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 적에 가르침을 얻었던 한 은사 님 얘기를 해 보고저 한다.
그 분은 국내 클래식 음악 계에 유명을 날리셨던 분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클래식 음악의 정통성 안에 충실했던 분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클래식 음악의 위기와 종말을 선언하며, 파격적인 음악 철학을 주창하신 이단아였다.
"과거 클래식 음악이 아무리 훌륭하고 대단하다 한들, 이제는 그 한계점이 다달았다. 이제는 악기들을 때려 부수고 바이올린 줄을 끊는 극단적인 상황에 치달았다. 그 것은 과거 클래식 음악이 차원 낮은 음악에 국한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내가 베토벤, 바흐 같은 기라성 같은 음악가들, 그들이 알지 못 했던 새로운 차원, 그 것으로 클래식 음악의 미래를 열고, 지구촌 인류의 정신을 음악으로 치유해서 세계 평화를 이룩할 것이다."
쓰자면 더 장황하고 훨씬 복잡한 주장과 이론이 많지만, 핵심적인 것만 추려서 쓰자면 이렇다.
그 때는 내가 그랬다.
구도에 대한 환상, 호기심이 가득했었던 때였다.
또래들이 각자의 꿈과 소질을 개발하면서 서로 어울리기 바빴던 반면, 나는 경인문고 종교, 철학 코너에 죽을 치고 오쇼 라즈니쉬, 불교 경전, 그런 것 따위에 빠져 있었다.
그 와중에 그 은사 님을 만난 것은 그런 환상심도 있었고, 마침 나도 클래식 음악을 조금 공부했을 때여서 나와 완벽한 접점이 있었다.
꼭 모셔서 배워야겠다는 강한 이끌림이라기 보다, 그 분의 엄청난 자신감과 독보적인 카리스마도 작용했었다.
당시에 그 은사 님은 한복 차림에 머리를 기르고, 특이하게도 노랗게 염색을 하던 풍모셨다.
참으로 묘한 분으로, 으레히 한복 차림이라면 유교적 전통이나 민족적 가치를 중요시했지만, 그 분은 그런 관념, 즉 우리의 것이 우수하고, 우리 민족은 특별하다는 사상이 없지는 않았지만, 또 그런 것이 너무 강하면 세계화에 걸림돌이 되므로 자중해야 한다는 균형감도 있으셨다.
은사 님의 아버지께서 당대의 서예가였으므로, 그런 가풍으로 민족 문화와 사상을 자연스레 접하신 것이었지만, 은사 님은 그 카테고리 안에 종속되지 않고, 그 울타리 밖을 나와 그 것을 포용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전통 음악이 아닌, 음악을 수학하시던 것은 서양 클래식 음악을 섭렵하시고, 또 당대의 유명을 날린 정도였으니, 개미에 불과했던 내게, 그 분이 그렇게 위대하고 엄청나게 보일 수 밖에.
내가 배우던 그 분의 음악은 아주 특별하고 급진적이었다.
서양 음악에 대한 악전적 이론은 그대로 놔 두었지만, 그 것을 연주하고 표현하는 방법은 철저히 그 분께서 치열하게 연구한 연주법과 이론, 그 자체였다.
그 것은 은사 님이 젊을 때 화려한 커리어를 등지면서까지 수십 년을 연구하고 시도한, 전 세계에 유래가 없는 독보적 음악 관념의 결정체였다.
과거 베토벤, 모차르트, 유수의 음악의 거장이라 할 지라도, 그들은 단차원적인, 평면적인 음악에 머물렀던 반면, 은사 님은 그 것을 뛰어 넘는, 보다 차원 높고 훨씬 입체적이고 살아 있는 음악의 신세계에 이른 것이다.
"자, 손을 그 자리에 고정시키지 말고, 하나에 왼쪽으로 밀고, 둘에 오른쪽으로 당기고. 이렇게, 하나 둘, 하나 둘."
아니, 그냥 연주해도 쉽지 않은 걸, 손을 움직이면서 연주하라?
그 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상체를 움직이며, 종국에는 온 몸을 움직이며 연주하는 것으로, 전신을 쓴다는 것이 은사 님께서 개발하신 연주법이었다.
보다 살아 있는 음악, 소리의 실체를 만들어서 청자가 그 실체감을 느끼도록 연주하는 것이 은사 님 음악의 결정체였다.
은사 님이 이런 음악의 신세계에 이르기 위한 계기는 이렇다.
당신도 과거 베토벤이나 바흐 같은 위대한 음악가의 명작에 감탄하시면서, 내 자신은 그 뒤를 답습하는 초라함을 느끼셨다고 한다.
