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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Aug 08. 2023

김은경 위원장의 '수명 비례 투표권'

이 발언이 청년들과의 좌담회에서 나왔다고 하던데, 내 생각에는 김 위원장이 청년들 기분을 띄워 주려다 너무 무리수를 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하 듯 막말인 것은 사실이다.


어디서부터 노인으로 규정할 것이며, 사람의 남은 수명은 개개인마다 천차만별인데, 그 것을 어떻게 책정하여 어떤 계산식으로 비례하게 투표권을 부여할 것인가.

살 날 얼마 안 남았으니까, 투표도 하지 말고 그냥 살다가 죽으란 뜻 밖에는 안 된다.

보다 근본적인 비판은, 어째서 노인에 대한 이미지를 특정한 부정적 이미지로 획일화시켜서 표현했다는 점이다.


'있어 봐야 병원비만 들고 걱정만 시키는 쓸 모 없는 노인들.'


안타까운 얘기지만, 일부라 해도 우리 사회에 엄연히 그런 노인들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노인이 되어서도 사회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그런 분들의 투표권도 제한해야 하나?

오늘 날 이 발전된 사회의 지탱과 공헌을 하신 분들이 노인들이다.

단순히 노인 중 일부층이 지팡이를 짚고 느리게 걷는다 해서, 할 일 없이 경로당에서 시간을 보낸다 해서 그들이 국민으로써 가장 기본적 참정권인 투표권을 행사할 자격이 없단 말인가?

김 위원장은 일부 노인들의 특정한 이미지를 일반화시켜서 큰 일 날 발언을 한 것이다.


자격을 따진다고 한다면, 젊은 층이야 말로 자격이 없다.

사실, 18 세 투표권도 맞지 않는 것이다.

아직은 제대로 된 사회를 겪어 보지도 못 했고, 사회가 뭔 지도 모르며, 오히려 제도권 교육을 받으면서 보호와 관심을 받아야 할 시기이다.

사회에 공헌이라곤, 공헌을 기회조차 받지 못 한 학생들이다.

그래서 배울 '학' 자를 써서 학생이라고 하지, 달리 학생인가.

아직 학교란 알을 깨고 나오지 못 한 학생들이 무슨 나라 정치에 참여한단 말인가.

제대로 겪어 보지 못 한 사회란 이런 것이라고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 아직 사회에 대한 가치관도 형성되지도 않은 청소년들이 사회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를 판별해서 나라를 이끌 자격이 있다고?

거꾸로 가도 한참 거꾸로 가는 정책인 것이다.


난 진정한 노인 복지는 마치 소모가 다 된 배터리처럼 뭘 지원해 주고, 뒤늦게 선심성 복지정책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부터 노령화가 된 노인들을 사회의 원로이자 장로로써 젊은이들이 가지지 못 한 경험과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어른'으로 육성시키는 것이 진정한 복지라고 생각한다.

노인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누군가가 사회의 어떤 역할을 하지 못 한다면, 우리 사회에 부담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회의 일선에서 한 발짝 물러 섰지만, 사회를 풍부하게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겪은 원로 분들은 일선에서 활발하게 활약하는 젊은 층의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이런 '어른'들을 양성하지 못 했기 때문에 그늘진 곳에 노인들이 할 일이 찾지 못 하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다.

즉, 노인이 애초에 사회의 '어른'으로 접어 들 수 있게끔 제도와 길을 마련하는 것, 그래서 노인들이 사회에 여전히 쓰일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진정한 노인복지의 길이지, 다 노쇠하신 분들로 전락시켜서 방치하고, 마지 못해 선심쓰는 척 뭘 챙겨 주는 게 아니란 것이다.


젊은이들이 우리의 미래라고?

난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노인들이야 말로 우리의 미래이다.

젊은이들이 우리의 미래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는 경로당에서 고스톱이나 칠 테니까, 젊은 너희들이 알아서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늙은 우리를 알아서 업고 다니라는 뜻 밖에는 되지 않는다.

난 그런 노인이 되기 싫다.


난 내가 살면서 잘못 살았던 기억, 혹은 잘 했다고 생각하는 과거들을 정리해서 젊은이들이 내가 했던 후회되는 일들, 인생의 치명적인 실수들을 겪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누가 그들의 인생을 바르게 이끌어 줄 수 있을까?

장님이 장님을 이끌어 줄 수는 없는 법이다.


노인이 사회의 짐이 된 것은, 급변하는 사회의 격랑을 따라 가지 못 하고 도태되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쓸 줄 몰라 아직도 예전 방식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노인들.

보이스 피싱에 속아서 돈을 송금하는 노인들.

젊은이들이라고 스마트폰 쓰는 법을 배우는 학원이라도 다녀서 익혔나?

알고 보면 참 별 것 아닌 것들인데.

재래식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현대식 도구에 서툰 것은 당연하다.

노인들이 이런 것도 시대 흐름에 맞게 잘 쓸 수 있도록 중년층들이 잘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모셨어야 했는데, 우린 뭘 했나?

우리 사회의 짐으로 다가 오는 것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죄송하게 생각하고 잘 해 드리지는 못 할 망정, 어차피 살 날 얼마 안 남았으니까, 투표도 많이 하지 마라?


한 번 그 말을 당신들한테 똑같이 적용시켜 보자.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이해찬 전 대표부터 시작해서 많은 민주당 원로들, 국민의 모범으로 솔선수범, 남은 수명 계산해서 투표 많이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김 위원장 본인 스스로도 곧 노인층에 속한다고 했는데, 머지 않아 60 세 노인이 될 이재명 대표는 참정권은 물론이거니와 현실 정치도 곧 물러 나셔야 되겠네?

본인 계산 식으로 이재명 대표의 남은 수명이 얼마나 되는 지가 궁금해 진다.


젊은이가 아니라, 노인이야 말로 우리가 직접 몸수 겪어야 될 우리의 미래이다.

우리 모두가 미래에는 노인이다.

앞으로 있어서는 안 될 막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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