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논문

사회 속 유연한 풍토 정립

2020-12-29 22:28:04

by 속선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의 자리 양보: 외국인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놀란 것이,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에서라고 한다.

서서 가는 노인들의 수고로움을 헤아리고, 선뜻 자리를 내어 주는 모습은, 외국인 뿐 아니라 이를 지켜 보는 누구나 보기 좋은 모습이다.

나 때만 해도 그런 모습을 많이 봐 왔고,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중년이 되어 다시 지하철, 버스를 타 보니, 예전만큼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고 느꼈다.

우리에게 어떤 관습의 변화가 생겼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예전같지는 않아도 드물게 볼 수 있고, 확률적으로 내가 유독 그런 모습을 못 봤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대중들과 소통할 기회가 없기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이들의 속을 모른 채, 묻어 두기로 했다.

헌데, 나 역시도 노인이 버스에 탔을 적에 어찌 해야 할 지 모르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한적한 시골에서 서울 시내의 북적이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타다 보니,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 하면, 이 분을 노인으로 봐야 하는 지, 그래서 양보를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어찌 보면, 참으로 소인배적 발상이지만, 모르겠다.

당시의 내 기분이라던가, 상황들이 그러했다.

누가 봐도 노인이며, 힘들게 타고 갈 것 같은 외모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을 텐데, 조금은 애매한 60 대 어르신들이 그렇다.

이 분에게 앉으라고 얘기를 꺼내면, 행여나 자신을 노인 취급해서 기분 안 좋게 받아 들이지는 않을런 지, 곧 내린다며, 괜찮다고 사양하게 되면, 내가 무안하게 되는 것도 염려스러웠다.

혹시나, 뒷 자리가 남았는 지를 살피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기도 싫고, 이런 저런 이유로 눈치를 보는 것이 심했다.

그래서, 어떨 때는 말없이 그냥 일어나 버렸다.

하도 시골에서 편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적응이 안 되는 것인 지도 모르겠다.


우리 네에게 경로 사상으로 어른을 대우하는 것은 분명히 좋은 풍토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젊은 이들이 가지지 않은, 어른이 갖고 있는 세상의 경륜과 노고를 존중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젊은 이들은 이에 동의하면서도 단순히 나와 같은 고민에 의한 것인 지, 혹은 세대 차이라던가, 정치적인 이견, 어른들의 좋지 못 한 모습을 봐서인 지는 모르겠다.

시내에서 과격한 데모를 하는 노인들, 지하철에 모여서 소란을 피우는 노인들, 젊은 이가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며 화를 내면서 호통을 치는 노인들, 우리에게 보기 좋은 노인의 모습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러한 모습을 얼마나 봐 왔었는 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젊은 이들은 노인들이 오늘 날의 발전된 세상을 위해 버스나 지하철을 힘들게 타게 될 정도로 노쇠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순리이자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자리를 양보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상황이 있다면, 이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더 나은 풍토를 정립하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애매하고 고민되는 상황, 이럴 때는 이렇게 행동하고, 자리를 권유 받은 어르신들도 어떻게 화답하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해서 말이다.

서로가 말 못 할 상황에 놓였다면, 이러한 교감의 장을 마련하는 것도 충분히 좋은 시도가 될 것이다.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의 인사: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단 둘이 있을 적에 어색함을 느낀 때가 많다.

전혀 모르는 타인부터, 학교나 직장에서의 상하 관계라던 지, 친구나 동료까지 다양하다.

대부분이 모르는 이한테는 말을 걸지 않고, 서로 잘 알고 친밀한 관계는 그렇지 않은데, 알면서도 다소 거리감이 있는 관계에서는 서먹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좋은 곳이, 복도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있을 때이다.

나 역시도 그런 적을 종종 겪어 봤다.

분명히 서로 분명히 아는 관계지만 말이 없는, 참으로 어색하면서도 우습기도 하다.

보통의 경우,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면서 자연스레 불식시키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어색함을 느껴서 상대방이 그러는 것을 느낄 때도 있다.

이 때, 상대방과 묘한 거리감이 느껴 지기도 한다.

서로가 친밀한 관계라면,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 이런 저런 이야깃 거리를 충분히 나무면서 자연스레 대화가 엘리베이터에서 타고 내릴 때까지 이어 지면 문제될 것이 하등 없다.

그런데, 알면서도 아직 서로 친밀한 관계까지 이어 지지는 못 한 관계라면, 어떤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 지가 난감한 경우가 있다.


나름의 방법인데, 이럴 때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자연스레 꺼내 본다.

가령, “아까까지만 해도 좋던 날씨가 갑자기 이러네요.”, “요즘 세상이 어떤 뉴스 때문에 난리네요.”, “어제 드라마 내용 정말 괜찮던데요.”, 이렇 듯, 모두가 알 만 한 공통의 얘기를 먼저 꺼내 보는 것이다.

모두가 크게 불편이라고 느끼지는 않지만, 누구나 겪는 상황들이고,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면서도 누구도 이 고민을 해결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풍토가 계속 이어 진다.

이런 화두를 던지는 것도 처음에만 어색하지, 다들 공감할 만 한 얘기라고 본다.

이 것도 우리가 서로 논의해서 좋은 풍습을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의 조우: 어두운 밤길에서 뒤에 누군가 내 뒤에서 걷는다거나, 골목길에서 내 뒤에서 누군가 걸어 올 때, 혹은 내가 누군가 뒤를 따라 걷게 되는 상황이 간혹 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었는데, 시내 가까운 곳의 산 속의 외진 산책로에서 아이와 함께 산책하러 나온 아줌마와 조우한 적이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서로 말은 않지만, 참으로 묘한 경계심이 든다.

아무래도 아이 부모로써 불안함을 느꼈을 것이고, 상대 여성의 불편한 기색을 보는 나도 참으로 억울하면서도 불쾌감이 든다.


나는 분명히 나쁜 의도는 전혀 없이 그냥 행선지를 향해 길을 걷는 것인데, 단 둘이 있다 보니, 행여나 하는 생각에 상대에 대해 경계를 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그런 상황을 겪어 본 여러 상황 중에, 어느 한 때라도 내가 타인을 해치고, 해를 입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그런 외진 곳에 서로의 갈 길에 따라 조우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자주 겪다 보니, 상대방으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사서 내가 불쾌감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그리 편하고 우호적인 인상을 주지 못 하는가 보다.

상대방이 아예 노골적으로 먼저 뛰어 가버린다거나, 일부러 걸음을 늦게 걷는다거나, 종종 걸음으로 빨리 지나 치려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말이다.

나는 그냥 내 길을 걷는 것이고, 그 여성을 거기서 만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는데, 내 자신이 범죄자되는 것 같아서 참으로 기분이 불쾌했었다.

나중에 요령이 생긴 것이, 내가 먼저 추월해서 가 버린다거나, 내가 다른 길로 빠져 나와 버린다.

물론, 상대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는 과연 서로가 어찌 해야 하는 지, 고민을 하게 된다.


이런 인적이 드문 곳에서 모르는 이들끼리 조우했을 때, 서로가 오해를 하지 않도록 안심하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모르는 상황에서 인사를 하기도 어색하고, 우리 사회에서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하도록 하는 풍습과 규약이 있으면 서로 편할 텐데, 그러한 것이 없다.

같이 의논해서 좋은 답을 만들어 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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