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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3. 2023

해상도가 좋은 오디오란

2022-10-26 08:17:43

요새 오디오 평론가들이 활동하는 영상을 자주 본다.  

오디오란 것이, 워낙 소리를 특정하기 쉽지 않아서 다양한 표현과 접근이 시도되는 분야이다.


어제 본 것은 해상도가 좋은 오디오에 대해서이다.




일반적으로 해상도를 따질 때 우선적으로 스피커를 따지겠지만, 앰프를 비롯한 다양한 주변 기기들도 해상도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해상도란 것이 얼마나 소리가 또렷하고 선명하냐를 따지는 척도로 쓰인다.


어제 그 평론가, 평론가로 해 두자.


그 평론가의 정의에 의하면, 좋은 해상도란 "정보량이 많은 것."이라 정의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나름 공부를 많이 하고, 소리에 대해 연구도 많이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답을 낼 수가 없다.




보편적으로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것이 해상도의 기준이라면, 이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정보량이 많으면 디테일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만한 해상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 하는 오디오라면, 이는 도리어 뭉뚱그려서 갑갑하게 들린다.


정보량이 많다는 것은 처음 녹음될 때 음원을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많이 때려 넣은 것이다.


원본을 최대치로 표현하는 것이 해상도의 정의라면, 이 부분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고음질, 고해상도의 원본이라 할 지라도 그 것을 표현하는 오디오의 해상도가 낮으면, 당연히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지 못 한다.


만일, 이렇게 표현력이 떨어 지는 오디오에 저음질 MP3 파일을 재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도리어 소리가 또렷하고 디테일이 느껴 진다.


고음질 음원이 매직으로 굵직하게 쓴 글씨라면, 저음질 CD 급 음원은 가는 펜으로 쓴 것이다.


당연히 고음질보다 정보량을 인위적으로 다수 뺀 저음질이 더 선명하게 들린다.


참 아이러니하다.




해상도의 기준을 원본에 가깝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저음질은 분명 원본에서 정보량이 상당수 빠졌기 때문에, 당연히 해상도가 떨어 진다고 봐야 한다.


헌데, 실질적으로 우리 귀로 들리는 것은, 해상도가 떨어 지는 오디오로 듣는 저음질이, 해상도가 좋은 오디오로 고음질을 듣는 것보다 낫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고음질은 소리의 살집이 상당수 잘 살아서 두툼한 반면, 저음질은 소리의 최소 뼈대만 남긴, 이도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살집이고 뼈고 할 것 없이, 두루두루 구멍이 숭숭 뚫린 골다공증과 같은 상태로 볼 수 있겠다.


이렇게 원본에서 군살이 빠진 소리가 도리어 선명하게 들리므로, 정보량이 많다 해서 해상도가 좋다고 단언하는 것은 개념이 다르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쓰는 해상도의 기준이 또렷하다, 분명하다의 기준으로 본다면 말이다.


그 평론가가 규정한 것은 원본에 가깝게였던 것이고.


나도 이 부분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봤는데, 내가 잠정 내린 결론은 저음질은 저음질대로, 고음질은 고음질대로 무조건 원본에 가깝게 표현하는 것이 좋은 해상도를 지닌 오디오라 규정하기로 했다.


사실, 이는 엄밀히 말하면 규정하기 불가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가 원본이라 하는 것도 어떤 특정 오디오 기기로 표현돼 나오는 것인데, 그 오디오 기기가 원본을 정확하게 표현한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나?




내가 말하는 원본이란, 실연, 녹음되었을 당시의 소리, 녹음 장비로 녹음되어 음향 기기를 통해 나오는 소리가 아닌, 우리가 귀로 직접 듣는 악기 소리, 육성을 일컫는다.


그럼, 기타리스트가 앰프를 써서 앰프를 통해 나오는 소리는 원본이 아니냐 할 수 있는데, 이는 일렉트릭 기타가 앰프를 통해 나오는 것이 한 세트이므로, 이 또한 원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이런 원본과 오디오 출력을 비교해 가면서 청취가 가능한가?


