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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May 28. 2024

풀을 뽑으며

농사를 짓지는 않다만, 집 주변에 풀이 나므로, 뽑고 있다.

사실, 여기에 살기 전에도 시골이었지만 나는 풀을 아예 뽑지 않았다.

잡초들이 무성해도 내가 도통 풀을 뽑지 않으니, 집주인이 지나가면서 한 소리를 했다.


"당연히 풀을 뽑아야지!"


나 때문에 아들을 통해서 예초기를 인터넷으로 주문했고, 송풍기와 함께 풀을 베라며 주었다.

그 것은 플라스틱 날이 돌아가는 배터리 식의 스위스 밀리터리 예초기였다.

나에게 풀을 뽑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작정하면 뽑지 못 할 이유는 없다만, 그럴 시간이 나에게는 보다 가치로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에.

잡초 대가 내 가슴 높이까지 닿을 정도로 자랐으니, 집주인이 성화가 날 법도 하다.


지금에 이사 온 곳도 마찬가지로 시골이지만, 나는 모범생일 정도로 꾸준히 풀을 뽑고 있다.

첫 째는 주변이 전원주택 마을이었으므로, "이 집은 관리도 안 하나?", 생각을 들게끔 하지 않으려는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생토 위에 블럭을 깔든, 야자매트를 깔든, 인조잔디를 깔든, 뭐라도 해서 덮어 버리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허나, 나는 얹혀 살고 있고, 처음 이 집을 계약할 당시가 이러했으므로, 여름철마다 풀을 뽑을 각오로 살기로 했다.


모든 풀을 다 뽑는 것은 아니다.

율마처럼 생긴, 소나무 가지처럼 생긴 것들은 놔 두었다.

뽑다 보면, 너무나도 향이 좋은 어떤 풀이 있는데, 처음에는 무심히 뽑다가 지금은 그냥 놔 두었다.

그 밖의 갖가지 들풀, 특히, 대가 산발적으로 높이 자라는 쑥은 나의 주표적이다.

무성히도 자라지만, 개체수도 많다.

쑥이 약으로 쓰면 위장에 좋고, 쑥을 활용해 떡을 쑤어 먹을 수도 있지만, 이런 들초쑥이 식용인 지는 모르겠다.

들초쑥은 아무래도 활용도가 없는 듯 하다.

가급적 줄기가 끊어지지 않도록, 살금살금 잡아서 지긋이 뽑아야 뿌리채 뽑는 요령이랄 수 있다.

아무리 짧게 줄기를 끊는다 하더라도, 근이 살아 있는 것은 머지않아 또 재생이 된다.

정 끊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만, 가능하면 아예 뿌리채 뽑는 것이 이상적이다.


풀을 뽑다가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것을 문답 형식의 '道談'으로 구성해 보았다.


문: 세상 존재하는 모든 만물이 존재의 가치가 있으며, 미천한 벌레, 이름모를 들풀조차 이유가 있어 존재하는 것이거늘, 어째서 풀을 뽑으시렵니까?


답: 바닷가의 모래 한 알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개미도 존재의 이유가 자명한 것이지만, 이 모든 만물은 궁극적으로 이 땅의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라. 가만히 자라는 나무를 그냥 놔 두면, 언젠가는 수명이 다 해 고사할 것이고, 닭도 가만히 놔 둬서 절로 수명이 다 하게 되면, 우리 인간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이 무의미하게 죽고 마느니라. 나무를 베어서 멋진 집을 만드는 재료로 쓰고, 닭이 낳아 주는 알과 고기를 통해 소중한 식량으로 삼는 것이 인간이 자연을 가치롭게 유용하는 셈이 되느니라.

농부가 밭에 내리는 비를 반길 지언정, 스스로의 몸에 맞는 비를 막기 위해 우의를 입거나, 비를 피하는 것 마냥, 인간이 주체적으로 판단하여 이로운 풀을 남기고, 미관 상 보기 사나운 들초들은 뽑아서 단정함을 도모하는 것이니라.


인간이 모든 자연 만물에 종속되어 모든 자연물을 함부로 가공, 유용하지 못 한다면, 이 땅의 인간은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것이니라. 우리에게 자연을 누리고 잘 활용하여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노동과 창조의 가치를 터득하기 위해 자연이란 터전이 주어졌나니.

들초를 뽑는 것 또한, 만인이 계속해서 자라나는 손발톱을 주기적으로 깎고, 머리와 수염을 잘라 주는 것과 같느니라.

하니, 집 주변의 무성히 나는 풀을 뽑아서 이 터전을 보기 좋고, 단정하게 잘 가꾸도록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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