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논문

풍수지리의 회의론 2

2020-12-30 15:07:39

by 속선

배산임수의 이론에 따라, 사무실의 책상 위치를, 벽을 등지고, 창문은 옆이나 앞에 면하도록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바람직하다 볼 수 있다.

창문은 벽보다 허한 곳이므로, 안전 상으로 보나, 보안 상으로 보나, 등진 것은 좋지 못 하다.

단, 대부분의 구조상, 창문을 등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 때는, 창문과 거리를 두거나, 두꺼운 커튼을 쳐서 보완하는 것이 차선책이라 할 수 있겠다.


색상에 대한 접근도 다시 재검토해야 한다.

아이 방에는 푸른 색이 좋고, 빨간 지갑은 재복을 달아 나게 한다는 둥, 집의 지붕이 파란 색은, 위에 물을 얹는 형태라 불길하다는 식의 미신 적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

아이가 어떤 성향이고, 아이가 어떤 인물로 성장하느냐에 따라 색을 쓰는 것이지, 정해진 색이 없는 것이다.

붉은 색의 화의 기운을 상징하다고 해서, 재복이 모이지 않고 발산한다고 해서 빨간 지갑은 저축이 안 된다고 한다.

돈을 쥔 자가 씀씀이를 결정하는 것이지, 지갑 색이 어떻다고 해서 돈을 더 쓰게 되고, 안 쓰게 되고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지붕의 색상도 마찬가지이다.

색이 기운을 상징하는 것이지, 물 자체는 아니다.

지붕 색을 푸르게 한다고 해서 비를 더 잘 맞는 것도 아니오, 가만히 있는 물을 끌어다 얹는 것도 아니다.

색이 무엇을 상징한다고 사고하는 데서 입각한 인식 현상이지, 실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오행과 색, 방위가 상징을 뜻하는 것임에도 그 기운 자체는 아닌 것이다.

풍수지리 정통한 자들, 자신들 스스로 풍수지리는 매우 과학적이라고 하는데, 이처럼 미신적이고 불합리한 논리가 또 있을까 싶다.

과거의 선조들께서 봤던 관점과 환경에서 형성된 이론을, 이토록 과학과 사상이 발달한 이 시대에 아직도 곧이 곧대로 맹신해서 받아 들이니까 이 것들이 문제가 된다.


집 안에 크리스탈이나 팔각 거울을 놓아서 안 좋은 기운을 상쇄한다면서 고가에 팔고 있다. 상술이다.

벽지가 안 좋은 색이니 바꾸고,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연못과 어항으로 액운이 들어 온다는 것도 무척 비 과학적이다.


그들은, 우리 나라 대통령이 퇴임 후에 말로가 좋지 않은 것도, 우리 나라에 대형 사고가 난 것도,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의 터가 흉터라고 한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청와대가 명당이라고 한다.

어떤 지관은, 서울의 청계천이 복원되어서 국운이 융성해 졌고, 또 다른 지관은 서울 한 복판에 칼질을 한 형상이라 불길하다고 한다.

이러한 비 현실적인 접근으로 대중들을 혼란에 빠뜨려, 내분을 부채질하고 있다.

도심 내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잘 꾸민 것은 좋은 것이다.

서울 시민들이 적지 않게 이용하고 산책하는 것을, 나는 심심치 않게 봐 왔다.

약간의 오염이 아쉽기는 하지만, 분명히 잘 한 일이다.

하지만, 청계천이 유지되기에 꽤 많은 비용이 든다고 들었는데, 그만한 효용가치가 있는 지는 검토해야 할 일이다.


수맥으로 겁을 주는 것도 전통적인 현혹 수법이다.

수맥의 자리가 좋지 못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무형의 파장에 있으면, 안정적이지 못 하고 무언가 불편하다.

하지만, 그런 자리에는 웬만해서는 사람이 거하는 자리에 많이 산재하지도 않거니와, 구태어 전문 장비가 아니어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사는 집이 수맥인 지를 어떻게 아는가?

집이라면, 내가 그 자리에서만 잠을 자면 뭔가 불편하다.

그 다음부터는 그 자리에 자기가 싫다.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면, 그대로 살면 된다.

내가 수맥의 기운보다 강하고, 생활을 활기차게 하면, 수맥이 있어도 있는 줄도 모르게 된다.

수맥 자체가 인간에게 흉을 주는 게 아니다.

수맥은 자연 현상 중에 하나일 뿐이다.

헌데, 수맥이 안 좋고, 그런 자리에 있으면 흉하다고 규정을 해 놓고, 내가 그 말을 듣고 미혹되니까, 그 때부터 불안해 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거기에 동판을 깔아라, 이사를 가라는 식으로 수맥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수맥이 없는 곳에 살면, 가만히 있어도 잘 살고, 수맥이 있는 곳에 살면서 바른 마음가짐으로 살아도 결국을 흉한 것인가?


풍수지리에 좋다는 물품 상점 속을 들여다 보라.

거기에는 달마도부터 해서, 별의 별 액운을 막아 준다는 조각이나 그림들이 널려 있다.

그렇게 온갖 좋은 것들 것 모아 놓았는데, 어찌 구멍 가게 신세를 면치 못 하나?

그 물건들이 정말 액운을 막고 호재를 일으 킨다면, 그런 물건들이 일체 없는 가정보다 말할 수 없이 번성해야 하는데, 어째서 싸구려 잡상을 못 벗어 나느냔 말이다.

