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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3. 2023

체르노프 유토피아 케이블, 닷새 청음 기록

2022-10-18 21:18:07

내가 이 케이블을 구매하면서 무엇보다 흡족했던 건, 체르노프가 자랑하는 X-Shield로 노이즈 차폐가 되었기 때문이다.

스페셜 시리즈에서 처음 경험해 본 X-Shield의 우수함은, 한 급 위의 클래식 시리즈에 가서 아쉬움이 많았다.

클래식 시리즈에 그렇다고 전혀 차폐가 안 된 것은 아니다.

돼 있어도, X-Shield만 못 하다.

배경과 소리를 명료히 구분해 주고, 각 악기 파트를 분리해 준다.

이 것은 중, 하급 케이블이 절대 구사할 수 없는 고급 기술력이다.

스페셜 시리즈가 심선이 가늘고, 단자가 많이 단촐해 보이긴 해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게 이 이유인 것이다.

중 하급임에도 상급 케이블에 적용되는 X-Shield가 적용돼 있기 때문.

이는, 최상급 얼티밋 바로 아래인 레퍼런스 시리즈 조차 적용돼 있지 않은 기술이다.

스페셜 시리즈가 클래식 시리즈보다 어찌 보면 더욱 낫다.


유토피아 리미티드 에디션은 처음부터 중고 상태로 구매를 했기 때문에, 에이징에 대한 소리 변화의 여지는 없었다.

전 주인께서 한 석 달 가량 쓰신 듯 하다.

이만 하면 충분히 구리선이 충분히 다 풀렸다.


지금 닷새 동안 들어 본 소감은, 체르노프 특유의 풍부함과 클래식 시리즈의 과함의 절충을 본 듯 한 두께이다.

클래식 시리즈보다 심선 가닥이 많음에도, 고음질에서 갑갑하고 뭉친 현상이 없다.

이보다 심선이 더 많은 레퍼런스는 어떤 지 모르겠지만, 아주 빈약하지도 않으면서도 선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이상적이다.

클래식 시리즈가 톤이 짙고, 마치 반 델 헐을 연결한 것처럼 진한 잔향이 많아서 갑갑한 반면, 유토피아는 톤이 살짝 투명해서 청명한 상쾌함을 주고, 불필요한 잔향은 느껴 지지 않는다.

들으면 들을 수록, 굉장히 다른 성향이다.

오디오 중 케이블들이 체르노프로 도배가 돼 있음에도, 잔향 때문에 갑갑해야 할 텐데, 거의 그렇지 않다.

확실히 상급 케이블의 면모가 느껴 진다.


무엇보다 어제 놀란 건, 무심코 듣던 핑크 플로이드 음반 때문이었다.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은 내가 상당히 애청하는 명반인데, 요새 너무 자주 듣는 것 같아서 당분간 듣지 않다가, 어제 듣고 싶길래 한 번 들어 봤다.

그 걸 들으면서 느낀 건, 마치 내가 50 년 전으로 돌아 가, 핑크 플로이드가 녹음하던 스튜디오에서 믹싱하는 것 같은 생생함 때문이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밴드 음악은 각 파트를 한꺼번에 모여서 녹음을 하는 게 아니고, 각자 파트를 따로 녹음해서 나중에 그 걸 섞어서 마스터 테잎을 완성한다.

우리가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정규 음반을 듣는 것도, 같이 합주를 한 녹음을 듣는 게 아니다.

가끔 이례적으로 실감을 주기 위해 한꺼번에 모여서 녹음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다.

어제 무심히 들으면서 밴드 멤버가 각자 녹음한 파트가 분리돼서 들렸다.

아, 이 것은 개별 녹음해서 믹싱된 녹음반이구나, 하는 분리감.


X-Shield는 우리가 오디오를 재생할 때 발생하는 미세한 노이즈가 타고 들어 가서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것을 방지해 준다.

배경 뿐이 아니고, 소리에도 껴 있겠지만, 소리에는 섞여 버리기에 잘 느끼지 못 하는 듯 하다.

이로 인해 소리에 산만함이 사라 지고, 무음의 배경은 정적의 아주 말끔하게 되는 것이다.


예전 세대 어른들은 기억하겠지만, 나 때만 해도 학교에서 '갱지'란 종이를 나눠 줬다.

이 것은 오만 불순물이 다 섞여 있는, 질이 떨어 지는 저가 용지였다.

이런 차폐가 안 된 케이블이 갱지라면, 지금 X-Shield는 아주 깨끗한 하얀 백지라 보면 된다.

같은 그림을 갱지에 그린 것과, 깨끗한 백지에 그린 것 중 어느 게 더 선명해 보이겠는가.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자꾸 케이블에 차폐, 노이즈란 화두가 뜨거운 것이다.


어제 핑크 플로이드 음반을 들으면서, 각 악기 파트가 분리되는 선명함, 그 것은 차원이 다른 해상도였다.

스튜디오 녹음의 민낯까지 다 세세히 표현하는 놀라운 해상도, 그 것은 케이블의 순도도 중요하지만, 이래서 노이즈와 차폐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게 해 주었다.

왜곡은 도체의 순도와 결정 구조로 인한 왜곡도 있지만, 전기적, 외부적 노이즈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사람들은 중, 저가 케이블, 소리만 나면 되지 식의 고가 케이블을 돈낭비로 간주하지만, 나도 그런 면이 있었다.

나처럼 직접 들어 보면 안다.

상급 케이블에 왜 여러 기술이 총집결돼 있고, 금 덩어리도 아니면서, 그깟 선가닥 주제에 어째서 비싼 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명품, 고급 승용차, 보석은 인정하면서, 오디오 만큼은 미신으로 치부하면서 오디오 파일러, 애호가들을 마치 광신자 취급을 하고 있다.

집에서 그냥 차린 밥상 한 끼나, 비싼 호텔에서 요리사가 차린 스테이크 한 접시나, 배에 들어 가서 화장실로 나오는 것은 똑같다.

사람이 사는 것도 집에서 앉아서 눈만 깜박이며 숨만 쉬는 것이나, 연인과 함께 멋진 관광지로 여행을 가면서 사는 것이나, 태어 나서 늙어 죽는 것은 똑같다.

그러나, 가만히 숨만 쉬다 살다 간다면, 식물인간처럼 사는 것이나 무엇과 다른가.

괜히 태어 나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힘들여 일을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오디오 계가 투명하지 못 하고, 이런 점을 악용한 마케팅도 과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극히 일부를 보고서 전체가 다 그렇다는 식의 일반화는 바른 견해가 아니다.


어쨌든, 이 케이블은 장터에 시세에 비해 굉장히 저렴하게 나왔는데, 내가 건졌다.

체르노프를 좋아 하는 나로써는 아주 횡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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