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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속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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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Aug 08. 2023

벽지의 작은 마을을 찾아 가

"그런 데를 가서 살라면, 직접 가서 수소문을 하는 수 밖에 없어."


어떤 부동산을 연락해도, 심지어 군청, 면사무소에 전화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윗 답변은 아랫 집에 살고 있는 어르신이 나에게 해 주신 말이었다.


초봄 무렵부터 이사를 가고자 결심이 섰는데, 내가 가고픈 곳은 따로 있었다.

그 곳은 내가 기차로 간간히 가던 곳이었는데, 현재 살고 있는 곳과 그다지 멀지 않았고, 작은 마을과 기차역이 고작인 곳이었다.

무엇보다 그 곳이 비경지인 탓도 있지만, 저녁 무렵에 강가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곳 기운이 너무 좋았던 것이었다.


때마침 이사 시기이기도 하고, 나라고 그 곳에 살고자 왜 부동산이나 지역 신문을 찾아 보지 않았겠는가.

문제는, 워낙 외진 곳이라서 부동산에서도 중개를 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들 스스로 매물을 잘 내 놓지도 않았다.

이사를 가기로 결심한 훨씬 전에는, 아랫 집 아저씨와 잠깐 얘기를 나눴는데, 아저씨 스스로가 그 지역 출신이었고, 행여나 그 지역 땅에 관심 있으면 얘기를 해 달라는 얘기도 있었기에.

여차저차해서 그 지역에 매물이 있는 지를 물어 봤으나, 그냥 직접 가 보란 답변이었다.

아무래도 그 아저씨는 토지를 매매할 수 있다는 뜻이었지, 시골집 임대를 염두해 두고 한 말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구동성으로 직접 가라는 답변, 되든 안 되는 내가 직접 찾아 가서 실태를 파악하고팠다.

초봄 치고는 조금 더운 날씨였다.

마을회관 앞에는 마침 할아버지 한 분이 서 있었고, 할머니들도 몇 명이 마을회관 밖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단체로 제작된 조끼를 입은 옷차림을 보니, 무언가 마을 정비에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는 중으로 보였다.

마을의 장로로 보이는 어르신에게 조심스레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넸다.


"여기 이사 올 집 좀 알아 보려고 왔습니다."


"응? 없어."


그랬다.

그 마을은 애초에 가구 수부터가 너무 적었고, 그마저도 많이 떠난 상태였다.

그래도 괜찮은 집들이 몇 채 보이길래.

그 어르신은 나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었는데, 어디서 왔는 지, 같이 살 가족은 몇이나 있는 지, 직업은 뭔 지 등이었다.


"난 사실 자네가 여기 안 왔으면 좋겠어.", "젊은 사람은 도시 나가 살어, 여기 와 이런 데 살면, 여기 물 배려. 그 못 써."


애초부터 반기지 않을 거란 것 쯤은 예상했었지만, 기분은 꽤 좋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니까.

그래도 나는 내가 내 발로 찾아 간 곳이었고, 내가 살려고 하는 마을이라면, 일단 내가 숙이고 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묵묵히 그 반응을 전부 수긍했다.


"절로 해서, 아니, 그 길 말고 이리로 해서, 이 길 따라 쭉 돌아 가. 가다 보면 다리 하나가 보이고, 철길 건널목을 건너서 쭉 위로 올라 가. 거기에 '학교'라고 있어, '학교'. 빈 집? 거기에 가면 조금 있어."


그래도 그 어르신은 싫다는 티를 냈었어도, 내가 그리 싫지는 않았는 지, 나한테 빈 집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뒤늦게 가서 든 생각이지만, 어쩌면 그 어르신은 어차피 살 만 한 집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선뜻 알려 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리상으로는 가까워도, 도보로는 꽤 한참을 걸어 올라 가야 했었는데, 초봄치곤 더운 날씨에 경사진 오르막을 올라 가다 숨이 찼다.


뜨거운 태양 아래, 아득히 보이는 채 10 가구 남짓의 작은 건너 마을.

나는 그 마을 초입에서 땀을 닦으며 숨을 고른 채, 채념했다.

차가 없이는 생활하기 힘든 지형의 마을이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고, 또 산다 하더라도 그 마을에 융화되어 산다는 것은 산 넘어 산이었음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실태를 파악한 것으로 만족하고 그냥 돌아 왔다.


그래도 나는 미련이 많이 남았는 지, 한 두 달 후에 그 마을을 찾아 갔는데.

과연 그 곳에는 그 어르신 말대로 빈 집이 조금 보였다.

한 다섯 채의 빈 집이 있었는데, 거의 폐가나 진배 없는 집이었다.

안으로 들어 가 봤더니, 안에는 과거에 살던 집기, 버리고 간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부러져 썩고 있었다.

하긴, 그 어르신은 말그대로 분명 '빈 집'이라고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떤 집은 거의 조선시대 초가집처럼 보였고, 한 두 집 정도는 그래도 비교적 최근에 버린 것처럼 보였으나, 이 역시도 아주 천정이 낮고 협소한 시골집이었다.


그랬다.

번듯한 집은 살고 있기에 번듯한 집이라 임대를 줄 이유도 없었고, 빈 집은 버리고 간 집이기에 폐가가된 것이지, 고쳐 사느니, 차라리 빈 땅에 집을 짓는 것이 나아 보이는 흉가였다.

그 마을에 태어 난 사람들은 사는 집은 살고 있기에 임대를 놓을 이유도, 버려 진 집은 그 마을에 죽었기 때문에 빈 집이 된 것이다.

어떤 이유라도 이런 외진 시골 마을에 '임대'라는 개념은 희박한 지역임을 알게 되었다.

낯선 이방인을 반길 이유도, 그런 외지인에게 같이 융화되어 살 사람에겐 매매라면 또 모를까, 임대를 줄 이유도 없는 곳이었다.


평생을 그 마을에 태어 나, 오로지 생업인 농사일 밖에 모르고 살아 가는 사람들.

천혜의 자연의 보금자리를 누리며 살지만, 그 산 자락을 요새의 벽처럼 삼아 살아 가는 사람들.

모든 것을 마을 사람들 자력으로 해결하고 수급하며 살아 가는 벽지의 시골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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