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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속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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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Sep 22. 2023

상담 기록: 술집 여인을 짝사랑한 노총각

짝사랑까지는 조금 과장이지만, 딱히 적절한 제목이 마땅치 않았다.


작년 여름께였을 것이다.

재작년이었는 지는 기억은 안 나는데, 아무튼.


쥐띠생의 노총각이었다.

딱 봐도 조금은 쑥맥끼가 있어 보였고, 수자원 관련된, 아무튼 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어찌어찌 살다 보니 제대로 된 연애를 못 해 봤고, 외로움에 화류계 여성, 시골이다 보니 가볍게 술 같이 마시면서 대화해 주는 그런 여성인 듯 하다.

연애의 관계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사적인 관계까지 진전되어 왔고, 과연 이 여성과 궁합이 어떤 지를 의뢰해 왔다.


일단 사주를 받아 놓고, 시간이 야심해 졌으니, 날 밝은 다음 날 뵙자고 하였다.

궁합을 대입해 보니, 그다지 좋은 합은 아니었다.

나쁘다고 할 정도에 조금 가까운, 서로 잘 노력하면 무난하다는 표현 조차 썩 내키지 않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 궁합 자체가 아니었다.

정말 문제인 것은, 이런 지경으로 찾아 와서 동갑내기 술집 여성과 궁합을 보여 달라는 정신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날이 지났고, 약속 시간에 맞춰 대면 상담을 하면서 이런 얘기를 해 줬다.


"봅시다... 궁합도 궁합이지만, 지금 본인의 상태가 어떤 지부터 좀 체크부터 하자고. 지금, 내가 그 여인이 마음에 들어서 연애나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정도라면, 내가 지금 기운이 다운된 상태에서 그 여자를 만났기 때문에 마음이 드는 것이오. 내가 내 자신을 금전적이 됐든, 사회적 직책이나 실력, 인맥 등을 갖추지 못 한, 다소 황량한 상태에서 그런 여성을 접해도 좋게 보이는 것이라오. 잘 한 번 생각해 보시오. 갈증난 상태에서 마시는 냉수 한 사발과, 보통 상태에서 그냥 무심히 마시는 물 한 잔이, 어떤 쪽이 더 시원하고 쭉쭉 넘어 갈 지. 내가 지금 정신적으로 다운된 상태에서 그 여인 뿐이 아니고, 누굴 만나더라도 당신은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거지. 어떤 궁합이나 이런 걸 따질 게 아니고, 지금."


어느 정도 이해를 할런 지 모르겠지만, 영 못 알아 듣는 정도는 아닌 듯 보였다.

둘의 관계는 더군다나, 자신이 대쉬를 하는 쪽이고, 여자 쪽은 그다지 미덥지근한 반응이란 것이다.

이토록 불리한 악조건 속에 굳이 어떻게 하면 잘 풀릴까, 그런 얕은 기대를 하고 궁합을 보려 하다니.


"흘러 간 물 받으려 부랴부랴 하류 쪽으로 내려 가지 말고, 나는 내 자리서 보다 자신을 좀 갖추시오, 어? 내가 오죽 내 자신을 가꾸지 않고, 갖추지 못 했으면, 이렇게 술집 여인과 조금 친해 졌다고 해서 그런 생각이 들겠소? 내가 목이 마른 상태에서는 구정물을 줘도 벌컥벌컥 마시게 된다니까? 연애운이고 지랄이고 간에, 상대방 입장에서 나도 뭔가 메리트가 있을 만 한 뭐를 제공해 줘야 할미꽃이라도 꼬이지 않겠냐고. 그러려면 내 자신을 조금 갖추고. 지금 본인은 약한 상태에서 살짝 툭 건드리니까 거기에 지금 흔들리고 있는 거라고. 그 여자를 만나지 말라가 아니고, 적정 선에서 외로움 달래는 선까지만 한 번 해 봐요. 허나, 그 이상의 연애는 쉽지 않아 보여. 그러니까 그런 생각일랑 애초부터 접고, 멀리 본다는 생각으로 지금이라도 나 자신을 좀 갖추자고.",


