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했던 국내 음악을 계속 접해 보는 중이다.
역시 근본 혈통은 못 속이는 지, 우리 음악이 내 안에 쏙쏙 박히는 걸 체감하고 있다.
아무리 서양 음악의 걸작이라 하더라도, 그와는 별개로 우리네 정서, 한국적인 얼을 교감하는 것은 또 다르다.
한 80 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우리네 한국적인 음악의 명맥이 잘 이어져 내려 왔다.
쓰자면 더 많지만, 오늘 주제는 이 게 아니므로, 나중에 이에 대해 자세히 다루도록 하고.
이 한국 음악의 깊은 여행을 떠나는 중, 나를 놀라게 한 가수가 한 명 있었으니, 그가, 아니, 그녀가 바로 '나미'였다.
나에게 나미는 내가 코흘리개 때 아주 구닥다니 브라운관 TV 속에서 "그저어~ 바라만 보고 있지~"를 부르며 춤을 추던 여가수로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다.
우리 식구들도 서울의 어느 달동네에 살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그 집의 협소한 광을 기억하고, 나는 아마도 동화책이나 크레파스로 벽을 낙서했던 기억도 난다.
벽의 콘센트도 지금처럼 동그란 형태가 아니라, 11자 형태로 된 것도 기억 나고.
그만치 가수 나미가 활동했던 시절과 나의 어릴 적 기억은, 이미 오랜 시간이 되어 버린 90 년대 전후의 어느 무렵에 맞닿아 있다.
그 때 내가 뭘 알겠나.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와 어머니로써 새 인생을 살아 가고, 나는 이제 벌써 중년이 다 되었다.
나에게 나미는 서양 음악이 최고라는 최면에 빠져 사는 나에게 철저히 잊혀 진, 설령 희박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저 그런, 많고 많은 대중 가수 중에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런 내가 다시 그녀의 명곡, '슬픈 인연', '빙글빙글', '보이네,' '인디안 인형처럼'을 들어 보았다.
그녀의 가창력은 창법을 다양하고 화려하게 구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힘이 느껴 졌고, 겉으로 보여 지는 기교보다는 곡의 느낌을 이해하고 이를 잘 표현하는 호소력이 느껴 졌다.
절제될 때는 차분하게, 치고 나올 적에는 폭발적으로, 나미는 어느 때에 그렇게 불러야 할 지를 이미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가수들도 듣다 보면, 기교를 과시하면서 기본기가 허술한 가수가 있고, 누구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미안해서 말을 못 하지만, 참 이런 보잘 것 없는 가창력으로 가수 활동을 하는 것이 놀라운 가수도 있다.
뭐, 가창력 하나가 가수로써 실격이라기 보다는, 작곡 실력이나 연주력이 좋은 걸로 얼마든지 보완이 될 수도 있으니.
내가 최 정상급 가수라고 인정하는 이를 여기서 대략 꼽자면, 조용필, 신디 로퍼, 로니 제임스 디오, 이선희 등을 꼽고 싶다.
그 외에도 생각나면 더 많겠지만.
나미도 여기에 그 한 사람으로 들어 간다.
이들의 공통점이 뭐냐 하면, 기본적인 가창력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지만, 곡을 이해하고 그 곡의 느낌을 감정적으로 잘 표현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가수에겐 이 게 굉장히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무대에서 음정, 박자만 잘 맞춰서 부른다고 한들, 그 게 노래 부르는 기계이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노래는 아닌 것이다.
무대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흥을 돋궈 주는 장소이지, 자기 노래 실력이 음정, 박자가 틀렸는 지 맞았는 지를 시험하는 오디션 장이 아닌 것이다.
댄스야 립싱크를 하니까 그렇다 쳐도, 그냥 음정, 박자만 적당히 틀리지 않게 잘 시간만 때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가수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그 게 '직업'이고, '활동'이니까.
나미는 곡의 메세지를 이해하고, 이를 잘 표현하는 가창력까지 겸비했다.
곡을 이해한다는 것은 음악적 감각이며, 악전적 지식과는 다른, 말그대로 고유한 예술, 감성의 영역인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타고났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녀의 목소리가 독보적인 보이스 컬러를 가졌기 때문이다.
여성 중에 이런 허스키하고 청량한 목소리를 가진 이는 극히 드물다.
아마, 프로 가수 중에 나미 외에 이런 독보적인 목소리를 가진 이는 떠 오르지 않는다.
목소리부터 타고 났는데, 거기다 곡을 분위기를 이해해서 거기에 맞게 출중한 가창력으로 구사하니, 내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삼박자를 다 갖춘 가수가, 그 것도 여가수가 이런 파워풀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가창력을 가졌다니.
나미의 곡을 몇 번 듣고, 나는 그 때 결론을 내렸다.
"나미는 가창력 하나 만큼은 전 세계의 어떤 정상급 가수와 비견 가능한, 일류 가수로구나."
영국의 매기 레일리는 가수로써 아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지만, 가창력이 일류급이라 보기는 어렵다.
조용필은 훌륭한 가창력과 음악의 이해도를 겸비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가수로써 타고 났다고 볼 정도라 보기는 어려울 만큼 평범하다.
사실, 이 둘만 겸비해도 정말정말 대단한 것이지만.
나미는 저마다 한 가지 씩은 부족한 요소, 이 셋을 전부 다 가졌다.
그녀의 진가를 수십년이 지나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좋은 작곡가와 함께 더 오래 롱런했으면, 충분히 나훈아, 조용필처럼 정상급 반열에 올랐을 것인데, 결혼으로 이런 보장되어 있는 커리어를 포기한 것은 참으로 아깝게 생각한다.
나미는 우리 나라에, 평범한 국내 가요 씬에 묻혀 있는 다이아몬드같은 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