달마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달마는 수행을 한 자이지, 기복을 바라는 자가 아니었다.

헌데, 그런 수행자 그림을 걸어 놓는다고 해서 진짜 달마가 그 집을 융성하게 하겠는가, 달마가 살아서 그 집에 들어 오기를 하겠는가.

평범한 그림이다.

무슨 기운이 나오고, 그 기운은 무엇인가.

달마도를 그리고 파는 당신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효험을 느꼈으며, 그 정확한 인과 관계를 설명할 수 있나?

지금은 예전처럼 달마도를 맹신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달마도를 걸어 놓은 집들이 제법 많았다.

싸게는 프린트로 찍어 낸 것부터 해서, 비싼 것은 이름있는 작가나 승려들이 그린 것이었다.

요새는 달마도보다는, 걸어 두면 좋다는 그림들이 다양하게 판을 친다.


대나무 그림, 잉어 그림, 목련 그림, 해바라기 그림, 입구에는 일출 그림을 걸어 두면 좋다는 논리가 파다하다.

보는 사람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하고, 바람직한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좋은 그림이지, 어찌 그런 한낱 꽃과 물고기 따위가 운을 좋게 한다는 말인가.

그럼, 꽃집은 그림을 넘어 아예 꽃 천지에다가, 대나무 밭을 꾸리는 자가 운이 더 좋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달마의 그림을 보면서, 달마가 후세에 남긴 메시지와 가르침을 상기하는 것, 어떤 불의와 손잡지 않는 대나무의 곧은 절개, 항상 해를 바라 보며 희망적인 삶을 살아 가라는 그림 속 진정한 뜻을 간파해야지, 그로써 내가 좋은 생각을 하게 되고, 나중에 좋은 인물로 성장해서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 앉아서 복을 당기고자 하는 삿된 생각에 머물러 버렸다.


그렇게 과학적이라고 하면서 지관들은 무당들이 쓰는 부적을 쓰고, 소금을 음습한 곳에 놓으라고 하는가.

방편과 기법만 다르다 뿐이지, 당신들이 기존 무당들과 뭐가 다를 바가 있는가.

무당들은 굿을 해준다, 천도제를 해 준다면서 고액을 뜯어 간다.

지관들도 팔자가 풀리고 운이 좋아 진다면서 비싼 감정료를 받고, 거액의 그림 작품과 도자기, 온갖 물건들을 팔아 댄다.

뭐가 다른가.


요새는 피라미드다, 수정이다, 히란야다 해서 또 다른 아이템으로 미혹시킨다.

피라미드 안에서 자면 피로가 풀리고, 수정을 집 안에 들여다 놓으면 집이 정화가 되고, 기하학적 모양의 목걸이나 반지, 심지어 차에 스티커를 붙이면 사고가 안 나고 연비가 좋아 진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해 댄다.

그 신비의 힘이란 무엇인 지를 자신들도 모른다.

고전적인 아이템이 안 먹히니까, 다른 모양새로 현혹시키는 것이다.

풍수지리만 따져서 이렇지, 다른 것들도 많다.


나는 외에도 스마트폰의 전자파를 줄여 준다는 이유로, 차단 스티커를 사서 스마트폰 안에 넣었다.

전화할 때 전자파가 뇌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덥썩 믿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위험할 정도면, 어째서 당국에서 규제를 하거나, 여러 전문가들이 경고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이제는 전자파 스티커에 일체 미련이 없다.

허황된 것을 뒤늦게 안 것이다.

거기서 내 거는 과학적인 논문에 감쪽같이 넘어 간 것이다.

연구 결과, 출처를 밝혔더라도, 그 자료가 존재하는 지에 대해 의문일 뿐더러(조작 의문), 그 것에 대해 해당 기관의 승인을 받은 것인 지에 대한 확실성도 없었다.

얼마든지 창작하거나, 영세한 곳이니까 감시망에 벗어 나서 임의 도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내용이 실제로 어떤 연관성이 있으며, 무슨 내용인 줄도 모른다.

그렇다. 몰라서 넘어 간 것이지, 알면은 안 넘어 갔을 것이다.

만일에, 그 독일어 결과서가 그냥 전자파와 상관도 없는 내용이라고 한다면, 독일어를 모르는 많은 이들이 넘어 갔을 것이다.


풍수지리를 지리적 관점이 아닌, 다양한 예시와 함께 포괄적으로 다뤄 봤다.

과학적이라고 하는데, 극히 일부분이고, 신앙을 통한 기복과 진배 없었다.

그 기복의 대상이 성인이냐, 지리 환경이냐, 특정 물건이냐에 따른 미신일 뿐이다.

인간은 좋은 환경, 윤택한 자리에서 활발하게 일하고, 편하게 휴식함으로써 원활하게 인생을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것을 마치 그런 자리나, 도구 따위가 보장해 주는 듯이 여기고 있다.

나한테 아무리 좋은 명당이 주어 져도 내가 거기서 바르게 살지 못 하고,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으면, 그 명당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그런 자를 흉당이라고 하는 곳에 옮겨도 마찬가지일 터인데 말이다.

명당은 명당일 뿐이다.

다음은 내 마음가짐과 역할에 달린 것이다.

제 아무리 값비싼 명품 옷도 내가 불편하면 흉당이고, 평범한 옷도 입고 편하면 명당인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여러 속담과 역사의 가르침 속에서 이미 배워 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제는 풍수지리로 흥망성쇄를 추구하는 논리는 완전히 사라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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