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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3. 2023

좌익사범과 패륜아

2022-09-01 04:36:14 

집에 경찰과 공무원이 들이 닥쳤다.

국정원인 지, 기무사인 지, 검은 양장 차림의 20 대 젊은 이의 얼굴은 기억 난다.

한 네 명 정도.

어쨌든, 이 국정원으로 보이는 일행들만 그렇다.

경찰은 따로.


조사를 받는 중이었다.

내가 사회에 뭔가 잘못이 있었나 보다.

나는 모르겠다, 조용히 사는 터라 짚히는 게 없다.

그들이 증거를 제시하는데, 내가 블로그에 적은 구절이 문제시되었다.

그 것은, 남과 북으로 갈라 진 우리 민족이 화합하여 잘 살아 보자는 취지의 글귀였다.

내가 쓴 글이 당국의 모니터링에 의해 적발이 되었던 것이다.


"아뿔싸, 내가 그럴 의도가 없다 치더라도, 그들의 시각과 법의 기준에는 종북자로 보일 수 있겠구나!"


그 구절이 문제시된다면, 지금 고쳐도 되겠냐고 해도 소용이 없다.

일단 연행되어 어디론가 또 가야 한다.

그러던 중.

이 때부터 엄청난 격변이 시작되는데.


연행을 코 앞에 두고, 같이 동행한 경찰이 몰래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꾀를 낸다.

그 것은, 내가 경찰을 공격해서 자작극을 벌이자는 것이다.

즉, 내가 국정원 요원에게 잡히기 전에, 경찰과 짜고 경찰에게 연행되도록 하자는 모의였던 것이다.

눈치를 챈 나는 그 순간부터 경찰과 육박전을 벌였고, 정신없이 난장판이 된다.

그러나, 내가 경찰을 공격해서 자작극으로 육박전을 벌였음에도, 내가 경찰에 의해 체포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 현장에서 벗어 나, 내 방으로 숨어 들어 간다.


방 안은 정리가 되자 않아 어수선하다.

항상 집 안을 정돈하는 실제 내 성격과는 다르다.

어쨌거나, 나는 일단 방에 피신하여 다음 타계책을 생각해 내고 있었다.

나의 피신을 도운 경찰에게 한 마디 했다.


"우리가 어찌저찌 잡히진 않았는데, 그들이 순순히 물러 갈 리는 없을 것이다. 밖에서 우릴 잡기 위해 진을 치거나, 분명히 몰래 잠복해 있을 것이다. 뭔가 다음 타계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해 봐라."


나 역시도 어수선한 방에서 무기가 될 만 한 무언가를 찾아 본다.

마침 생각난 무기는 대걸레 자루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한 것은 없다.

물색하다 찾은 것이 나무로 만든 옷걸이였다.

마땅치는 않았으나, 이 거라도 집어 들었다.

방을 뛰쳐 나와, 밖에 있을 지도 모르는 국정원 요원을 향해 달려 들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또 한 번의 거대한 반전으로 뒤집힌다.

아까 그 아수라장의 현장은 온 데 간 데 없고, 쇼파와 테이블을 반듯이 두고, 거기에 앉아 화투를 치는 누군가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작고하신 내 친 아버지부터, 할아버지, 그리고 내 어머니까지 한 데 계셨다.

마치 늘 그러했 던 것처럼, 그들은 여유로이 쇼파에 모여 앉아 화투를 치고 계셨던 것이다.

방을 뛰쳐 나왔으면, 아까 치열했던 사투의 현장 그대로여야 하는데, 전혀 다른 환경과 인물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황도 없이, 내가 손에 쥔 나무 옷걸이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머리를 무자비하게 내려 치기 시작했다.


모르겠다.

어쨌든, 당시엔 아무 정신없이 두 분을 공격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백발이 되신 내 친 아버지는 무기력하게 당해야 했고, 할아버지는 생전에 뵙지를 못 하던 분이셨다.

내 아버지와는 그다지 정은 없었지만, 다소 불화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반항 적이진 않았다.

따라서, 악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

그럼에도 왜 내가 내 조상님을 공격해야 했을까.

곁에서 어쩌지도 못 하고 지켜 보던 내 어머니께서 절규하며 외치길, "누가 낳은 괴물이냐!".


"네가 낳은 괴물이다!"


그랬다, 꿈에서 나는 어쩌다 좌익사범으로 나라에 붙잡혀 가는 반 체제 인물로 몰리게 되었고, 그 것도 모자라, 우리 집안의 조상님을 후려 버리는 아주 패륜아가 되어 있었다.

어쩌다 그렇게 되어 버렸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대략 감이 오는 점이 있다.

내가 내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나라가 돌아 가는 상황에 대해 항상 탐탁치 않았다.

그 것은, 공무원과 시스템만 탓할 문제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범 국민 적 정신 개혁이 되지 않아 벌어 지고 있는 현상이라 늘 생각했었고.

그 안에는 국민을 세뇌, 선동하는 언론 또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결국은 우리는 내분으로 자멸하는 형국에 빠져 있다.

나의 이런 개혁성이 꿈에서 좌파사범으로 둔갑되어 나타 난 것이다.

그 것이 결국, 내 가정에 국한했을 적에 패륜아가 되어 버린 것이고.

이 게 답이다.


예수는 서른을 얼마 넘기지 못 하고 십자가에 산 채로 박혔다.

개혁을 부르짖다, 당시 로마에게 반역자로 처형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예수와 닮은 점이 있다.

다만, 나는 이 썩은 세상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면서도, 반면에 수긍하면서 살아 가는 점은 갈리게 된다.

예수는 너무 강직하게 정면돌파를 했고, 그래서 단명하였다.


나는, 썩은 것도 썩은 대로 섭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받아 들일 수 있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썩었지, 또 그 것이 유용한 자들에게는 썩든 말든, 그 것을 쓰지 않고서는 살아 갈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개혁과 보수의 중간에 서서 유연하게 살아 가는 것이다.

나도 이 썩은 세상을 받아 들이고, 세상도 나를 받아 들인다.

그래서 나는 예수보다 오래 산다.


내가 어지간해서는 잠을 마저 자고 나서 쓰는 타입인데, 굉장히 내 스스로도 놀랐다.

내 생에 이토록 묘한 것은 또 처음이어서, 잠이 깨더라도 기억이 생생할 때 반드시 명확하게 적기로 작심하며 기록한다.

눈 앞에 보이는 큰 불은 무섭지만, 잔잔한 불은 자신이 데이는 지도 모른다.


"예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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