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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Sep 27. 2023

한식의 우수성

나는 음식을 전문적으로 평하는 평론가는 아니고,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요리도 제대로 못 해서 겨우 라면이나 끓일 줄 알고, 집에서는 간편식 일색이다.

그러나, 나름 다양한 음식을 접해 보면서 느낀 생각은, 우리네 밥상이 알면 알 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외식으로 즐기는 다양한 음식들, 중식이나 양식, 일식, 이런 음식들은 이따금 별미로 즐기겠지만, 식사다운 식사, 끼니따운 끼니는 역시 한식만 한 게 없다.

도시 생활을 많이 했던 나 역시, 패스트 푸드를 즐기는 편이다.

예전에 물가 싸고 행사를 정말 많이 했던 맥도날드를 거의 매일같이 드나 들었으니까.

아주 예전 얘기지만, 정말 쌀 때는 빅맥이 런치가로 3000 원 했었다.

 패스트 푸드가 참 쌀 때여서 굳이 비싼 한식을 먹을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먹고 나면 소화가 좀 편치 않음을 은연 중에 느끼곤 했다.


시골에 내려 오면 버거킹은 커녕, 맥도날드는 어림없어 지게 되었고, 이따금 읍내로 나올 적에 중식이나 한식집에서 식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롯데리아가 하나 있긴 했지만, 그다지.

글쎄, 나도 나이를 좀 먹어서 그런가, 그냥 한식이 잘 받게 됨을 느끼게 됐다.

그냥 늘상 먹던 평범하기 짝이 없는 밥, 찌개, 찬거리인데.

예전에는 왜 그런 집밥이 식상하고 잘 넘어 가지 않았던 지.


찌개가 같이 나오는 백반도 좋지만, 눈치 안 보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한식 뷔페를 즐겨 찾는다.

사실, 한식 뷔페에서 나오는 찬이나 요리들 태반이 반 조리돼서 나오는 찬이라던 지, 공장에서 만든 가공식이란 걸 안다.

실제 식당에서 요리로 내 놓는 것은 얼마 안 된다.

저렴한 가격 탓에 질이 조금 떨어 지고, 조금 부실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입소문날 정도로 잘 하는 집은 그래도 정성을 쏟아서 그런지, 부실한 느낌이 안 든다.

그럼에도 내가 평소에 집에 먹는 간편식보다는 훨씬 나으므로.

나는 요리를 위해 장을 보고, 요리에 시간을 뺐기는 게 아까운 사람이므로, 간편식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 생각나서 이따금 패스트 푸드나 밀가루가 많은 빵이나 면 요리를 먹다 보면, 장이 약한 나는 탈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고, 항상 식후에 속이 불편하다던 지, 아무튼 소화가 편치 않은 느낌이 든다.

첫 맛은 좋아도, 뒷 맛이 영 개운치 않은 것들이다.

그러나, 한식은 조금 배불리 먹는다 해도 그렇게 소화가 잘 되고 속이 편할 수가 없다.

먹다 보면 절로 느낀다.

그냥 나물에다 평범한 찬 거리 몇 가지, 국 한 사발, 메인으로 나오는 고기 반찬이나 생선 토막일 뿐인데.


사회 초년생일 때였다.

점심에 사장이 밥을 사주기로 했는데, 더운 여름이라 나는 냉면을 시켰다.

그런데, 영 힘을 못 쓰겠더라.

밥을 먹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몸에 기운이 돋지 않았다.

그 외에도 식사를 밥 아닌 것을 하게 되면, 나는 항상 역시 밥만 한 게 없다는 걸 종종 느꼈다.

꼭 고기를 많이 먹어야 힘을 쓸 수 있다는 게 아니다.

밥은 다른 곡물로 대체할 수 없는, 참으로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한식집에 왜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유독 많은 지 이해하게 되었다.

단순히 노동자들이 중년 이상의 보수적인 층이라서라기보다, 늘 먹는 밥이 단순한 식사 이상의 '무언가'인 지 그들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네 한식이 그래서 우수하다고 본다.

단순 신토불이라서 우리네 밥상이 우리 몸에 잘 맞는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한식은 그 이상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고, 잘 다듬어 져서 완성된 것이 전통으로 내려 왔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대인은 그 깊은 뜻과 가치를 잘 모른 체, 대대로 내려 온 식재료와 조리법을 무의식적으로 체득해서 답습하고 있다.

서양 음식이나, 중, 일식도 물론 고급 음식이 엄연히 존재하고, 나 역시도 먹을 때 감탄을 하곤 한다.

이웃 나라인 중식만 보더라도, 얼마나 다양하고 진귀한 식재료를 활용해 화려하고 고급스런 음식들이 많은가.

허나, 매일 같이 그런 고급 중화요리만 먹는다라고 하면, 나는 차라리 평범하고 저렴한 우리네 한식을 택할 것이다.

