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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Aug 11. 2023

개 '식용'에 관한 나의 견해

윤 대통령 내외가 개 식용에 관해 금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끌고 가고 있다.

나는 일부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반론을 하고픈 것도 있다.


과거에는 서민의 먹을 것들이 오늘 날처럼 쉽지 않았다.

농업 기술이나, 가축을 키우는 것도 당연히 오늘 날보다 생산량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

또, 요즘에는 아파트나 높은 담이 있는 단독주택처럼 보안이 여의치도 않았고.

개는 이런 주택 구조에 집을 지키는 일조를 하기도 했고, 키우기도 수월한 장점도 있어서 널리 키워 지게 됐다.

내가 사는 시골 이웃만 해도 개는 사료 조차 없이, 남은 잔반을 개 밥통에 털어 버리거나, 넓직한 사각 삽으로 배설물만 떠서 야산에 휙 던져 버리곤 했다.

밖에 키워도 추위에 강하고, 더울 때는 조금 안스럽긴 했지만서도.

그러다 잔치날이나 중한 날이 있을 때는 개를 잡아 잔치상을 벌이기도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시골 할머니는 개장에 키우던 개를 친척들이 내려 올 때 잡아서 큰 솥에 보신탕을 끓여 먹었던 게 기억난다.

마을에 개를 잡을 줄 아는 분이 있으므로, 잡아 주는 대신 품삯 얼마를 주든, 소주 한 잔 하든, 뭐 그랬을 것이다.

개를 잡아서 토치로 털을 태우고, 내장 손질도 다 해야 한다.

먹을 줄 아는 삼촌이나 마을 어른들은 생간을 안주 삼아 소주를 드시던 게 아직도 작은 충격으로 남아 있다.


나는 어릴 때 개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나보다 어린 친척들은 못 먹는 애들은 끝까지 못 먹거나, 먹더라도 몇 점 먹으면 그만이었다.

아무래도 개를 잡는 끔찍한 모습하고 내장 손질하는 모습을 봐서 그랬을 것이다.

생간이나 내장은 못 먹겠고, 탕은 즐긴다고는 못 해도, 주면 주는 대로 다 잘 먹었다.

그런 탓에 친척 어른들은 나를 대견하게 여기며 예뻐들 하신 듯 하다.


지금 성인이 된 나는 지금도 개고기를 접할 일이 있으면 곧잘 먹는다.

개고기와 오리, 닭 등 보신식당을 하는 가든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점심으로 후하게 보신탕 대접을 받은 것도 기억에 남고, 경기도에 잠깐 살 때 아랫 집 주인 아저씨가 보신탕을 포장해 와서 같이 먹은 기억도 있다.

평소에는 내 발로 일절 사 먹지는 않는다.

가격도 비싸고, 굳이 출처 불명의 꺼림직한 고기를, 위생에 관한 찜찜함이 있는 개고기를 비싸게 주고 사 먹을 생각은 없다.


다시 개 식용 금지화에 대한 의견으로 돌아 오자면.

이젠 시대가 점점 바뀌고, 개에 대한 인식과 정서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집 지키는 용도와 보신을 위한 육류 섭취를 겸한 반면, 이제는 소득 수준도 많이 나아 지고, 1인 가구, 애완 용으로 개를 키우기 시작한다.

개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서구권에서 우리 민족이 개 식용을 비판하는 것은, 애완용으로 키우는 동물과 식용으로 하는 것이 구분돼 있는데, 개는 애완용이지 식용이 아니라는 관점에서이다.

그런 관점에서 개를 식용한다는 것은, 아주 잔인하고 폭력적, 비윤리적으로 비춰 질 수도 있다.

나 역시도 고양이 한 마리를 애완용으로 키우는 관점에서 내가 키우던 고양이가 누군가에 의해 먹혀 진다고 생각하면, 몹시 잔혹하다고 느낄 것이다.


애완 동물과는 정서적 교감을 하고, 인간보다 제한적이나마 유대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런 동물을 먹는다는 것은 참 비 문명적이며, 잔인한 행위인 것은 맞다.

