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30 15:04:11
물론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 나는 일들이다.
하지만, 실수로 인한 선택의 기로에 직면했을 때의 명철한 판단력이다.
어차피 이 시점에서 내가 얻고자 한 최선의 결과물은 물건너 갔다.
차선책을 강구해서 돌파해야 한다.
그 때 차선책도 포기하지 말고 강행하는 것이라면, 부디 그렇게 하길 바란다.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내 예상치보다 높은 어려움이었고, 그렇다 해도 그 결과물은 가치로운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내가 감내해야 할 어려움보다 보잘 것 없는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혹은 그 결과물이 어려움 뿐인 수포라고 한다면, 도리어 그 결과가 내가 감내할 어려움보다 더 한 어려움으로 덮쳐 올 것이라면, 어떤 바보가 도대체 포기하지 말라고 떠들어 대는가.
그 말은, 지금 내가 말한 이 상황에서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지금이라도 안 될 걸 안다면, 자신의 예측에 빗나간 결과물이라면, 당연히 빨리 단념하라.
왜 포기하지 않는 것을 미덕화해서 더욱 안 좋은 결과로 몰아 가려는가.
중도 포기하고 빨리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길을 모색하라.
빨리 포기해야 빨리 새로 시작할 수 있다.
포기할 수 있는 시기마저 놓친다면, 고생만 하고 결과마저 물거품될 지도 모를 일이다.
한 번 시행착오를 겪었으면, 그 상황에서 차선책을 선택하도록 해야지, 어찌 포기하지 말라고 일관되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 것은 항상 맞는 답이 될 수 없다.
뒤늦게 실수란 것을 알았을 때, 뒤늦게 오판이란 것을 알았을 때, 포기하게 되면 내 수고와 시간을 탕진하지 않을 수 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비록, 손실을 조금 봤지만, 그 남은 본전을 고스란히 새로 시작하는 데에 쓴다면, 이는, 그 약간의 손해마저도 내 배움으로 보전받게 됨과 동시에, 다시 좋은 조건으로 새 길을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 때의 상황과 당사자의 관계에서 좋은 선택이 될 수도 나쁜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내가 하고픈 말이었다.
우리 사회에 이런 헛똑똑이들이 많다.
우리는 뭔가 그들 가슴팍에 달린 거창한 딱지, 명성, 학위에 혹해서 그들의 얘기를 거름없이 곧대로 맹신하고 있다.
그들은 뭔가 자신들이 멋지게 강연하고픈 환상, 출세와 유명인의 화려한 인기를 과시하기 위한 근사한 말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중들이 정말 필요한 얘기가 아닌, 자신을 내세우면서 인기를 누리는 주인공이 되려는 것은 아닌가, 게다가 그 바람에 휩쓸려서 박수를 치고 대단하다고 우러러 보는 대중들의 모습에, 참으로 개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도 멋도 모를 적에는 그들이 그렇게 대단해 보일 수가 없었다.
공부를 엄청 많이 한 석, 박사들, 대기업의 경영자, 출세한 유명인, 스타 강사, 연예인, 빚을 다 갚고 기업의 회장이 되었다는 자들, 고위 종교인.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말을 자세히 들어 보면, 다 돌고 도는 뻔한 얘기들, 누구에게서나 많이 듣던 이야기, 교과서나 성경책, 탈무드 따위에서나 나올 법한 선량한 이야기들 천지이다.
그런 얘기들은 얼마든지 서점이나, 교회, 성당, 절간에서 졸립도록 들었던 얘기들 뿐이다.
그들로부터 판을 뚫는 신선한 이야기, 판을 깨는 판 밖의 이야기, 들어 보지 못 했던, 강사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이야기, 자신의 스타덤이 아닌, 대중들을 위한 진정성있는 말 한 마디를 들어 보질 못 했다.
그저, 자기 하고픈 이야기들, 대중들에게 욕먹지 않을 판 안에서 돌고 도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 뿐이다.
이 현상에 대해 그 강연자들만 탓하고 싶지는 않다.
거기에 동조하고 박수를 쳐 주고, 고액 출연료를 형성한 자들은, 엄연히 그 강연을 듣는 대중 청자들이니까.
그들끼리 좋다면 나 역시도 내가 무슨 자격으로 하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내 이야기도 한 번 들어 보라는 것이다.
나는 그들과 전혀 다른 말을 한다.
포기할 수 있을 때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면, 과감하게 포기하라.
그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그런 뻔한 강연은, 누구나 조금 유명해 지면 다 섭외받고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저들이 하는 얘기랑, 평범한 학교 선생님의 얘기와 뭐가 다른가.
그저, 같은 뜻의 말을 포장과 단어를 달리 해서 꾸며 말하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수도 있겠다.
학교 선생님은 유명하지 않아서이다.
분명히 같은 말인데도 말이다. 별 거 없다.
도리어, 그들은 대중들의 삶을 모르는 것에 가깝다.
대중 또한 그들을 모르니, 그들이 하는 얘기의 참 뜻을 모르고 박수를 쳐 버린다.
명성. 요즘 세상의 트렌드이다.
유명해지고 나면, 하늘을 보고 까맣다고 해도 박수를 쳐 주는 세상이다.
만일에 말이다.
지금은 내가 유명하지 않아서 내가 얼토당토 않는 소리를 한다고 해 보자.
다들 내가 미쳤다고 욕하기 딱 좋다.
하지만, 같은 얘기를 유명해 지고 나서 근사한 연단 위에서 한다고 상상해 보자.
뜻은 모르지만, 그래도 대단하다고 박수를 칠 것이다.
이 짓은 내가 몸소 실행해서 보여 줄 것이다.
시간은 꽤 걸리겠지만 말이다.
여러 분들은 손해 볼 것이 없다.
지금 내가 한 얘기를 상기해 두고, 천천히 시간을 두고 지켜 보길 바란다.
그런 대로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