누가 돈을 대고 사 주더라도 난 싫다.


등잔 아래가 어두운 것 마냥, 오히려 우리 민족이 우리네 음식에 밝지 못 하는 것이 아닐까?

단순 혀를 자극하는 식의 탐미하는 맛이 아닌, 조금은 심심하고 수수한 것 같지만, 아무리 먹어도 탈이 없고 몸에 기운을 돋게 하고, 식재료의 특성을 파악해서 영양, 신체의 조화까지 추구하는 깊이까지 도달한 것이 우리네 한식이라고 감히 평해 본다.

우리 음식의 진가를 알게 되면, 가히 음식을 통해 '조화와 균형'까지 추구했던 도인적 면모의 조상들로 다시 보게 된다.

자긍심을 넘어, 오랜 세월 동안 승화시켜 온, 이 수준 높은 한식의 우수함을 계승 받은 현대인으로써, 후세인들에게 더욱 발전시켜 물려 줘야 할 무게감마저 느끼게 된다.


한식이 이렇게 수준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기반이 어디서부터였을까?

나는 그 기저에 우리 땅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본다.

우리 땅은 사시사철이 항상 균일하고, 산과 강, 바다를 고루 갖춘 천혜의 땅이다.

농사를 짓기 힘든 척박한 기후의 서양의 땅이 아니라.

중국 대륙처럼 큰 땅은 아니지만, 산에 나는 작물, 너른 땅에 나는 작물, 강과 삼면 바다에서 나는 갖은 식재료를 잘 조화시키면서 음식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근간 위에 살기 때문이다.


이따금 유튜브 영상이나 방송을 통해 보면, 외국인을 데려 다가, 족발이나 삼겹살 따위를 실컷 먹여 놓으면서 "한식의 우수성을 세계인이 인정한다."는 식으로 포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족발도 우리 음식이고, 삼겹살도 우리 음식은 맞는데, 진정한 한식의 우수성은 다양한 식재료를 하나의 통일된 맛으로 조화시켜서 영양과 건강까지 추구했던 우리 선조들의 얼이라는 핵심을 전혀 꺼내 놓지 못 하고 있다.

그저, 맛보고 즐기면서 오락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포장시켰을 뿐이다.


껍데기 멘트로만 '한식의 우수성'을 외치면서 세계에 목청만 키울 것이 아니라, 우리 조차 등한시하고 있는 우리 민족의 얼과 정신부터 다시 찾아야 한다.

"대체 무엇이 당신네 음식 문화가 우리보다 어떻게 우수하단 말이냐?"라는 질문에 정답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맛을 탐미하고, 진귀한 식재료로 고급 요리를 만끽하는 것은 우리 뿐이 아니고, 일식, 중식, 서양 음식도 즐비할 대로 즐비하다.

그 와중에 제 아무리 고급 궁중 요리 따위로 한식의 우수성을 역설한다 한들, "에이, 너네도 우리랑 별반 다를 게 없네? 그런 궁중 요리는 중국도, 프랑스에도 많은데."


평범하기 그지 없는 콩나물 무침이나, 오징어국, 진미채, 이런 흔한 음식들을 단순 하나하나 떼어 놓고 보면, 사실 초라하고 별 볼일 없는 찬에 불과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평범한 찬과 국, 찌개 등으로 한 상을 차려 보면, 그토록 서로 조화를 이루고, 완벽한 한 끼가 아닐래야 아닐 수 없다.

독단적으로 맛을 강하게 어필하는 음식은, 혀를 자극할 순 있어도, 다른 음식과 조화를 이루지 못 한다.

우리네 음식은 이런 강한 맛의 음식이 많지 않다.


비빔밥에 들어 가는 나물과 채소, 밥과 고추장은 개별적으로 먹어 보면 별 맛은 없다.

그런데, 이 것들을 한 데 버무려서 한 숟갈을 잘 음미해 보면.

어쩜 이렇게 완벽한 한 숟갈일런 지 모른다.

단 적인 예로 비빔밥을 들었지만, 우리네 한 상은 어떤 형태로든 지, 전부 이런 '조화와 균형'이 자신을 어필하지 않으면서 오롯이 음식을 섭취하는 사람으로 지향하고 있다.


아무리 우리가 서양이나 외국의 식문화를 많이 접하고 즐겨도, 결국은 우리 한식으로 다시 돌아 오는 근본이 여기에 있다.

막연히 신토불이라서가 아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우리네 음식이지만, 그래도 결국은 몸으로 은연 중에 느끼는.


예전에 어떤 분이 점심을 사 주기로 했다.


"뭐 드실래요?"


"그냥 밥."


"그냥 밥? 돈까스도 있고, 중국집도 있는데."


"아니, 그냥 밥."


"그냥 밥... 알았아요, 한정식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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