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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Sep 28. 2023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칼을 쓰지 말아야 할 때에 칼을 쓰거나, 칼을 잘못 쓰면 망한다.


칼이란 물건을 자를 때 쓰는 아주 유용한 도구이다.

요리를 할 때도, 갖은 작업을 할 때도, 부득이 처단해야 할 자를 처단할 때도, 칼은 반드시 필요하다.

칼을 잘 써서 맛 좋은 요리를 대접하는 분, 칼을 잘 써서 좋은 물건을 만드는 분은 흥해야 한다.

왜 칼을 요긴하게 잘 쓰는 분들이 망해야 한단 말인가.


성경의 오랜 격언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는 것."이 아니고, "칼을 잘못 휘두르는 자, 칼을 못 쓰게 해야 할 것이오, 칼을 잘 쓰는 자, 더욱 좋은 칼을 쥐어 주어서 흥하게 해야 한다."로.

세상 모든 만물의 주인인 인간이 어떻게 지혜롭고 요긴하게 잘 쓰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지, 칼을 써서 흥했다 해서 곧장 망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칼은 칼일 뿐이다.

한 인간이 탄생했을 때부터 처음 맞이하는 것이 탯줄을 자르기 위해 쓰이는 칼이다.

칼은 참으로 인류가 도구를 쓰기 시작한 이래부터 유용되어 온, 아주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인 도구이다.

이 세상에 칼만 한 것이 없다.

나 또한 택배 상자를 개봉하기 위한 일제 커터칼이 무려 3 개나 있다.


허나, 칼만큼 위험한 도구도 몇 없다.

실수하면 내가 베이고, 악한이 들면 타인을 위협하거나 해치는 것이 또 칼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이 칼이 없다면 악한도 사라 질까?

악한은 칼이 없으면 다른 흉기를 이용해 악행을 도모할 것이다.

칼이 문제가 아니라, 칼을 쥐고 무엇을 하려는 인간의 정신에 있는 것이다.


칼은 가만히 놔 두면 그냥 가만히 있는다.

가만히 있는 칼에 베이는 법은 없다.

싱크대 서랍 속에 얌전히 있는 칼을 무서워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자르기 위해 칼을 든 순간부터 조심해야 한다.

허나, 칼을 쥐지 않아도 칼을 든 자보다 더 무서운 이들이 있다.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권력자, 말이라는 무형의 칼로 상대방의 심장에 보이지 않는 칼을 꽂는 자, 칼은 없지만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수백 개의 칼이 꽂힌 함정에 빠뜨리려는 사기꾼.

어쩌면 그들에 비하면, 칼에 베이는 것 쯤은 아무 것도 아닐 지 모른다.


칼 중의 최고의 칼은 권력자가 휘두르는 칼이다.

그 것이 무력이 됐든, 법적 권력, 사회적 권력, 자본적 권력이든.

이 권력이란 칼을 바르게 잘 유용해서 많은 이들에게 이바지를 한다면, "칼로 흥한 자, 망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큰 칼을 줘서 더욱 많은 이들에게 큰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대파를 치거나 겁을 주는 데만 쓰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질서를 위해 때로는 처벌하거나, 사회와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이를 보호하는 데 쓰여야 한다.


여태까지 인류는 이 큰 칼을 제대로 휘두르기 위한 예행 연습을 해 왔다.

아무도 바르게 권력을 유용해 온 자가 없다.

권력자는 권력의 참뜻을 모른 체, 자신을 중심으로 사익을 챙기거나, 권력의 예리한 칼날에 많은 이들을 희생시켰다.

그 결과, 자신이 휘두른 칼에 희생되거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단두대에 목이 잘렸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그 권력의 최종 수혜는 국민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단순명료하면서도 너무 자명하다.

우리가 하지 못 하는 일을 대신 해 달라는 바램을 업고 권력의 자리가 생긴 것이고, 그 국민의 대리인이 권력자인 것이다.

알면서도 모두 권력에 타락하여 이러한 본질을 망각하고 만다.


물론, 역사 상 모든 이들이 권력을 탐하고 타락한 것은 아니다.

내 사욕을 위해서가 아닌, 참된 정치를 하려던 이들도 많다.

허나, 무엇이 국민의 염원을 위해 권력을 바르게 행사하는 것인가에 대한 길을 몰랐다.

하려고는 했으나, 지혜롭지 못 해 정도를 걷지 못 했다.

어느 쪽이든 지, 권력에 타락한 자이든, 길을 몰라 좌충우돌 권력을 행사한 자이든, 바르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제대로 알고 시행한 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여태까지는 그래 왔다.

허나, 이제는 무수한 시행착오 속에 바르게 길을 찾고 걸을 때가 도래했다.

칼을 잘못 휘두르는 자, 그 칼을 쥐어 준 자, 알고 보면 서로를 탓을 할 이유도 없고, 애초에 칼을 잘못 휘두를 자에게 칼을 쥐어 주면 망하게 되는, 자명한 이치일 따름일 뿐이다.

앞으로 이런 서슬 퍼런 단어는 인류의 역사 속에 사라 져야 한다.


권력이란 칼을 무시무시한 망나니의 칼로 전락시킬 것인가, 아니면, 빛나고 찬란한 성검 엑스칼리버로 승화시킬 것이냐의 무거운 역사적 갈림길에 우리는 놓여 있다.

모든 권력의 근본이 되는 국민이 선택해야 한다.

망나니의 칼, 엑스칼리버, 둘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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