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얘기를 써 보니 예전 꿈도 기억이 나서 마저 써 본다.
내가 어떤 이성과 함께 잠자리를 하고 있었는데, 다른 이성이 또 들어 온다.
처음에는 나와 관계를 하던 둘 사이를 시기하려는 게 아닌가, 그런 불안이 들었는데, 오히려 그 게 아니라 같은 동성끼리 입을 맞추는 게 아닌가.
둘은 갑작스레 입을 맞추며 침대에 쓰려 졌고, 웃기게도 나도 거기에 가세해 같이 어우러 져 버렸다.
이 것은 언핏 보기에 매우 음란하고 문란한 꿈으로 비춰 질 수 있겠다만.
나는 전혀 음란하거나 외설적인 느낌을 느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장면 속에서 그런 느낌이 없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남녀 셋이 잠자리를 한다는 것은, 보편적 관념을 넘어, 문란한 관계라는 것이 보통적이니까.
왜 이 꿈이 음란한 꿈이 아닌고 하니, 처음에 일반적으로 남녀 둘이 같이 잠자리를 하는 것은 일반적인 통념에 충실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런 일반적인 통념으로 다른 이성이 방에 들어 오게 되면, 당연히 놀랄 일임에도, 오히려 같은 동성끼리 몸을 가까이 해 버린다.
여기에 가세한 이성이 우리 둘을 질투하는 것도, 혹은 내가 그 둘을 질투하는 게 마땅해야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왜일까?
셋 다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처음 갑작스레 등장한 그 이성도 우리 둘을 사랑하고, 나도 그 둘을 사랑한다.
어떤 관점에 봐도 내가 그 둘을 사랑하고, 꼭 내가 아니어도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아는데, 질투를 할 게 뭐가 있나?
그래서 셋이 함께 어우러 질 수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性적인 관념으로 풀면, 그냥 문란하게 잠자리 한 번 가진 꿈으로 끝나고 만다.
이 것은 비유이다.
왜?
'사랑'이란 감정을 성적인 관계로 빗대야 이해가 빠르고 쉬우니까.
물론, 성과 사랑은 엄연히 다르다.
그러나, 너무 유사해서 우리는 혼동하기 쉽고, 그래서 사랑한다고 착각에 빠져서 잘 될 사이도 어그러 지게도 한다.
이 꿈처럼.
모두가 모두를 서로 사랑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꼭 어떤 성적인 접촉과 결부 짓지 않더라도.
내가 이 꿈에서 하나의 대상에만 교감을 나눈 것이 아니라, 셋이 몸을 대더라도 어떤 시기심도 없이 초연하고, 아무렇지도 않고 좋았던 것처럼.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종교나 철학에서 모두 이런 얘기를 구구절절 해 왔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가 "형제요, 자매요."라고 불렀고, 공자는 사람을 어질게 대하라고 했다.
뭐 일일히 기억은 안 난다면, "사랑을 실천해라.", "원수를 사랑해라.", 좋은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얼마나 가능하더냐라는 것이다.
사랑할 준비가 안 된 사람, 사랑을 모르는 사람, 사랑할 자격이 없는 사람은 당연히 사랑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연애를 사랑이라고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내 셈법으로 저 사람이 동조하길 바라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이성끼리 좋아서 어울린다고 볼 수 있어도.
자기 기준에 원하는 대로 안 들어 주면, 마치 사랑을 거래하 듯이 저울질해서, "나는 손해를 봤다.", "자존심이 상한다.", "상처를 받았다."며 싸우고 헤어 진다.
사랑은 욕심 없이 상대를 위하는 것이며, 일방적 희생도 아니다.
이는 사랑을 알고, 사랑할 자격을 갖추면 저절로 상대방을 그렇게 인식하고 대하는 것이다.
내가 너를 위하는 마음만 존재하고, 너한테 요구하는 게 없는데, 화를 낼 게 뭐가 있고, 싸울 일이 뭐가 있는가.
너를 위해 더 잘 해 주지 못 해 항상 주체가 안 되고, 어떻게 하면 내게 있는 걸 더 줄까만 궁리한다.
난 사랑을 모르지만, 사랑의 맛을 잠깐 봤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낀 사랑은 그렇다.
인종과 종교, 문화를 초월해 온 인류 모두가 모두를 서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데 아무런 걸림이 없다면.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 것을 '70억각관계'라고 이름 지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 좋아 하는가 보네?"
"그럼, 엄청나게 많아!"
"나도 그래! 그 수가 무려 70억을 넘게 팔로잉하고 있고, 나도 70억으로부터 팔로워가 있어!"
"그랬구나, 그 건 나도 그래!"
"그럼 우리는 결국, 모두가 모두를 사랑하는 '70억각관계'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