"흘러 가는 물이야, 흘러 가는 물. 굳이 그 물만 물이 아니고, 새 물은 또 와. 흘러 간 물 받으려고 헐레벌떡 내려 가다 보면, 흘러 간 물도 못 받고, 새 물도 못 받는다? 그 걸 알아야 돼! 흘러 가는 물은 그냥 흘러 가게 냅 둬. 응? 눈을 멀리 뜨자고. 나는 내 자리에서 힘과 실력을 갖춰. 그러다 보면, 새 물 왔을 때 더 깨끗하고 맑은 물을 받던 지, 말던 지. 나를 갖추지 않고 그냥 시간만 흘려 버리면, 새 물이 와도 내 그릇이 작아서 못 받는 겁니다."


인간 관계 중에 이성과의 연애 문제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서로 잘 이뤄 나가면 그토록 달콤하고 황홀할 수가 없는데, 부족하면 내 가슴은 황량해 지고, 내 욕심대로 상대를 움직이거나 과도한 것을 바라게 되면, 그토록 잔혹하고 파괴적인 것이기도 하다.

궁합에 대해 상담을 하다 보면, 거의 벙어리 냉가슴 상태에서 면전 앞에서 말도 못 하고 끙끙 앓다가 의뢰를 해 오는 경우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궁합에 있을까?

그렇지 않다.

서로를 파악하고 아는 과정이 부족한 상태에서 어느 한 쪽이 손목을 끌어 잡고 다음 코스로 넘어 가려고 한다.

상대는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이 때부터 연애 방정식의 톱니 바퀴가 어그러 지기 시작한다.


좋은 궁합이나 나쁜 궁합은 없다.

다만, 서로 잘 맞는 경우는 유리한 스타트 점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잘 안 맞는 경우는 그만큼 불리한 스타트 점에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정말 좋다면, 안 좋은 궁합이고 지랄이고 간에 다 그런 건 필요 없을 정도로 좋다면.

왜 안 된단 말인가.

당사자가 좋다는데.

천하 하느님도 떼어 놓지 못 한다.


지금 상담자의 경우, 이와 달리, 제대로 된 연애를 못 한 상태에서 혼자 김치국을 마신다고 볼 수 있겠다.

어떻게 진전을 이뤄야 할 지,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 이런 지각이 없는 상태에서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문제는 될까, 안 될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체가 아니었다.

흘러 가는 물을 잡으려는, 이런 상태가 되도록 나 자신을 갖추지 못 한 결핍증이 원인인 것이다.

이런 상태라면, 어떤 여인과 조금 가까워 줘도 가뭄 속 이슬비처럼 촉촉하게 적셔 짐을 느낀다.

그 상태에서 그 여인을 만났기 때문인 것이지, 그 여인과의 궁합이 좋다던가, 잘 될까를 궁리하는 것 자체가 다음 계단을 건너 뛰고 세 계단을 밟으려는 것이다.

그 계단을 오를 수 있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자체가 아닌 것이다.


그 여인과는 서로 부담 안 되는 선 내에서 적당히 같이 어울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 잘 되면 연애로 발전시키면 되는 거고, 하다 안 되면 악연되기 전에 미련 없이 정리하면 되는 것이고.

서로에게 득이 되지 못 할 거라면, 마이너스는 되어선 안 된다.

내 갈 길을 알면, 후련한 심정으로 초연하게 다시 내 자리로 돌아 올 텐데.

그러질 못 했다.

지금은 어떤 지 모르겠다.

내가 일러 준 대로 평정심을 잘 찾고 새 물을 기다리고 있는 지, 혼자 그 여자한테 매달려서 헌 물도, 새 물도 못 받고 있는 지.


내가 해 준 얘기가 조금은 어려운 얘기일 지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살아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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