일반적인 가정 오디오에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오디오에 있어 진정한 의미의 원음, 녹음 당시의 실제 소리를 우리는 들을 수 없으므로, 원음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 없고, 그러므로 원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오디오를 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수억 대의 극해상도를 표현하는 오디오라고 하는데, 그 것이 왜곡을 일으켜서 나는 소리인 지, 정말 해상도가 극에 달해서 우리가 듣지 못 했던 소리가 들린 것인 지, 어찌 알 수 있는가?


정신나간 소리겠지만, 녹음 당시 실음을 현장에서 듣고 맞비교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알 수 있다.


다른 일각에서는 너무 현실과 동떨어 진 생각을 한다고 할 수도 있고, 너무 엄격한 기준을 둔다고 할 수도 있겠다.




다만, 많은 오디오 전문가들, 애호가들이 이 오디오 제품은 전에 듣던 것보다 안 들리던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고, 이 것이 원음에 가까울 것이라고 잠정적, 다수의 의견이 집합되어 일관성을 지니게 된 것이 해상도의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다른 형태의 왜곡이 일어 난 것을 원본의 소리라 착각할 수도 있지만, 대략적으로 다수의 의견을 믿고 따라 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자, 소리를 아주 엣지있고, 뾰족하게 다듬어서 나는 소리를 우리는 해상도가 좋은 스피커라 착각하기 쉽다.


원음이 그렇게 들리는가?


원음은 엣지있지도, 뾰족하지도 않다.


단순히 피아노의 C를 친다 쳐도, 진동의 원리와 소리가 공간에서 어떤 작용에 따라서 아주 미묘하게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그냥 고정적으로 일직선으로 C의 소리가 나는 게 아니라, 공간에서의 공명의 작용으로 음량, 톤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 소리를 엣지있게 납작하게 눌러 버리거나, 파형의 테두리를 뾰족하게 깎아 내 버린다.


그럼 소리가 아주 바늘처럼 선명하고 분명하게 들린다.


자, 그럼 동그란 철봉을 절묘하게 깎아서 날카로운 바늘처럼 들리게 한다면, 이는 왜곡인가, 아닌가?


당연히 왜곡이다.


정보량이 많은 원본 그대로의 재생이라 한다면, 이 것이 해상도가 좋은 오디오인가?


아니다, 분명히 귀로 듣기는 선명하고 또렷한데, 이는 가만히 따지고 들어 가면 상당한 왜곡이 일어 나고 있다.




우리가 해상도의 정의에 대해 아직 분명히 정하지 못 해서 이런저런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을 종합하자면 이렇다.


해상도가 좋다는 것은, 고음질, 저음질을 따지지 않고 최대한 원본 그대로를 표현하는 것이 해상도가 좋은 오디오이나, 현실적으로 무엇이 이 것이 원음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우리는 다수의 주관적 감각으로 이뤄 진 오디오파일 활동으로 집약된 데이터를 통해 객관성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잠정적으로 해상도의 기준으로 삼고 접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디오를 듣는 것 자체가 왜곡이다.


실제 연주를 어떤 장치를 통해 듣지 않는 것만이 진정한 원음을 접한다 할 수 있겠다.


만일, 어떤 오디오 기기를 마스터 테이프의 원본을 왜곡없이 재생한다고 누군가 확실하게 규정할 수 있다면, 그 기기는 가장 해상도가 좋은 오디오 제품이라 할 수 있으며, 그 것을 기준으로 해서 나머지 오디오 기기는 해상도가 얼만큼 좋다, 나쁘다를 판가름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 기기 또한 이 것이 원본과 똑같이 재생한다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나?


오로지 객관적 기준이란 것은 실제 원음과 오디오 출력을 똑같이 대조해서 들어야 하는데, 그 것은 환경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해상도가 좋은 오디오 제품을 찾는 것은 또다른 왜곡으로 그럴 듯 하게 들리는 것이라는 잠재적 요소를 각인해야 한다.




심도있게 따지고 들어 가면, 아주 한정끝정 없이 파고 들어 갈 수 있고, 어찌 보면 무의미한 짓처럼 느껴 지는 것이 오디오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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