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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3. 2023

프랑스 에스쁘리 스피커 케이블

2022-09-18 21:37:48 

나는 러시아의 체르노프 케이블을 마구 사 들여서 어렵사리 시스템을 완성시켰어도, 어째, 그 중에서 가장 소리의 큰 영향을 미치는 스피커 케이블만큼은 채 한 달을 넘기지 못 하고 방출할 정도로 인연이 되지 않는다.

스페셜 시리즈도 일주일을 못 갔고, 얼마 전에 구입한 체르노프 클래식 시리즈도 한 달을 못 넘긴 듯 하다.

가격 대비 충분히 좋은 소리임에도,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체르노프는 원초적인 생생함과 해상도, 케이블이 수행하고자 하는 역할에 매우 충실한 좋은 케이블임은 틀림 없다.

그러나, 앞 전에 언급한 대로, 체르노프는 과학적 기술을 넘는 그 이상의 '무엇'은 결여돼 있다.

탄노이에도 있고, 자디스에도 있는 그 '무엇'.


프랑스의 '에스쁘리' 브랜드는 그렇게 나한테 다가오게 되었다.

국내에 제대로 홍보와 오디오 파일 자료가 부족했으므로, 구글 검색과 유튜브 동영상을 열심히 찾아 뒤졌다.

웃기는 것은, 그 많은 오디오 녹음 영상이 에스쁘리 케이블은 거의 전무하다 시피 극소수였다.

그 정보의 홍수라는 유튜브 안에.

그래도, 몇 안 되는 영상을 열심히 청취해 들어 가며 느낀 점은, 소리의 선이 가늘면서 균형감이 좋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찾는 소리의 그 '무엇'이 에스쁘리 케이블에서 조금 엿볼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제작한 케이블이란 점도 큰 메리트였고.


국내 어느 오디오 수입사였는데, 난 직원이 받을 줄 알았는데, 말투가 어딘 지 느긋한 게 대표 같더라.

전화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는데, 몇 가지 적어 본다.


"에스쁘리란 브랜드가 생소하다. 이 소리의 성향이라던가, 매칭이 맞지 않으면, 나 역시도 다시 장터에 팔 때 팔리지 않으면 곤란할 것 같다."


"에스쁘리란 브랜드는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지만, 국내에 잘 안 알려 진 브랜드는 맞다. 현재도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어 판매되고 있다. 걱정 마라, 일단 받아서 들어 보고 마음에 안 들면, 반품 받아 주겠다."


"현재 쓰고 있는 케이블은 체르노프이고, 탄노이와 자디스로 매칭했다."


"체르노프는 다소 소리가 쏜다. 체르노프보다 소리가 좋다."


통화를 마치고 나에게 한 장의 실물 케이블 사진이 전송되었고, 그렇게 거금을 주고 에스쁘리 케이블을 구매하게 되었다.

다음 날 케이블을 받아서 연결해 보았다.

소리는 기대에 미치지 못 한,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소리선이 얇은 것은 이미 동영상을 통해 알고 있는 터였지만, 고급스런 그 '뭔가'를 어느 정도 기대했던 만큼, 그만큼 매력적이진 않았다.

그냥 대체적으로 무난하고 밸런스가 좋고, 체르노프보다 차분하고 얌전하다는 것 정도.

소리도 아직 에이징이 덜 되어서 입자감이 거칠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오디오를 껐다.


지금 한 사흘 정도 되었다.

이젠 거친 입자감은 많이 정제되었고, 전 대역 어느 하나 강조되거나 소외되지 않게, 균형감이 탄탄하다.

스테이징도 좋고, 차폐의 효과로 배경과 소리가 잘 구분되었으면 했는데, 그런 점은 약간 부족해 보인다.

이런 면에서 체르노프의 XS 차폐 기술이 정말 좋은가 보다.

저렴한 라인 업의 케이블인데도, 고가 케이블도 하지 못 하는 소리를 내 준다.

순은 단자로 인한 명료한 톤을 얻었고, 은은 나와 그다지 맞지 않아 조금 아쉽지만, 크게 선을 넘을 정도는 아니라, 나쁘지 않다.

아무튼, 이렇다 할 강점은 없지만, 딱히 약점을 잡을 만 한 것도 없어 보인다.

내가 구성한 탄노이와 자디스 매칭에 부합하는 소리의 결이라는 것이 컸다.

물리적 스펙과는 별개의 패셔너블함이랄까.


체르노프와 비교해 보자면, 체르노프는 분명히 생생하면서도 풍부한 잔향을 남기는 소리였다.

그런 탓에 진공관과도 매칭이 좋았고, 무엇보다 동선과 금도금의 따뜻함이 크게 어필되었고.

그러나 한 편으로, 그 잔향이 때로는 갑갑하게 느껴 질 때가 있었다.

특히, 정보량이 대단히 많은 초 고음질 음원을 재생할 때.

이 번에 교체한 에스쁘리 케이블은 잔향이 없이 소리가 다소 가는 편이다.

체르노프 클래식 시리즈보다 심선이 더 굵어 보임에도 어째 소리가 더 가늘다.

그런 탓에 갑갑함은 다소 풀렸다.

선명한 이미징이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체르노프가 무엇도 가미되지 않은 야성적이고 원초적인 와일드한 소리였다면, 에스쁘리는 훨씬 그보다 차분하고 정제된 소리를 내 준다.

그렇다고 에스쁘리가 특별히 착색된 소리는 아니다만, 아무튼, 약간 투명한 이미징의 차분하고 신사적인 소리라는 점만 기억하면 될 것 같다.

이 점이 체르노프에서 에스쁘리로 케이블을 바꾸게 된 결정이었다.

체르노프로 전부 통일시켜서 따스한 소리를 내는 것은 좋았지만, 다소 강성의 야생적인 소리였던 점은 탄노이와 자디스의 복고적인 소리와 어울리지 않았다.


이래서 하이-엔드 브랜드와 격차가 존재하는 것 같다.

요새 기술력은 저렴한 브랜드든, 하이-엔드 브랜드든 점점 상향 평준화가 되어 가는데, 스펙으로 가릴 수 없는 감성적인 부분.

마치, 삼성의 갤럭시가 물리적 기술력이 좋다 해도, 애플만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융합의 시너지, 기술이 아닌 인간적인 요소의 무언가.


어쨌든, 체르노프와 꽤 다른 성향이지만, 적당히 융합되어 나쁘지 않다.

자칫 무의미한 업 그레이드가 될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차분하게 에이징을 지켜 본 보람이 있게 되었다.

이상한 얘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이렇게 국적이나 문화권과 연관지어서 오디오를 매칭하는 것도 내 나름의 노-하우라 할 수 있겠다.

그럭저럭 성공적인 매칭이다.


우스운 건, 최근에 스웨덴의 '요르마 디자인'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르마 디자인'은 에스쁘리와 만만치 않은 고가 케이블 브랜드인데, 성향이 비슷한 점이 있다.

동선을 쓴다는 점도 그렇고, 로듐으로 단자를 마감한 것은 나와 맞지 않아 아쉽다.

은을 사용하는 실텍과 유사한 질감과 고급스러움이 특징이다.

에스쁘리 케이블이 국내에서 저렴한 중고로 구하기 워낙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나마 매물을 접할 수 있는 '요르마 디자인'에 눈독을 들이게 된 것이다.

글쎄, 언젠가 인연이 되면 접해 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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