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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속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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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3. 2023

모처럼 산에 올라

2023-05-31 12:15:05 

어제 자 11 시 넘길 무렵부터 산에 올라, 집에 도착했을 때가 한 오전 5시 17 분 무렵이었으니, 만 6 시간 야간 산행을 하고 온 셈이다.


배경은 이러했다.

그동안 이사갈 집을 알아 보는 것이 많이 지지부진했다.

기운이 좋은 곳, 명당, 전망을 따지는 등 특유의 까다로움도 있겠지만, 고작 몇 달 살기 위해 가는 것은 아니니까.

발등에 불똥 떨어 진 것도 아니고, 조바심 가질 필요 없이 천천히 관망해 봐도 괜찮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부동산에 매물이 없어서도 아니고, 내 놓은 매물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이런 정도 아니다.


낙후된 시골 특유의 폐쇄성이었다.

내가 몸, 시간 들여 발품 파는 각오 쯤은 하고 있다.

단순히 부동산을 왔다갔다 하면서 편하게 브리핑 받으면서 하는 정도가 결코 아니다.

시골 마을들은 부동산에 임대를 내 놓지도 않을 뿐더러, 그 전에 가구 수부터가 적고, 설령 비웠다 하더라도 매매를 했지, 임대는 생각도 않는다.

마을 안에서 매매 의사가 있으면, 우선적으로 마을 사람들끼리 거래가 이뤄 지고, 그 밖에 것들은 마을 이장 중개 하에서 매매 의사를 밝히는데, 당연히 내가 해당 마을의 이장을 찾아 가야 한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 봉착한다.


마을 이장은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을 찾아 가야 하는데, 이장이 무슨 마을 공무원처럼 상주하는 것도 아니고, 마을회관을 가는 것도, 거기에 있는 어른들을 통해 여쭤 봐야 한다.

생판 외지인이 집집마다 돌면서 문 두들기고 하는 것은 또 할 노릇이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이장은 커녕, 아예 마을회관이 닫혀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가도 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필 농번기 때라 시기도 참 그러했다.

진짜 문제는 바로 이 것이었다.

매물을 보려면 이장을 접선해야 하는데, 아예 이장을 접선할 수가 없다는 것.


금액이 안 맞거나, 크기에 안 맞을 수는 있다.

그러더라도 만나서 동네 사정도 조금 듣고, 없으면 없다고 단념을 하면 될 텐데, 난 그 게 아니라, 두고두고 미련을 갖는다.

내가 여태까지 거의 50 Km를 걸으면서 대략 15 군데의 마을회관을 찾아 다녔다.

그 중에 주민을 통해 정식으로 이장 연락처를 받은 것은 딱 한 곳, 한 군데는 그냥 이웃 주민이었고, 한 군데는 마을회관 안에 이장 연락처를 통해 매매로 나온 집이 두 집 있다고 답변을 들었을 뿐이다.

참으로 암담했다.

좋은 집을 찾기 위해 고생하는 것이야 각오했다지만, 고생한 만큼의 결실을 보지 못 한다는 것이 답답했다.


그래서 산에 올라 갔다.

근원적으로 내 처지에 비해 욕심이 과한 것인 지, 가능한 것임에도 내가 뭔가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인 지, 그 걸 몰라서였다.

극단적으로 내가 찾아 간 마을의 이장한테 한 군데도 없다고 답변을 들어도 좋다.

없는 걸 어쩌랴.

그러면 단념이 된 상태에서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라도 할 텐데.

단, 그런 답변을 듣을 기회 조차도, 마을을 찾아 가도 이장을 만날 수 조차도 없다는 것이 나를 참 힘들게 했다.

오죽하면, 다음엔 마을회관에 연락처가 적힌 편지라도 남길까, 이런 생각도 해 봤다.

이 또한 너무 무리수 같고, 설령 연락이 온다 하더라도 아쉬운 처지인 것을 알고, 시세보다 비싸게 금액을 부를 것 같아서 또 싫다.


지역 특성이 그렇다.

낙후된 산골 농촌.

지역민 대부분이 평생 그 고향에서 나고 자라, 오로지 농사 밖에는 모르는.

집이 있다면, 평생 죽을 때까지 살 집이며, 매매를 했으면 했지, 임대를 놓는 경우는 없다.

그마저도 부동산에 내 놓는 경우가 드물고, 아는 지인이나 인척, 같은 마을 주민끼리의 거래.

이래서는 나처럼 돈 없는 외지인이 들어 갈 여지는 바늘 구멍과도 같다.


이제는 마을회관을 찾아 가겠다는 생각을 많이 접고, 어제 그동안 인터넷에 매물을 올린 부동산에 연락해서 매물을 보러 갔다.

웃기는 것은, 다른 부동산에 내 놓은 그 매물은 나한테 얘기해 준 금액이 훨씬 저렴했다.

주인이 부동산마다 금액을 달리 해서 장난을 치는 것 같기도, 아니면 처음 내 놓을 금액보다 다른 부동산에 내 놓을 때 올리거나 내렸을 지도.

어쨌든, 못 살 집은 아니었으나, 터도 조금 별로였고, 그 부동산에서 부른 금액으론 도저히 계약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지역의 부동산 매물이 한정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참 절망적이었다.


그냥저냥 적당한 집 골라 비집고 들어 간다면, 한 군데 괜찮은 데가 있는데, 거기 바로 계약하면 된다.

그런데, 내가 까다로운 탓에 두 번 이사를 가고 싶지는 않다.

조금 기다리더라도 제대로 된, 마음에 드는 집을 가려 하지.

그 것 때문이었다.

노력해도 길을 알 수 없는 절망감, 또 기약 없는 기다림.

그 게 날 괴롭게 했다.

그래서 굳이 그 피곤한 날에 술 반 병을 마시고 산에 올랐다.


산의 기운은 참 좋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으면 뭐 하랴.

그 산의 기운을 얻기엔 내 손아귀는 너무 작다.

현실적인 여러 조건들이 이사를 가게끔 하는 것도 작용했고.


고생 정말 많이 했고, 신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조금 더 내 자신을 두들겨 보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글쎄, 화답을 해 줄 지 안 해 줄 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답을 주든 안 주든 계속 해서 내 갈 길을 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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