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 년여 시간 동안의 이글루스의 백업 본을 브런치로 옮기는 작업을 완료했다.
몇몇 불필요한 포스팅을 제외하고도 글 갯수가 무려 550여 개가 넘다니.
나에게 이런 단순 기계적인 작업은 이제 괴롭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이글루스를 운영하면서 사진 한 장 올린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 탓에 작업은 사흘 만에 끝을 낼 수 있었다.
지난 이글루스 활동을 돌이켜 보면, 참 묘한 심정이다.
처음부터 이글루스를 선택했던 것은 아니었다.
천편일률 적인 네이버, 광고밭이 되어 버린 티스토리, 가라 앉는 난파선과 같은 이글루스도 싫었다.
그러나 당시 브런치에서 심사에 통과하지 못 한 탓에, 별 수 없이 이글루스란 난파선에 올라 탔을 따름.
지금이야 브런치에서 한 방에 통과가 되었다지만, 그 때는 참 기준이 뭔 지 몰라 답답함을 넘어 좌절하기까지 했다.
통과하면서 든 생각은, 브런치는 필력이나 컨텐츠의 질, 이런 것보다는 이 사람이 어떤 누구인 지, 그 정체성을 알기를 원했던 것 같다.
단순히 본인이 누구라는 소개보다는,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다른 SNS, 그 사람의 어떤 창작물로 확인코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설마."하는 막연한 기대심으로 세 번이나 고집을 부린 내가 어리석었다.
3 년을 뺑뺑이를 돌다, 이글루스가 언젠가는 운영 종료할 거란 지속적인 불안감에 시달리다, 결국은 이렇게 되고 말았다.
이 게 싫어서 그 때 초장부터 브런치를 선택한 것인데......
그러나 그 때는 내 자신을 입증할 만 한 어떤 컨텐츠도 없었으므로.
그 걸 돌이켜 보면, 이런 과정은 필연적인 것만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라 앉는 배였지만, 그래도 이글루스에게 고마웠고, 파워 블로그는 전혀 아니었지만, 개인적인 친분도 전혀 없었고, 사진 한 장 없는 블로그였음에도 꾸준히 방문해서 댓글을 달아 주는 고마우신 단골 방문자 분들도 계셨다.
지금은 다 어디로 가셨는 지.
이제는 드디어 고대하던 브런치로 안착했다.
카카오가 운영하는 브런치는 이글루스보다는 훨씬 안정적으로 잘 운영이 되는 플랫폼이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가입자를 가려 받는다는 점이다.
나 역시 이 장벽에 막히긴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실 활동할 이용자만 남게 되고, 보다 양질의 컨텐츠를 생산하고, 접할 수 있는 것이다.
블로그 활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일까?
내 자신의 일기장과 기록을 남겨 두는 기억창고이길 바래서?
물론, 그 것도 이유일 수 있지만, 이제는 각자 저마다가 가진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필요한 정보, 내가 필요한 지식과 타인의 경험, 그 것을 같이 공유함으로써 나도 쉽게 배우고 체득하며,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점은 공감하므로써 유대감을 가지기 위함이다.
내 '개인의 공간'이란 작은 범주를 넘어, 우리가 같이 만들어 가는 거대한 지식과 경험, 생각, 정보들의 도서관.
돌이켜 보면, 나는 여태까지 이 거대한 도서관을 실컷 뛰어 놀면서도 제대로 이바지를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발자취를 그려 놓은 일기장이기도 하지만, 내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받았 듯, 나도 다른 이들이 없는 것을 줘야 하지 않나, 그런 의무감도 있다.
온라인 상에서 네이버의 파급력이 상당히 강한 우리 나라이다.
전 국민 중, 네이버 계정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거기에 무료로 서비스되는 네이버 블로그는, 대한민국의 블로그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 전에 싸이월드가 있었고, 그 다음에 네이버 블로그가 있었고, 이제는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대세이다.
새로운 플랫폼의 개발과 전 세계적 보급화는 분명 반길 일이지만, 그 안에 어떤 문제들이 같이 발생했는 지 우리는 안다.
무분별한게 난립하는 상업적 블로그, 홍보용 블로그, 단순 트래픽을 늘리기 위한 온갖 링크와 붙여 넣기로 기계적 도배를 해 놓은 블로그.
