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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an 04. 2024

그동안의 오디오 활동을 돌아 보며

본격적으로 오디오를 꾸민 지는 벌써 6, 7 년 무렵이 되었다.

그 때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은 천양지차의 발전이다.

정말 오로지 돈과 여유만 되면, 어떻게든 다양한 오디오 기기와 케이블들을 사고 팔면서 무수히도 비교하고 들어 보며, 연구를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직업적인 오디오파일은 아니지만, 나름의 안목을 갖추게 되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오디오 장터에서 누군가로부터 새로운 파워 케이블을 중고로 샀다.

'시너지스틱 리서치'社 제품인데, 꽤 기대가 된다.


요사이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디지털 시스템으로 오디오를 듣는 것은 그래도 편리한 편이지만, 그마저도 귀찮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냥 스마트폰으로 듣는다.

복잡하게 이런저런 요소를 따질 필요가 없다.

어쨌든 스마트폰에서 음악이 나오고 있고, 즐기는 데도 역시 무리가 없다.

여러 가지를 신경써서 꽤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구축했음에도, 너무 익숙한 탓이려나, "돈과 공을 많이 들인 만큼 좋은 소리를 즐긴다."는 생각보다는, 여튼 조금 무감각해 진 듯 하다.

오디오에 투자를 하는 것이 조금은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내일 도착할 시너지스틱 리서치 케이블을 받자마자 연결해서 들어 보겠지.

앞으로도 장터에 올라 오는 괜찮은 케이블이나 DAC에 눈독을 들일 테고.

그런데, 오디오의 궁극적 목적은 결론적으로 음악이란 컨텐츠의 알맹이에 고스란히 귀결된다.

이러한 오디오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지속적으로 비교해 가면서 귀를 트여 가는 행위 자체가 오디오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더욱 가깝게 즐기고, 음악에 더욱 깊이 들어 가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아바의 노래와, 고음질 음원으로 억대의 오디오 장비에서 나오는 아바의 노래는 완전히 똑같다.

음질이 낫다고 해서, 나은 오디오 장비를 통해 듣는다 해서, 이름 모를 곡이 히트곡이 되고, 동네 오케스트라 연주가 베를린 관현악단의 연주로 탈바꿈하는 것은 아니니까.

제 아무리 고가의 오디오와 고음질 음원으로 형편없는 곡을 듣는 것보다, 차라리 덤프 프럭 기사가 트럭 운전을 하며 저음질 MP3로 흥얼 거리며 듣는 트로트만 못 하다.

음악이란 컨텐츠가 결국 감상의 핵심이며, 오디오는 이런 음악 감상 행위를 둘러 싼 주변적인 요소란 것이다.


만일, 내게 카라얀과 베를린 관현악단이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의 저음질 MP3 파일이 있고, 다른 하나는 10 억을 호가하는 최고급 오디오 시스템을 무상으로 주어 진다면.

단, 영원히 카라얀과 베를린 교향악단의 명연주를 듣지 않는다는 조건을 건다면.

나는 촌각의 고심도 없이, 고가 오디오 시스템을 포기하고 카라얀과 베를린 관현악단의 MP3 파일을 선택할 것이다.

슈퍼 카를 준다 해도, 내 몸뚱이가 그 안에 들어 가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아무리 최고급 오디오 시스템이라도 내가 원하는 곡을 듣지 못 한다면, 그깟 금덩어리 깡통이 무슨 소용인가.


음악은 늘 항상 감상의 주체자, 감상자 자신에게 귀결점이 향해야 한다.

오디오를 가꾸고, 음원을 모으는 것도 좋지만, 내가 어떨 때는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집착해서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내 특유의 성격도 한 몫을 한다만, 내가 듣고 싶을 때 쉽고 편하게 듣는 것은 역시 스마트폰으로 듣는 것을 따라 올 수가 없다.

너무 오디오에 매몰하게 되면, 내가 음악을 듣는 것인 지, '음향'을 듣는 것인 지, 흐려 지게 된다.

'음향'은 '음악'이 아니다.

음악은 예술 그 자체이지만, 음향은 음악을 둘러 싼 어떤 엔지니어적 분야일 뿐이다.

오디오 자체가 궁극의 지향점이 되지 못 한다는 것이다.

MP3면 어떻고, 모노 음질이면 어떤가, 결국 내가 듣고 싶은 걸 듣는 것이지.


물론, 음악을 만드는 작곡자 및 아티스트, 이를 잘 녹음해서 믹싱 및 마스터링까지 잘 하는 프로듀서나 엔지니어, 이렇게 레코딩 화된 매개체를 듣기 좋게 표현해 주는 오디오는 결국 하나라고 볼 수 있기는 하다.

음악 생산, 음반 제작, 오디오, 세 가지로 크게 나뉠 수 있지만, 결국 본질은 "음악을 듣기 위해."라는 하나의 지향점으로 향해 있다.


클래식 작곡자 중에 제대로 된 자신의 음반을 녹음하고,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리거나, 투어를 뛰고, 리마스터 반, 디럭스 반 따위를 출시하면서 돈을 번 작곡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시대가 그랬다.

그럼에도 얼마나 좋은 곡을 만들었길래 지금까지 그들의 악보를 소중히 기록으로 보관하고,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면서 널리 그들의 작품을 즐기고 있는가.

결국 남는 것은 예술이란 본질이며, 좋은 오디오를 꾸미는 것도, 녹음과 마스터링에 공을 들여 가며 음반을 제작하는 것도 이러한 예술을 더욱 가까이 하고자 하는 물리적 기술에 불과하다.


때로는, 오디오 앰프를 잠시 끄고, 즉흥적으로 스마트폰으로 듣고 싶은 음악을 틀어 보는 것은 어떨까.

요새는 지구 반대 편에서 전화를 걸어도 상대방 목소리를 듣고 통화를 하는 시대라 해도, 이따금 전화보다 손수 편지를 쓰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때가 있는 것처럼.

내가 오디오를 즐기는 것인 지, 음악을 즐기는 것인 지를 한 번 쯤 자문해 봐야 한다.

오디오를 하면서 즐거워야지, 피곤하고 집착을 한다는 게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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