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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3. 2023

오디오 케이블을 전부 체르노프로 통일시키다

2022-09-08 20:49:51

오디오를 처음 시작할 때를 회상해 보면, 참 초라하면서도 풋풋했다.

글쎄, 벌써 15 년 즈음 되는 듯 하다.

그 때 오디오엔진 A2라는 스피커가 국내에 처음 막 수입이 되던 시기였다.

가격은 30만 원 중반대로 구매했고, 당시 수입하던 사장 님 사무실에서 직접 청음까지 해 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평범한 액티브 스피커 하나를 구매하기 위해 청음까지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뭐 어쨌든, 그 때는 그렇게 시작했다.

그러다 점점 발전하면서 만나게 된 게 구형 탄노이 북쉘프 스피커였고, 점점 욕심을 부리다 지금에까지 이르르게 되었다.

많은 변천사가 있었지만, 현재는 그런 대로 번듯한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작은 탄노이 스피커부터 시작해서 20 세기 유물이 되어 버린 자디스 진공관 앰프를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엄청난 앨범을 보유한 음원의 PC-FI 시스템이 완성된 것이다.


나 역시 참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오디오 병이 무서운 이유는, 이렇게 번듯하게 잘 갖추었음에도 안주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오디오 장비를 나은 것으로 교체하면, 교체하면서 만족이 이는 게 아니라, 도리어 현재 장비보다 더 좋은 장비를 구매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는 것이다.

이 무슨 역설인가.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목을 축이면, 잠시 쉬고 다시 갈 법도 한데, 목을 축이고 빨리 다음 오아시스에 다다르기 위해 얼른 걸음을 재촉해 버린다.

수중에 여유돈이 고갈되어야 비로소 욕심을 버리게 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렇다.

탄노이와 자디스 앰프를 들였을 때는 정말 너무 기뻤다.

탄노이는 이미 맛을 봐서 그러려니 했지만, 자디스 앰프는 '프랑스 제 진공관 앰프'라는 늘 선망의 기기였기에, 껴 안고 싶을 정도였다.

기품있으면서도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소리.

이 둘의 매칭은 그러했다.


하지만, 이 매칭을 중심으로 케이블들을 여러 가지를 겪으면서 느낀 것은, 제 아무리 실텍이니 어쩌고 해도, 나와 은선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은선 특유의 화사함과 차가움이 그렇지만, 오랫 동안 느껴 본 실텍의 성향은, 은이란 장점을 부각시켰을 지언정, 도체의 결정이 몹시 거칠다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나는 이런 점을 간과하고, 예전에 체르노프 USB 케이블을 내 치고, 실텍 클래식 애니버서리 시리즈 USB 케이블을 썼다.

그 때도 느꼈지만, 그래도 가격으로 보나, 도체로 보나, 당연히 실텍 케이블이 체르노프보다 우위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텍과 크리스탈 케이블의 케이블들을 꽤 썼다.


최근에 와서 체르노프 케이블들을 들이면서 느낀 점은, 은의 차가움도 있지만, 실텍은 가격에 비해 브랜드 값이 너무 비싸고, 소리는 그만 못 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체르노프 케이블, 특히 스페셜과 클래식으로 점진 적으로 교체하면서 느낀 것은, 왜 차폐와 순도높은 도체의 결정이 중요한가였다.

실텍은 에이징되지 않은 케이블을 물렸을 때, 소리의 입자가 칼칼하면서 아주 거칠게 들렸다.

그 때는 실텍에 대한 환상이 큰 탓인 지, 단순히 에이징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치부해 버리고 말았다.

물론, 에이징 후에는 그런 증상은 싹 사라 졌지만, 특유의 딱딱하고 거친 입자감은 은연 중에 느낄 수 있었다.

은선과 실텍이 자랑하는 고급스런 실키함을 동반한 거칠음.

그리고, 배경의 막과 함께 인조적으로 다이나믹스가 향상된 듯 한 활기찬 소리.

그 것이 실텍의 소리였다.


체르노프 케이블로 바꾸면서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탄노이와 자디스 시스템과 은선이 맞지 않아서 아니라, 체르노프가 정말 좋은 케이블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 때부터 모든 케이블을 체르노프로 통일하고자 안달이 났다.

새 제품은 그래도 비쌌기에, 중고 장터에 올라 오는 대로 노렸다가 하나하나 구매해서 교체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은 파워 케이블부터 USB, RCA, 스피커 케이블을 전부 체르노프로 통일시켰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아까 교체와 선 정리 작업을 다 끝내고 소리를 듣고 있다.


내가 원하던 아날로그 소리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무척 만족하고 있다.