여기가 음식물 잔반통인 지, 매출 올리는 데 혈안이 되어 갖은 인위적 멘트와 온갖 가식적 몸짓으로 아양을 떠는 홈쇼핑 채널인 지.
불특정 다수가 무작위로 방문하는 블로그를 운영한다면, 적어도 방문자를 위한 컨텐츠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건, 철저히 그런 것에 무관심한, 어떻게 이슈나 화제 거리로 말미암아, 클릭 수, 방문자 수 올리는 데 안달이 나 있다.
또, 어떤 블로그는 그런대로 일반적인 형태의 블로그 형태인 것 같지만, 거의 컨텐츠의 절반 가량이 애드센스이다.
이 건 뭐, 내가 블로그 컨텐츠를 보는 건 지, 난잡한 광고 잡지를 보고 있는 건 지, 정신이 멍해 진다.
페이스북은 그런대로 괜찮은 듯 한데, 트위터는 온갖 음란 텍스트와 사진, 성매매, 약물을 암시하는 컨텐츠들이 난무한다.
그 밖에도 적자면 훨씬 많겠지만, 일상 속에 무의미하게 남발되어 가는 별 의미없는 수다, 잡담이나 늘어 놓는 식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글쎄, 활용하기 나름이지만, 이래서 내가 SNS를 하지 않는 이유이고, 네이버와 티스토리 블로그를 처음부터 아예 고려하지 않은 이유이다.
그래서 싫다.
방문자 수, 트래픽이 많은 파워 블로거 따위가 되는 것도, 팔로워 숫자가 많은 소위 '인싸' 따위도 되기 싫다.
그런 곳은 마치, 병아리들이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소란스런 양계장과 같다.
나는 소수지만, 나와 같이 진정성있게 공감하고, 비판을 받더라도, 진정성있게 비판받는 공간을 꾸려 가고 싶다.
이글루스 활동했을 때도 구독자 수가 고작 6 명이었다.
그래도 아랑곳 안 하고 3 년 동안 550여 개의 포스팅을 써 냈다.
타인의 댓글에 일체 답글 안 달아 주고, 타인 블로그 조차 방문을 않는, 철저한 비 소통형 블로그임을 감안한다면, 구독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게 생각한다.
인기 따위를 얻고,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분명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단순히 타인으로부터 관심을 받기 때문에 내 자존감을 채워서인 지, 내 컨텐츠가 타인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어서인 지를 구분해야 한다.
네이버에도 파워 블로거는 분명 존재하는데, 개 중에 대중들의 니즈와 트렌드를 좇는 파워 블로거가 있고, 반면, 정말 순수하게 전문적이고 양질의 컨텐츠를 제작하는 파워 블로거도 존재한다.
나는 후자가 당연히 블로그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하며, 나 또한 다른 이들이 대체할 수 없는, 생산할 수 없는 컨텐츠를 만들고저 하는 것이다.
호평을 받느냐도, 비판을 받느냐도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고유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옳다 그르다, 칭찬을 받느냐, 욕을 먹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란 것이다.
그냥 철새처럼 많은 이들이 잠시 앉았다 가는 공간이 아닌, 소수지만 진정성있게 교감하는 공감이 중요한 것이다.
이글루스는 본사에서 버리는 플랫폼으로 방치되어서 본이 아닌 소수파로써 교감할 수 있었다면, 브런치는 처음부터 태생이 대중화가 아닌, 보다 전문화된 블로그 플랫폼으로써 독자 노선을 표방한 것이 다르다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브런치는 나에게 아주 딱 맞는 맞춤 정장과도 같은 곳이다.
브런치에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브런치의 여러 관계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벌써부터 고수의 향기가 가득한 브런치 이용자 분들과의 교감이 기대가 많이 된다.
사실, 조금 창피한 얘기지만, 브런치에 통과되었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집에서 몰래 환호했다.
여태까지 올린 컨텐츠들은 과거 이글루스 활동 당시의 자료 백업들이었지, 아직 브런치 활동 시작하고 나서 올린 컨텐츠는 한 개도 없다.
그럼에도 벌써부터 많은 분들이 방문해서 발자취를 남겨 주셨다.
브런치란 근사한 타이타닉에 태워 주셔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시간이 지나도 한결같이 꾸준한 활동으로 보답하겠다는 다짐으로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