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논문

풍수지리의 회의론 1

2020-12-30 15:07:03

by 속선

동양 철학에 있어서, 풍수지리 이론의 비중은 크다.

우리는 땅과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일 뿐더러, 과거 인류는 자연의 힘을 뛰어 넘어서 활용할 정도로 성장하지 못 했다.

자연히, 땅과 환경에 순응할 수 밖에 없었으며, 자연의 막강한 재해를 피하고, 삶을 영위하기 좋은 터전을 찾는 데에 학문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풍수지리가 학문으로 정립된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풍수지리론으로 현대를 대입하면 맞는가? 그렇지 않다.


이제는, 흉당이나 명당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그 것은 그 때 당시에도 넌센스였고, 교통과 온갖 시설과 인프라가 발달한 지금은 더욱 무의미하다.

풍수지리에서 흉당이라고 하는 집도, 어떤 용도로, 얼만큼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진데, 특정 이론을 기준으로 삼아서, 이런 자리와 집터는 흉당이다, 명당이다라고 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그 터와 그 곳에 거하는 이가 어떤 용도로 쓸 것인가에 따라 변수가 생기는 것이다.

애초부터 명, 흉당이 없었던 것이다.

그 것은, 대다수의 민중들이 공유하고 참고할 수 있는 지표는 될 수 있어도, 답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헌데, 이러한 오류의 과거 풍수지리 이론을 아직도 맹신해서, 여러 터를 돌면서 좋네, 나쁘네, 왈가왈부하기 급급하다.

내가 살기 편하다고 느끼면, 그 것이 명당인 것이다.

내가 환자면, 쾌유하고 의술좋은 의사가 있는 병원이 명당이고, 내가 장사꾼이면 많은 사람들이 와서 부흥하는 곳이 명당이다.

제 아무리 천하가 내린 명당이라고 지관이 떠들어 대도, 내가 맞지 않고 불편하면 그 것은 흉당인 것이다.

왜 이런 간단한 기준을 간과하는 것인가.


풍수지리의 대표적인 배산임수도 한 번 보자.

뒤에는 산이 막고, 양 옆에는 얕으막한 산이 막고, 앞 산은 나즈막한 산이 막으며, 그 안에는 물이 유유히 흐르는 것이 명당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대한민국에는 그런 자리가 천하에 많다.

그럼, 대한민국 거의 대부분이 다 명당이라는 논리가 성립되고, 더 이상의 풍수지리 이론은 발전하지 않는 것이 맞지 않을까?

물론, 내가 너무 극단적인 비교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배산임수라고 하더라도, 누구는 좋다고 하고, 누구는 사산이 막힌 것이 답답해서 싫다고 할 수도 있다.

후자 같은 경우에 어떻게 이 것을 명당이라고 하나.


외에도 여러 이론들이 많다.

좋은 자리에 선조의 유해를 모셔 놓으면 후손이 복된다는 음택론도 상당한 문제이다.

후손으로써 선조의 얼을 이어 받고, 부모님께 효한다는 마음 가짐으로 자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나 잘 살고 덕볼까 하는 심보가 서려 있다.

그래서, 유명한 지관을 불러서 좋은 자리인 지를 감명하고, 알선해 달라고도 한다.

우스운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뉴스나 풍문에 떠도는 칼럼 따위는 어떤가.

누구 장, 차관, 대통령, 재벌의 묘자리가 좋아서 그 후손이 오늘 날 출세를 했다고 한다.

얼마 후에 안 좋은 일이 터지니, 이 번에는 또 묘자리가 흠이 생긴다거나, 주변에 물이 흐르는 것이, 물이 끊겨서 안 좋은 일이 생겼다고도 한다.

갖다 붙이기 나름인 것들이다.

그래서, 그 조상 묘에 지관 말대로 보완을 한 후에 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이 것은 뭐라고 할 셈인가?

어째서 오늘 날 안 좋은 일과의 명확한 인과관계는 설명해 주지 않고, 모든 것을 조상 묘와 연결지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팔짱을 낀다.

공부를 많이 한 지관은, 이 번에는 자신이 사는 양택이 안 좋아서라고 또 할 것이다.

그들의 변명과 돈벌이로 이어 지는 논리는 끝이 없다.

이제는 묘를 묻을 것이 아니라, 화장을 해야 한다.

어떤 지관은 화장은 비 윤리적인, 잔인한 행동이라고 하는데, 부모의 시신을 서서히 썩혀서 뼈로 만드는 것은 윤리적인 것이고, 화장을 하는 것은 비 윤리적인 것인가를 되묻고 싶다.


