원이 되어 버렸다.

저처럼 지방 시골에서 술 장사를 하실 분들은 참고하시면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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