그와 함께, 나날이 발전하고 보다 차원 높은 음악으로 발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정체돼 있어서 대중들이 클래식을 외면하는 현실에 통탄해 하신 것이다.
그렇게 잘 나가던 시기에 모든 음악 활동을 일체 접고 본격적으로 고차원 음악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에 몰두하게 되셨다.
그 와중에 본인 말씀으로는 포기와 도전을 반복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죽음의 고비까지 넘겼다고 하실 정도였으니.
은사 님은 몇몇의 제자를 두셨고, 그 중에는 이름 꽤나 날린 분도 몇몇 있었다.
또한, 당대에 국내 클래식 음악 계에서 활동했던 분과 어깨를 같이 하며 교류했던 분도 있었고.
공통점은 자신이 창시한 새로운 음악의 이론과 철학, 연주법에 대해 모두들 몹시 어려워 하고 이해하지 못 했다고 하시니.
나는 이론과 연주법 자체는 그래도 이해했었지만, 너무 연주법을 구사하는 것이 어렵고 재미가 없어서 포기했지만.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은 전부 이해한다.
속속들이 모든 세세한 이론을 알아서가 아니라, 이제 그 분의 이론의 가장 핵심, 알맹이를 이해하니까, 나머지 세세한 것들은 나중에 봐도 척척 이해가 된다라는 것이다.
기존 음악은 평면적으로 연주해서 평면적으로 들리지만, 은사 님의 고차원 음악을 연주하려면 입체적으로 연주해야 입체적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알고 나면 단순하다.
그런데, 그 '알고'가 바로 되지 않기 때문에 이해를 못 하는 것이다.
당신께서는 수십 년 세월을 연구했다고 해서, 우리 또한 수십 년을 치열하게 공부하고 뺑뺑이를 돌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하고 길만 알면 된다.
그래서 선구자는 항상 이 세상에 없는 작은 다이아몬드를 구하기 위해 평생을 고생한다.
영롱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찾고 나면, 그냥 후인들에게 그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어디 있는 지, 어떻게 구하는 것인 지 이해시키는 데는 불과 얼마 걸리지 않는다.
스마트폰, 자동차, 비행기, 우리가 그 것들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고 동작하는 지 모든 것을 이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편리한 것들을 얼마든지 활용하면서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비록 그 분의 음악 철학에 대해 나는 그다지 인정하지 않고, 대중들도 이해하지 못 하고 받아 들이지 못 하는 것은 당연하다 치더라도, 그 분께서 새로운 세계를 열고자 하신 노고, 보다 높은 인류의 음악 발전을 위해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희생하신 것에 대해서 만큼은 공로로 인정해 주고 기려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 분의 음악 이론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라기 보다, 그 것이 현대인의 갈망하는 음악의 신세계가 될 수 없다고 평한다.
당신의 음악이 과거 베토벤, 바흐가 몰랐던 신세계를 접했던 것은 맞다.
그러나, 그 것이 정말 음악의 본질적 가치, 핵심적 가치인가?
아니다.
그 것은 음악이란 핵심을 둘러 싼 주변적 요소에 불과하다.
베토벤과 바흐가 당신 이론을 알았다 하더라도 월등히 차원 높은 음악을 만드는 데 별 도움이 안 됐을 것이다.
오히려, 그 것은 음악 이론이라기 보단, '음향' 이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 것은 베토벤과 바흐가 갈망했던 차원 높은 음악의 너머에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 아니다.
그저, 그들이 헤매다가 빠질 수 있는 작은 함정에 불과하며, 당신은 고차원 음악을 찾아 헤매다가 그 작은 함정에 빠진 것에 불과할 뿐.
단순히 베토벤, 바흐가 빠지지 않은 음악의 곁다리, 함정에 빠진 것을 보다 차원 높은 음악의 신세계라 착각한 것이다.
그저 그 뿐이다.
그 세계는 콜롬버스가 카리브의 작은 섬의 발견을, 평생 인도라 여기는 착각에 빠진 것과 진배 없다.
당신의 고차원에 대한 열망과 여정이 헛되다는 것을 말하고픈 게 안니다.
비록, 그 것이 고생한 것에 비해 작은 결실이라 할 지라도, 결국은 그 후세인들의 무수한 노력으로 인해 오늘 날 아메리카 대륙이 엄청나게 확장되고 발전한 것처럼.
평가절하를 해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착각하는 것만큼은 아니란 것만 말해 주고 싶었다.
쓰자면 더 긴데, 분량 상 여기까지 마치겠으며, 다음 이야기는 또 쓰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