애초에 땅에서 받아 살다간 몸이고, 다시 땅으로 돌려 준다.

이대로 계속 매장을 했다가는, 온 국토가 무덤 천지가 될 판이다.

이 땅이 산 자를 위해 존재하는 땅인가, 죽은 자들 묻기 위한 땅인가.

조상의 얼을 상기하고, 부모에게 진정한 효의 길을 갈 생각은 하지 아니 하고, 자기 잘 살려고 하는 수단 도구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형식이 아닌, 부모와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후손으로써 훌륭한 인생을 사는 것으로 공치사하는 정신이 중요한 것이다.

헌데, 이 것을 어떻게 동양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가?

신변잡기에 불과한 사기일 뿐이다.


오행 중에 물이 재물을 상징하니까, 물이 보이는 집이 좋다고 하고, 금이 재물을 상징하니까, 돌이 많은 터가 좋다고 한다.

상징은 상징일 뿐이지, 그 것이 재운을 북돋는다는 환상은 깨야 한다.

물이 재물인 까닭은, 당시에 배로 물자가 운반이 되었으므로, 물길이 가깝다는 것은, 무역과 상업을 하기 좋은 터라는 의미일 것이다.

금이 재물인 것은, 당시에 화폐를 쇠붙이로 찍어 내니, 이 것을 재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오행 중에 재물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는가?

전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다.

상징은 상징일 뿐인데, 이러한 것들을 곧이 곧대로 받아 들여서, 아직도 미개한 기복 행위에 빠져 있다.

마치, 물이 보이고, 돌이 많은 터에 앉으면, 저절로 돈이 많이 벌어 지는 줄 아는가 보다.

그렇다면 실험해 보라.

그렇게 재운이 가득한 곳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어 보라고.

그 게 사실이라면, 내 주장이 잘못된 것이며, 가만히 있어서 빈털터리빈 된다면, 그런 쓸 모 없는 이론으로 현혹시키지 말고, 폐기해야 마땅하다.


실내 인테리어를 잘 꾸미면, 운이 좋다고 하는 이론들도 몇 가지 들어 보겠다.

현관에 거울을 정면으로 배치하지 말라는 대표적인 이론이 있다.

도대체, 무슨 형이상학 적인 기운을 반사하길래 정면에 놓지 말라는 것인가.

집에 들어 서면, 사는 주인이 됐던, 손님이 됐던, 반기는 것이 마땅해야 하는데, 정면에 거울이 보이면, 다소 좋지 않지 않느냐는 맞을 수 있다.

헌데, 무슨 좋은 기운을 쳐 낸다는 것인가.

그 기운이 무슨 기운인 지를 설명하고, 어떻게 거울에 의해 반사되는 지를 설명하는, 구체적인 문구를, 난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만일, 안 좋은 기운이 집에 들어 온다면, 거울이 그 것을 반사해 주니, 좋은 것이겠다.

좋은 기운을 반사하는 것만 나와 있지, 안 좋은 기운이 들어 온다는 문구는 한 군데도 없다.


집 안에 잎이 둥근 관엽식물을 놓되, 가시가 있는 선인장을 놓지 말라는 이론도 되짚어 봐야 한다.

물론, 선인장의 가시는 유의하는 것이 맞다.

행여나 신체가 닿지 않는 곳에 잘 두어야 한다.

헌데, 가시에서 나오는, 어떤 유형의 파장이 몇 십 메터를 넘게 뚫고 간다는 것은, 어떤 실험에 의해 밝혀진 것인 지, 근거를 알고 싶다.

다분히 잠재적으로 찔릴 수 있다는 심적인 현상에 기인한 것이지, 인간이 전혀 그러한 심적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 것은 전혀 문제될 게 없는 것이다.

잎이 둥근 식물을 놓으라는 것도, 그런 일환에서 안전하기 때문인 것이지, 내가 기르고 싶은 식물을 놓으면 된다.

선인장이 됐던, 풍수지리에서 금기 시 하는 어떤 식물들도, 당사자가 식물의 장단점을 파악해서 유의하기만 하면 된다.

아무리 위험해도 인간의 잘못된 사고만큼이나 위험하겠는가.

말이 나와 더 얘기하는데, 외에도 밤에는 이산화탄소를 내 뿜고, 낮에는 산소를 흡수하는 식물은 좋지 않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 수치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지극히 미약한 것인가, 거기 사는 이의 건강을 위협할 정도인가에 대한, 실체적인 수치는 나와 있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한글의 영문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