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존귀한 존재
나는 존귀하다.
나는 이 세상에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내가 없으면, 이 세상은 거대한 기계의 태엽이 빠진 것처럼 삐그덕거리기 시작하면서 무너져 내릴 것이고, 내가 없다면, 이 우주란 거대한 생명체는 언젠가는 영양결핍으로 쓰러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존귀하다.
허나, 요새 마음공부니, 무슨 영성공부니 하는 데서 하는 말을 들어 보면, 참으로 이상하게들 써 먹는다.
누군가한테 핀잔을 들어서 꿍해 있을 때, "너는 존귀한 존재다."라고 한다.
그 것은 그냥 착해 빠진 생각으로 달래는 것에 불과하다.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했다면, 누군가에게 안 좋은 얘기를 들었다면, 내가 뭔가 그 안에서 역할을 잘 못 했거나, 내가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굳이 가서 듣는 말인 것이다.
화내고 싶어 화내는 사람도, 안 좋은 얘기하고 싶어서 굳이 하는 사람은 없다.
오죽하면 그런 얘기를 했겠나.
털고 나오는 게 아니다.
무엇이 문제인 지, 나를 필요로 한 곳이 맞았는 지,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툴툴 털고 "세상은 그러려니."하고 살아 가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그 털고 나오는 것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담고 싶어서 담는 것도 아니고, 내 안에 박혀서 그 상처가 가득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한테 방법이 없으니까, 너 자신은 존귀하다고, 너 자신을 작게 보지 말라고 한다.
그럼 나한테 안 좋은 지적이나 싫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한테 대 놓고 면전에다 그러면 되겠네?
"나는 존귀한 존재."라고.
그럼 상대방이 퍽도 "예에."하고 받아 주겠다.
뭔가 사태에 대한 접근을 이상하게 하고 있다.
나는 이 세상에 필요한 것도 맞고, 존귀한 것도 분명한데, 내가 지금 이 자리, 이 위치에서 존귀한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다른 이에게 안 좋은 소리로써 듣기 이 전에, 내가 스스로 내 자신에게 자문해야 할 일이다.
더운 곳에서는 시원한 에어컨이나 시원한 청량음료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추운 곳에서는 속까지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 힘들 때는 같이 어려움을 나누고, 곁에 있어 줄 존재가 되어야 한다.
나는 내가 어딘가에서, 나를 필요로 한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줬느냐, 나 자신에게 던져야 한다.
그냥 산다고 해서 살아 지는 게 아니고, 그냥 행동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나를 필요한 시기에, 나를 필요한 곳과 사람들에게 긴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길을 모르다 보니까, 그냥 좌충우돌 살다 보니까 더운 곳에서 더운 난로가 되고, 추운 곳에서 에어컨 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
당연히 싫다고 할 수 밖에.
그래 놓고 "나는 이 세상에 쓸 모 없는 존재인가?", 그런 못난 의문을 가지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너도 귀중한 존재야.", 하는 멍청한 해답책을 듣게 된다.
나는 귀중한 존재고, 내가 귀중한 만큼 이 세상 모든 것이 존귀하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존귀하다.
나는 존귀하니까, 다른 이들은 안 존귀한 것이 아니고.
그 사람들도 존귀하니까, 나도 그 사람을 존중하고, 그가 할 수 없는 것을 내가 대신 해 줄 수 있고, 그래야 내가 존귀해 지고, 나도 혼자 살아 갈 수 없는 고로,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을 때는 그 분들 역시 존귀한 분들이고.
다만, 내가 세상에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느냐, 하다 못 해 내가 세상을 위해 필요로 한 존재가 되려는 노력이라도 하고 있는가는 분명 별개인 것이다.
세상을 좀먹는 놈팽이는 존귀하지 않다.
내가 힘들 때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존재 또한 존귀하지 않다.
내가 그런 것들이 싫은 게 마찬가지인 것처럼, 내가 역으로 다른 이에게 그런 존재로 전락한 것은 아닌 지, 절실히 따져 물을 때이다.
내 역할과 존재를 필요로 하는 곳에 도움이 되지는 못 할 망정, 도움은 커녕, 오히려 나 자신이 어찌 귀중해 지길 바라는 지.
세상이 나를 필요해 하는 만큼 나는 존귀해 진다.
그저, 산 속에 혼자 자급자족으로 산다면, 나는 나 홀로 존귀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