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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May 25. 2024

싫어하는 것에 감사하기.

만일, 내가 간절히 원하던 것을 얻게 되었다면, 그래서 감사함을 느꼈다면.

또, 내가 좋아하던 일을 하게 되거나, 내 뜻대로 일이 풀려나감으로써 즐거움을 느꼈다면.

내가 싫어하던 사람들, 내가 싫어하는 것들, 또는 후회되거나 화가 나는 등의 부정적인 기억들, 그 것들에게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나에게 좋은 일들은, 내가 그 전에 먼저 하기 싫고,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당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모든 것은 결국 하나라는 것이다.

"좋다."고 하는 것, "나쁘다."고 하는 것은 내가 보는 관점,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내가 임의대로 선별해서 나누어서 규정하는 것이지, 애초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정해진 것이 없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정해진 것이 없다.


사람들은 길을 지나가다가, 누군가가 몰래 누어 놓은 길바닥의 변을 보면서 더럽다고 느낀다거나, 냄새나서 싫다고 느낀다.

허나, 똥파리는 그 냄새를 맡고 변에 달라 붙어있고, 구더기라던지, 온갖 미생물들은 사람들이 더러워서 기피하는 변을 먹으면서 그 변을 분해시켜 버린다.

벌레들에게는 그 변이 아주 좋은 먹이 덩어리인 것이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면, 그래서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만일, 똥파리와 구더기, 별의 별 미생물들이 없었더라면, 그 냄새나는 변은 분해가 되지 않아 깨끗한 자연 속으로 환원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각자가 보는 관점에서 달라질 뿐이지, 애초에 고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고로, 내가 원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얻었을 적에, 내가 싫어하고 거부하고 싶은 것들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정말 좋은 것은, 좋고 나쁘고를 알기 전에 겪어 보고 나서 판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치, 아이가 수차례의 넘어짐을 겪고 나서 바르게 걸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좇고 살면서 다양한 일들을 겪는다.

누구도 내가 싫어할 일일 줄 알았으면, 불나방처럼 덤벼들면서 후회할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런 것처럼, 나에게 좋은 것들은 싫어하는 것들을 선행하고 나서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서 충만함을 느꼈다면,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일들이나 상황들에 대해 불필요하게 고생을 했다거나, 그 것에 대해 불평, 원망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떤 농부도 가을의 결실을 위해, 한여름의 수고로움을 헛수고라고 생각하거나, 무의미하게 생고생했다면서 투덜거리는 일이 없다.

더 많은 결실을 맺고 싶다면,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하고 싶다면, 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함은 자명하다.

땡볕에 고생할 때 뜬 해는 "나쁜 해", 내 작물들을 잘 키워줄 때 뜨는 해는 "좋은 해"라고 구분짓지 않는다.

한여름에 해가 중천일 때 더운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농부가 절대로 한여름에 고생을 시키는 해를 원망하지 않는 것처럼, 나에게 시련을 주는 사람들, 원망했던 사람들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살았던 모든 부정적인 기억과 감정들에 대해 아직 다 고마울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부정적인 응어리들이 풀리게 될 것이다.

내가 이러한 이치를 이해하게 되는 만큼.

부정적인 감정을 외면하는 것도 아니고, 지워지지 않는데도 지우려는 바보짓을 하는 게 아니다.

이러한 본질적 이해에 도달해야, 싫음을 싫음으로 인식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결국엔 모든 것이 다 나에게 필요해서 주어졌던 것들이지, 나에게 불필요하게 괴롭히려고 다가오는 것들은 단 한 개도 없다.

어린 마음에 나를 매질하던 선생님이 미웠지만, 결국 그 것이 나의 보약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처럼.

참 잘 하셨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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