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속선 Dec 09. 2023

Paper Lace - Love Song

20 년 전에 나는 부천의 어느 공장에서 일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물가를 감안해도 박봉이었다.

오전 9 시 출근, 저녁 6 시 퇴근.

토요일은 오전만 하고 끝냈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일하고 받은 첫 월급 40만 원. 

뭐, 견습이니, 그런 이유였겠지.

다음 달부터는 월급을 조금 더 받았지만.

이따금 연장 근무도 했고, 그 때는 인근 식당을 데려다 저녁을 사다 주었다.

일이 아주 많은 날은 철야까지 했다.


우연히 알게 된 목사 님의 소개였고, 한 번 일해 보라고 권했다.

당시 나는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고, 그래도 40만 원은 당시 어린 나에게 적지 않은 돈이기에, 일하기로 결심했다.

나중에 돈 맛을 알고,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내 처우를 비교해 보니, 너무 싸게 부려 먹은 것 같은 야속함도 들었지만.


주변은 온통 공장단지였는데, 영세했다.

원래 그런 곳이었다.


내가 일하던 공장엔 초록색 프레스기가 있었고, 사포가 달린 기계도 있었는데, 나에게는 처음 얼마 간은 수작업만 시켰고, 몇 달 후에 숙련되었다 싶었는 지, 그 때부터 위험한 기계에 투입되었다.

바로 윗 선임은 필리핀에 온 노동자였고, 프레스기에 한 번 다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찌저찌 잘 수술이 되어 불구가 되진 않았다.

전에 일하던 사람은 사장과 친분으로 이따금 공장에 놀러 왔는데, 불행히도 오른손 검지를 프레스기에 잃었다.

글쎄, 그 프레스기가 내가 일하던 공장 프레스기인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것이다.


하여튼.


옆 공장은 '보루방'이라고 불리는 드릴 기계로 뭔가 구멍을 뚫는 곳이었다.

한창 일하던 어느 때, 그 옆 공장에서 '이 노래'가 흘러 나왔다.

작업자들이 지루하지 않게 라디오를 틀어 놓았을 테다.


"이 노래는 필시 비틀즈 노래야. 스타일이 그래. 확실해." 


어떤 곡인 지 알 수 없지만, 난 분명히 비틀즈 곡이란 확신이 들었다.

다만, 비틀즈의 여러 히트 곡 중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내가 예스터데이와 렛 잇 비 밖에 모르는 것처럼.

제목은 모르지만, 분명히 비틀즈 히트 곡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20 여년이 흘렀고, 마침내 나는 이 곡의 밴드와 제목을 알아 낼 수 있었다.


'오오~ 마이 다알리이잉~'


"그래, 바로 이 멜로디야! 옆 공장에서 듣던 그 묘한 멜로디!"


비틀즈와 스타일이 비슷하긴 했어도, 엄연히 다른 밴드였다.

한참 착각을 했던 것이다.

페이퍼 레이스도 이 곡 말고 별다른 히트 곡도, 그다지 주목 받지 못 한 밴드인 듯 하다.

그래도 괜찮다.

난 더 이상 이 곡을 비틀즈 곡이라 착각하지 않고, 이제 언제든지 즐겨 들을 수 있다.

비틀즈든, 페이퍼 레이스든, 아무렴 어떠랴, 이젠 알았으면 됐지.


참 푸근하면서도 그윽한 곡이다.

페이퍼 레이스는 이 곡 하나를 남겼다.

내게 비틀즈 대신, 페이퍼 레이스란 밴드를 알 수 있게 해 준 단 한 곡.

그리고, 아직은 젊다고 하기엔 조금 어린, 20 년 전 공장에 일하던 나를 회상을 시켜 주는 한 곡.



매거진의 이전글 Purist Audio Design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