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속선의 삶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속선 Aug 02. 2023

"냄새나면, 냄새 안 나는 집으로 가야지?"

묘한 인연이었다.


지금으로부터 한 7 년 전 무렵, 나는 이 곳으로 오지 못 해 아주 안달이 나 있는 상태였다.

큰 산이라길래, 큰 기운이 서려 있다 길래, 그 말 한 마디였다.

뭐, 원체 산을 좋아 하고 가까이 하고픈 것도 있지만.


부동산은 물론이거니와, 지역신문을 봐도 마땅한 집을 찾기 어려웠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매물 자체가 귀했다.

화도 났다.

나와 약속한 게 있었는데, 내가 열심히 한다는 조건부로, 당신은 내 뒷바라지를 해 준다는 것이 그 것이었으니.

글쎄, 그렇게 애를 태우며 지낸 지 한 석 달 무렵이 지났을까, 절호롭게 나는 귀한 매물을 찾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


"뭔 사연이 있어 여기 살려고 하는 지 모르겠지만, 한 번 와서 얘기나 들어 봅시다."

 

그 집을 찾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는데, 무심결에 카카오맵을 뒤져 보다, 집 밖에 걸려 있는 임대 플랜카드를 본 것이었다.

어쩌면,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그 연락처가 가려 졌다면, 나는 어쩌면 그 집을 계약하지 못 했을 것이다.


집 주인은 일반적인 직업은 아니었고, 터도 시골 중에서도 외곽 지역에 있는 곳이었다.

먼 타지 사람이 이런 곳에 산다고 하니, 주인은 내가 궁금도 했을 터.

그렇게 첫 만남 후에 순조롭게 얘기가 되었고, 그렇게 산 지가 벌써 5 년이 되었다.

그렇게 여기 와서 살지 못 해 안달난 것이, 이제는 나가지 못 해 안달이 나게 되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사실, 나는 이사를 가고픈 마음이 없었다.

외려, 나는 이 집에 최소 10 년 이상을 살고자 했다.

발단은 아랫 층에 새로 이사온 이웃에서 시작을 한다.

다른 소음이나 사소한 것을 그렇다 치더라도, 이 아랫 층 사람의 담배 냄새가 온전히 내 집 안으로 올라 오는 것이 고역이었다.

아랫 층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 문제라고 치부하지 않는다.

내가 내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집 구조 상 눈에 보이지 않는 틈이 상당히 많았고, 지금 아랫 층 사람은 전혀 이 사실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듯 보였다.


처음에 이 사실을 작년 가을 쯤에 주인에게 얘기를 했고, 나한테는 3월 봄이 되면 한 번 전체적으로 손을 본다고 답변을 했으니,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꼭 집 수리를 한 번에 묶어서 할 일도 없었고, 춥다고 수리가 안 될 일도 아닐 뿐더러, 이 사태에 대해 그냥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이니, 너가 참으라는 식이었으니.

안 쓰던 공기청정기와 서큘레이터를 꺼내서, 어떻게든 최대한 봄까지 참으며 살았고, 약속대로 봄이 됐으니, 한 번 수리해 달라고 더 전화를 했다.

주인의 답변은 일언지하 거절이었다.


뭐, 사실 몇 년을 겪어 봐서 주인의 성향을 잘 안다.

애초부터 봄에 수리한다는 말 자체를 믿지 않았다.

봄되면 집 수리를 한다는 그 소리는 겨울마다 반복하던 말이었고, 원래 말을 건성으로 듣고, 건성으로 실없이 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가을에 처음 전화했을 때도 그 말을 30% 밖에 믿지 않았고, 오늘 날 이렇게 싸우게 될 것도 예상했었다.

다만, 나는 이사를 가고픈 의향이 전혀 없었고, 참을 만큼 참았고, 분명히 봄되면 수리해 준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하기 위해 쌓은 명분에 불과했다.


그렇게 전화를 마치고 나서, 한 번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

내가 이 집에 과연 계속 살아야 할 지, 이사를 가야 할 지를 말이다.

지금 이사 온 사람이 여기서 계속 살 지, 언제 이사를 갈 지, 누구도 장담 못 한다.

더군다나, 이사 갈 테면 가라는 식으로 무논리, 무대뽀 식으로 나오는 집 주인에게 배신감이 컸다.

집 주인과 세입자 관계를 넘어, 그래도 서로 그동안 알고 지내는 유대감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내가 임차료를 한 푼도 밀린 역사도 없으며, 사실, 받아 들이기 힘든 주인의 화재보험료를 내가 대신 내라는 조건까지도 그대로 수용하며 살았는데.


수리라고 해 봐야 아랫 층 천정의 틈을 실리콘으로 매우기만 하면 된다.

큰 돈도 들지 않는 시공이다.

그럼에도 집 주인은 문제가 있는 집에 들러서 공감하는 척은 커녕, 아예 내가 그런 요구에 왜 응해 줘야 하냐는 식의 무논리였다.

생활에 지장이 있는 집의 하자라면, 당연히 와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할 텐데.

비용에 관한 것은 그 다음 문제로 상의하면 될 일이고.


"냄새나면, 냄새가 안 나는 집으로 가야지?"


그 말 한 마디가 내가 지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만든 한 마디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버스에 뛰어 든 고양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