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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Aug 13. 2023

두 정치인의 관상

전 국회의원 한선교의 얼굴을 봐 보자.


아마, 한 전 의원은 '한선교, 정은아의 좋은 아침'이란 방송으로 국민들에게 알려 져 있다.

참신하면서도 친숙한 이미지였던 한 전 의원이 정계 입문하더니, 서서히 얼굴이 무너 지기 시작했다.

년도 별 기사를 보면서 한 전 의원의 얼굴 변천사를 관찰해 보면 좋을 것이다.

가면 갈 수록 성격은 안하무인이 되고, 난폭해 지는데.

글쎄, 얼굴이 갈 수록 무너 지는 것은 과한 음주도 있겠지만, 근심과 걱정, 답답함, 이런 부정적 감정이 쌓이고 쌓여서 장시간 변화하는 것이다.


한 전 의원이 권력에 취해서 점점 변질되어 가는 것이 얼굴을 통해 드러 나는 것이다.

괴스럽게 무너 지고 추하게 변해 버린 모습.

내가 본 정치인 중에 가장 안 좋게 변해 버린 관상이었다.

아마, 정신적으로도 많이 무너 져 있겠지만, 건강도 덩달아 같이 주저 앉았을 것이다.

'좋은 아침' 방송했을 때 그 신선하고 맑은 모습은 다 어디로 가고.


두 번 째는 전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이다.


청년 정치인으로 갓 당에 입당해서 활동할 때만 해도 얼굴 이렇지 않았다.

기득권 정치인과 다른 새로운 관점과 정치에 대한 비전을 펼치면서, 젊은 하버드 출신 엘리트라는 간판으로 보수 정당에 입당했기에 기대와 주목을 많이 받았다.

이랬던 이 전 대표가 대선 직후부터 얼굴이 안 좋게 변하기 시작했다.


소위 말해 '윤핵관'이라 불리는 몇몇 당원들과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하더니, 윤 대통령과도 묘하게 소원해 지면서 점점 갈등이 심화되었다.

기사에는 연일 당 내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야당과는 뭐 당연히 대표로써, 대표 직 내려 와서도 당연히 싸웠으니.


정치인들이 서로 싸우고 싸우는 자들인데, 누구는 얼굴이 흉하게 변하고, 왜 누구는 그래도 보존이 될까?

잘 한 번 관찰해 보면 알 수 있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언론의 판에 춤추면서 자기 감정대로 싸우는 정치인이 있고, 그래도 성숙한 자는 자기 감정대로 좌우되고 보다, 이성적, 정책적 비판을 한다.

이 둘은 꽤 다르다.


언론의 마이크가 내 입 앞에 다가 왔을 때, 내가 감정적으로 찌르면, 그에 대한 반발력으로 나도 찔리게 돼 있는 법이다.

이러면 내가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고, 그에 대한 복수심으로 더욱 강도높게 악감정을 표출한다.

그러면, 또 다시 상대 편에서 또 상처를 입고.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다 보면, 지속적으로 받은 정신적 상처가 누적되어 서서히 무너 지기 시작하고, 그 것이 근심, 분노, 답답함, 공격적인 기운이 얼굴로 몰리면서 그런 흉한 얼굴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 한 젊은이가 이런 격한 중앙 정치판에 발을 들여 놓으면, 이렇게 상처를 받고 추락하게 돼 있는 것이다.

자기가 대표가 됐다고 해서,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해선 안 된다.

기정 정치인들로 안 되니, 한 번 젊은 엘리트 출신에게 맡겨 보자는 심산으로 당 대표가 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대표 딱지 하나로 당원들을 호령할 수 없는 시대이다.

당 대표와 당원들이 수직 상하 관계는 아니지않은가.

미약한 생각을 버리고, 젊은이는 기성 정치인들을 존중하는 태도로 겸허히 접근했어야 한다.

자기가 대표라고 내 말을 무조건 따르라, 겉으로 호칭은 그렇게 해 줄 지언 정, 속으로는 더욱 따를 수 없는 법이다.


이런 얼굴이 되어 가는 자들이 아직도 더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조금 아슬아슬하고, 추미애 전 장관도 그렇다.

고민정 의원도 조금 주저 앉았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정치 관련 화제를 다루는 유튜버, 유재일 씨는 이미 이 수순에 한창 접어 들었다.

관상이고 뭐고 간에, 그냥 일반인 시각으로 그 사람 얼굴을 한 번 보시라.

그냥 겉 보기에도 심통 가득한 얼굴이지, 정상적인 얼굴은 아니다.

이 분도 이대로 계속 가다 간 한선교, 이준석처럼 될 것이다.


진중권 씨도 진즉부터 이런 얼굴이 되었는데, 본인이 잘못한 것에 비해 생각보다 많이 무너 지진 않았다.

진중권 씨와 라이벌로 같이 거론되는 변희재 씨도 조금 위험하다.

위에 거론한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렇다.

다 독설가들이다.

옳고 그름을 다루는 것과, 자신의 시각에 맞지 않는다해서 이 것을 감정적으로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은, 본인 스스로 독을 생산해서 입으로 세상에 널리 내 뿜고 있는 것이다.

괜히 '독설'이란 단어가 만들어 진 게 아니란 것이다.


사태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고 해결책을 찾는 이들은 감정적 표현이나, 공격을 하지 않는다.

공격은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의 얼굴을 무너 지지 않는다.

내가 보는 게 옳고, 내가 잘 아는 전문가이고, 그러므로 내 의견이 맞다고 고수하는 이들은, 다른 이견을 접했을 때 틀렸다, 잘못됐다, 나에 대한 무시라고 받아 들이기 때문에, 이를 감정적으로 처리하고 발산한다.

그 것이 결국 쌓이고 쌓이면, 결국 부메랑이 돼서 자신을 친다.

이 것이 사회 발전과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일까?

감정적 '싸움'이다.


쓰자면 더 긴데.

위에 열거한 이들의 얼굴들을 변천사를 찬찬히 관찰해 보면 재미있다.

꼭 정치인 아니더라도, 이렇게 독설을 많이 하는 자들의 독기 오른 얼굴이 결국 어떻게 되는 지.

내가 생산한 독에, 내가 중독된다.

문제 해결을 위한 모순 비판과, 개인의 부정적 감정으로 말미암아 독설을 발산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내 관상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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