오랜 바꿈질과 다양한 경험 끝에 이제사 제대로 된 매칭에 성공한 것이다.

아직은 USB 케이블 소리가 덜 풀려서 약간 먹먹한 감이 약간 있는데, 점점 좋아 질 것이다.

순도 높은 동선과 금도금 단자, 체르노프는 마치 날 위해 개발된 회사 같다.

많은 케이블 사들이 순도와 차폐를 주장하지만, 체르노프처럼 실질적인 소리를 내는 제조사들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대번에 체르노프 케이블로 바꾸니까, 진공관 앰프의 험이 대폭 줄었다.

배경의 막도 많이 사라 졌고.


이 부분에 대해 더 쓰자면, 차폐로 인해 배경과 험의 감소는 오히려 스페셜 시리즈가 더 나았다.

클래식 시리즈는 풍부한 잔향과 정보량이 좋기는 했어도, 배경이 산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스페셜 시리즈는 XS가 붙는데, 이는 차폐 기술력이 강화되었고, 클래식은 단순히 MK II로 기재된 것은, 이러한 차폐가 스페셜 시리즈보다 못 하다는 것이다.

클래식이 스페셜보다 고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런 기술을 포함해 있을 줄 알았는데, 그 게 아닌 듯 하다.

어찌 보면, 클래식과 스페셜은 취향의 차이일 수도.


어쨌든, 체르노프는 너무 좋다.

소리는 비록 많이 정직해서 밋밋한 감은 있지만, 풍부한 잔향과 선명한 해상도, 뻥 뚫린 듯 한 개방감, 레퍼런스 급에는 차폐와 박력있는 스테이징 감도 향상된 소리이다.

거기다, 동선과 금도금 단자이므로, 따뜻하고 아날로그 적인 온도감 또한 물론이다.

탄노이와 자디스와 환상적인 매칭이다.

놀라운 것은, 이 뛰어 난 케이블의 가격이 국내에서는 더욱 저렴하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체르노프가 과잉 생산으로 재고 소진이 목적인 지, 아니면, 국내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홍보하기 위해 저렴하게 파는 지를 모르겠지만, 이 둘은 결국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인천의 와싸다에서 체르노프 케이블을 굉장히 저렴하게 팔고 있다.

나 역시도 이 때문에 상당히 덕을 본 케이스로, 와싸다 아니었으면 오늘 날의 오디오 시스템 완성은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체르노프, 와싸다, 둘 다 참 고맙다.

체르노프 케이블에 대해 다루자면 더 길게 얘기할 수도 있지만, 이 글을 마지막으로 그만 줄이도록 하겠다.


체르노프 케이블도 한계가 있었는데, 케이블에 아무런 튜닝도 하지 않았기에 중립 적이고 순수한 소리가 나지만, 그들이 어쩌면 그 이상의 기술력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이제는 하이-파이를 넘어, 하이-엔드, 이젠 하이-엔드마저 하도 남발되다 보니까, '초 하이-엔드', '울트라 하이-엔드'같은 단어도 생겨 나게 되었는데.

체르노프가 케이블 계에 이런 최 상급으로 보긴 어려울 것 같다.


가격만이 능사가 아니다.

어떤 오디오 브랜드이던 지, 자기 회사 만의 고유한 색깔과 개성을 입히는 것이 오디오 계이다.

객관적인 성능과 별개로, 그 것이 얼마나 예술성과 음악성을 대중들에게 인정받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시장에 파는 지갑을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굳이 값비싼 명품 지갑을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체르노프가 그렇다.


체르노프는 훌륭한 이론을 연구하고, 그 것을 소리로써 입증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다만, 고급 시스템을 다루는 오디오 파일들에게 어필하긴 힘들다.

체르노프가 좋은 소리를 낸다는 것은, 성능 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예술성이 가미된 소리는 아니니까.

고급 오디오 파일러들에게 금액은 그다지 문제 사항이 아니다.

얼마나, 유니크하고 예술 적인 소리를 내는 장비이느냐가 관건이다.

체르노프는 거기에 답하지 못 한다.


내가 체르노프를 좋다고 한 것은, 가격에 비해 훌륭한 소리라는 것이지, 나 역시 돈이 더 생긴다면 보다 예술성이 가미된 브랜드의 고가 케이블로 바꾸고 싶다.

물론, 체르노프의 이 평범한 소리가 다른 오디오 기기의 개성을 잘 어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쪽으로 활용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만.

체르노프는 '그 게' 없다.


그렇다.

체르노프 케이블로 매칭을 완성시켜서 엄청나게 좋은 음악을 듣고 있음에도, 만족에 그치지 않고, 벌써 다음 업그레이드를 꿈꾸며 글을 쓴다. 

참, 심한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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