농촌 시골에서 집 밖에 키우는 개들은 애완용이라 볼 수 없다.

그저, 누가 왔을 때 짖어 주길 바라고, 키우다 잡을 일이 있으면 잡는 '가축'의 일환인 것이다.

이런 개들을 서구적 애완용 관점으로 갖다 대면 안 되는 것이다.

'가축' 용 개와 '애완' 용 개를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현 정계에서 여야할 것이 추진하고 있는 개 식용 금지에 대한 정책을 비판한다.

아직도 소수 가축 용으로 키우는 개가 있고, 우리한테는 그런 용도의 개가 필요하다.

또, 개를 아직도 식용으로 섭취하는 국민들도 전보다 줄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소수 존재하고.

왜 소수 국민의 배려를 묵살한 채 전면 금지화를 밀어 붙인단 말인가.

대통령 내외가 개인적 기호로 애완 동물을 키운다고 해서, 그들 사적인 관점에 개를 식용으로 하는 것이 못마땅하게 비춰 지면, 우리 국민 소수자는 대안도 없이 범법자가 되어야 하는가?


난 개고기 없으면, 다른 고기 먹으면 된다.

나 또한 개 아니어도 먹을 고기 많은데, 굳이 비싸고 찜찜한 개고기를 범법자가 되어 가면서까지 먹을 이유가 없다.

단, 아직도 과거 전통 음식의 일환이나 시골에서 애완의 관념 없이 단순 가축으로 키우는 소수자들을 범법자로 내 모는 법안은 반대한다.

금지화를 할 거라면, 소수자 눈높이에 맞는 대안을 제시하며 타협을 봐야지.


내가 정치인이라면, 식용으로 할 품종을 구분해서 정식 개농장을 전면 합법화할 것이다.

식용으로 할 품종으로 국한하고, 누가 애완 용으로 키우던 개나, 함부로 떠 돌아 다니는 개를 잡는 것은 처벌할 것이다.

출처가 불분명한 개를 함부로 잡아다가 잔인하게 고통을 주며 도살하는 것은 안 된다.

위생에도 매우 좋지 않을 뿐더러, 동물을 학대하는 것이므로 처벌한다.

깨끗한 환경에서 정기적으로 예방 접종도 하고, 돼지, 소 등을 하는 것처럼 귀에 바 코드를 태깅해서 관리하는 것처럼 개체마다 인식하고 건강도 체크할 수 있게끔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또, 도축할 때는 최대한 고통없이 잡아서 개고기를 전문적으로 취급할 수 있는 유통 채널로만 공급토록 한다.

보신탕을 하는 소매점이 됐든, 개인이 사서 요리를 하든, 정식으로 개고기를 위생적으로 보관 판매할 수 있는 업체로 제한하는 것이다.

정식 농장에서 도축한 이력이 없는 개고기를 무분별하게 판매하는 것은 단속한다.

개 식용을 소수라도 섭취하는 국민이 있다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내가 보기 불편하다고 해서 다른 이들의 식용을 반대해서야 되는가.

나도 애완 동물 키우는 사람이지만, 먹는 사람들은 실컷 먹게 내 버려 두자.


사실, 개는 우리 인체에 참 좋은 고기이다.

과거 선조들이 괜히 보양식으로 취급을 하는 게 아니다.

소고기, 돼지고기 먹었을 때하고 먹고 나서 몸에 기력이 돋는 게 다르다.

탕은 물론이거니와 수육, 전골로도 즐기는데, 육질은 일반 소, 돼지고기에 비할 수 없이 맛도 좋다.

이렇게 좋은 고기를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 치더라도, 먹는 사람들은 자유로이 먹게 놔 둬야지, 여야할 것 없이 무대뽀 식으로 밀어 붙이는 것은 일방적이다.


정리하자면, 개는 '식용', '애완' 용으로 별도 구분해서 식용은 정식 개농장과 판매점에서만 판매할 수 있도록 제도화시키고, 애완 용 개를 무분별하게 식용으로 잡거나, 취급하는 것은 동물보호법에 의거, 단속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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