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속선의 삶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속선 Aug 14. 2023

"아... 저, 그게... 좀, 더워서..."

예전에 DVD 영화관에 일할 때 일화이다.

'DVD방'이라고도 많이들 하는데, 아무래도 연인들끼리 많이 온다.

거의 그 때가 그 일을 그만 둘 때 마지막 한여름이었던 듯 한데.


야심한 밤에, 자정 무렵으로 한 20 대 남녀 커플이었다.

사실, 거의 이 시간대에 오는 손님들은 영화보다는 술집에서 한 잔 걸치고 쉬러 오거나, 술김에 둘이 관계를 하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다.

뭐, 애초에 이 업이 그런 것이니, 그냥 그 때도 그러려니 하고 손님을 받았다.


입실을 시키고 한 20 분이 지났나, 방 안에서 이런저런 소리들이 들린다.

모텔도 마찬가지지만, 방음이 완벽하지 않다.

당사자들은 몰라도, 방 안의 소리가 중앙 홀과 카운터까지 들린다.

무슨 소린고 하니, 왠지 여자는 싫은데 남자가 자꾸 대쉬를 하는 듯 한 분위기였다.

여자가 싫은 소리를 더욱 크게 내니, 어지간한 아웅다웅 정도가 아니고, 어쩌면 위험한 상황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런 정도면 안에서 우당탕탕하는 소리가 크게 들릴 것 같은데, 또 그 정도는 아닌 것 같고.

아무튼 여자가 싫다는 반응을 팍팍 내는 분위기였다.

잠시 생각에 빠졌다.


"여기는 DVD방인데요, 어떤 손님이, 여자는 싫다는데 남자가 계속 관계하자는 듯 한 소리가 들려요."


내가 생각에 빠진 이유는 이렇다.

내가 직접적으로 나서다간 오히려 역풍을 당할 수도 있다.

"여긴 도청장치가 있나?", "몰래 엿듣는 거냐? 신고한다.", "돈내고 온 손님인데 당신이 뭔 상관이냐.", 등등.

그래서 내가 112에 전화를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이 결정은 참으로 잘 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여태까지 경찰을 부른 것 중, 이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매장 안에 소란을 일으키는 손님들 때문에 부득이 경찰을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번 신고만큼 경찰이 이리도 빨리 온 적은 처음이었다.

그 전에는 '영업방해' 명목으로 신고를 하면, 빨라야 10 분에서 오래 걸리면 30 분 안에 왔던 듯 한데.

이 건 한 5 분만에 도착한 것 같다.

그 것도, 경찰 둘만 온 게 아니라, 한 5~7 명이 한꺼번에 출동했다.

내 앞에 이렇게 많은 경찰관이 온 것 또한 처음이었다.


"어디에요?"


"이 방이요."


"여기에요?"


"예."


"경찰입니다. 잠깐 문 좀 열어도 될까요?"


그랬더니 방 안에서 한 바탕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놀라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잠깐만요!"


무언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금속 벨트 버클이 부딪히는 소리 등이 나지막하게 들려 온다.

직접 보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무슨 일이 벌어 지고 있는 지가 내 머릿 속으로 그려 졌다.

경찰관이 노크를 한 지 한 3 분 만에 방 문이 열린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건전하게 영화를 감상하고 있었다면, 경찰이 문을 열어도 되냐고 물었을 때 바로 열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 업주 신고 받고 출동했는데요. 두 분 신분증 줘 보세요. 둘이 어떤 관계에요? 연인이에요?"


여자가 대답한다.


"아, 그냥 남자친구에요."


경찰관이 남자에게 묻는다.


"왜 바로 문을 못 열어 주셨어요?"


"네?"


"저희가 노크했을 때 왜 바로 문을 안 열어 주셨냐고요?"


"영화보고 있어서 소리가 잘 안 들렸어요."


밀폐된 방 안에서 여자를 두고 옷을 홀딱 벗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업주는 원치 않는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신고까지 했다.

이런 정황들을 바탕으로, 경찰은 본격적으로 이 둘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근데 왜 옷을 벗고 있었어요?"


순간 남자의 말문이 막힌다.

떼로 출동한 경찰관이 방 문 앞을 막고 있으면서 강간 사건을 의심, 현장 추궁하는 진풍경이었다.


"아... 저, 그게... 좀, 더워서..."


"덥다고 이 방 안에서 옷을 다 벗고 있어요?"


경찰은 여자에게 남자가 강제로 관계를 시도한 것은 아니냐고 재차 집요하게 묻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진짜 그냥 있었어요."


오히려 남자를 변호하는 듯 한 태도, 그냥 남자친구라는 답변, 아무 일 없었다는 비현실적인 답변, 경찰은 그 여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뭔가 남자에게 신고하면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강압적인 협박을 받아서 저리 대답한 것은 아닌가,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일단 나오세요. 서 가서 얘기하자고요."


난 어쩔 수 없다지만, 그 손님에게 조금 미안한 것도 있고, 괜히 일을 키울 필요가 없어서 두 손님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남자는 조금 옷을 풀어 헤친 듯, 아니, 정확히는 옷을 급하게 입은 듯 허술해 보였다.

여자도 내 눈을 마주 치지 않으며, "죄송합니다.", 말 한 마디 뱉으면서 경찰에 둘러 싸여 매장 밖으로 나갔다.


글쎄, 그 둘은 아마 간단히 조사를 마치고 귀가했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아마 범죄까지는 아니고, 조금 술김에 남성이 과잉스럽게 대쉬를 했고, 여자는 그에 반발을 하는 상황이었던 듯 하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홀까지 들려 오는 저 손님들의 의심스런 대화를 막아야 했고, 그래야 오는 손님들이 그런 소리를 듣고 다시 나가지 않으므로.

내가 직접 나서지 못 했으므로, 경찰을 부를 수 밖에 없었고.


내가 이 일화를 지인에게 들려 줬더니, 아주 박장대소를 해 버린다.

내가 일했던 곳에서 벌어 졌던 가장 희대의 사건으로, 아마 이 일화는 평생의 안주 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과거 은사 님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