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이 성립되어 며칠 후 법원으로부터 조정조서가 도착했다.
- 조정 조항 -
1. 피고는 원고에게 배상금을 2024. 12. 10.까지 지급한다.
2. 원고는 나머지 청구를 포기한다.
3. 소송비용 및 조정비용은 각자 부담한다.
뒷 장에는 판사의 이름과 직인이 새겨 있었다.
나는 그 판사의 직인을 보고서 비로소 안도감, 위안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참 감사합니다... 이제, 다 되었습니다..."
기뻤다, 그리고, 울컥했다.
몇 번이나 판사의 직인을 보고, 또 다시 보며 안도감이 들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피고의 사과문도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국가의 존재를 다시금 재확인하고 싶었다.
소송의 대상은 분명 나에 대해 인신공격을 한 피고였으나, 나는 실질적으로 국가, 법원에게 호소하였다.
저런 사람을 그냥 놔 두면 안 된다고.
형사 고소를 해도 각하가 되어 억울함을 풀 수 없으니, 제발 민사소송으로라도 내 호소를 들어 달라고.
배상의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이 소송을 봐 달라고.
비록, 조정 조서가 정식 판결서는 아니고, 말 그대로 피고가 거의 마지 못 해 굴복하다시피 조정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내 입장에서 그래도 실익을 취할 건 다 취하기도 했으니, 만족할 만 하다.
피고로부터 사과문과 일부 금액을 양보한 소송비용, 청구금액을 상당수 받아 냈으니.
어찌 보면 전리품이라고 볼 수도 있다.
최초 사건 발생이 이 번 년초에 발생됐고, 소송은 5월에 제기했다.
그 후에 다수의 사실조회 신청, 금융거래 제출명령 신청 등, 절차를 몰라서, 단순 실수로 인한 우여곡절 등이 굉장히 많았다.
중간에 피고의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를 특정하지 못 해, 소송을 포기할까, 좌절감도 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민사소송을 애초에 덤비지도 못 하는가 보다.
형사 고소는 진정서, 고소장이랑 제반 증거를 들고 가면 그래도 경찰 공무원들이 알아서 처리해 주기는 하는 데 반해, 민사소송은 본인이 뭘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라 막연하고 암담하다.
다행히도 소송 중에 법원 주사가 살짝 귀띔을 준 것이 다행이었다.
"음... '사실조회 신청'을 한 번 해 보시죠."
원래는 원칙적으로 주사는 사건 당사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지 못 한다.
왜냐하면, 특정 당사자에게 유리한 법률적 조언 등은 형평성에 맞지 않을 뿐더러, 법원은 중립성을 지켜야 하고, 어느 한 쪽 편을 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런데 내가 법원을 지속적으로 들락날락 거리면서 귀찮은 것인 지, 영 몰라서 저렇게 헤매는 것이 딱해 보였는 지 모르겠다.
사실, "어떻게 해 봐라.", 말 한 마디면 참 간단하게 풀릴 텐데 말이다.
아무튼, 그로 인해서 주사로부터 결정적 도움을 받았다면, 받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얼마나 소송을 헤맸는 지, 최초 납입한 10만 원의 송달료가 모두 소진하고, 추가로 5만 원의 송달료를 납부했다.
최초 소장 접수부터 피고가 소장부본을 받기까지 반 년이 꼬박 소진되었다.
받아 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 돈, 경미한 사건이니 그냥 포기할 법도 했다.
이 쯤되면 보편적인 사람들의 생각들은 아마, "인신공격을 당한 심정 자체는 십분 이해할 수 있어도, 소송을 하는 건 쉽지 않으니, 승소하더라도 실익도 없으니, 어지간한 소액 사건은 그냥 포기하는 게 낫다."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시간 낭비하고, 낸 송달료가 아까워서라도 중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결실을 이룬 것이 참 다행이었다.
내 생각은 이랬다.
나한테는 다분히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었지만, 살면서 발생하는 불가피하게 소송해야 될 일은 앞으로 생길 수 있을 텐데,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 졌을 때, 적어도 내 자신 하나는 지켜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또, 이 억울함을 평생 안고 가는 것은 죽을 정도로 싫었다.
어쩌면, 내가 삶을 마치는 순간에 이 억울함이 나를 누를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소송을 포기하지 못 한 것이었다.
그러려면, 소송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절차는 어떻게 되는 지 정도를 겪어 보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되리라 여겼다.
돈도 돈이지만, 승소로 자존감 회복도 회복이지만, 앞으로 내 자신을 법률적으로 지킬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내 삶에 그런 성장적인 측면에서 의미가 큰 것이 이 번 소송이었다.
변호사, 법무사도 없이 혼자서 승소하는 큰 수확을 거둔 것이다.
물론, 소송 비용도 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 법적으로 여러 군데 알아 보느라 고심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당연히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소송할 일은 다가오지 않았으면 싶다.
그래도 이런 일이 오면 내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것이 내 새로운 자산 아니겠는가.
조정 다음 날, 나는 피고에게 한 통의 등기우편을 보냈다.
피고와 나는 최초 나와 중고거래 당시 분쟁이 다 풀리지 않았다.
지금의 소송의 쟁점이 된 것은, 중고거래 분쟁의 내용이 아니라, 중고거래 과정 중 피고가 나에게 폭언을 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정식 재판을 통해 피고가 주장하는 문제에 대해 납득이 가는 한도 내에서 내 책임을 인정하려고 했다.
허나, 소송은 조정으로 끝이 났고, 피고의 주장은 아예 뒷전이 되어 버렸다.
피고가 비록 욕설은 한 것이 문제이긴 했어도, 일부 맞는 말을 하긴 했다.
난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었고, 그래서 편지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일부 책임이 있는 부분에 대해 과실을 인정하는 세 장 짜리 '사과문'을 썼고, 봉투에 만 원 짜리 세 장을 넣어서 변상금 명목으로 동봉하였다.
사실, 내 사과문도, 내가 변상금 명목으로 3만 원을 줄 필요도 하등 없었다.
그러나, 내가 억울해서 소송을 제기한 만큼, 피고도 조금 억울한 요소가 있다고 느꼈다.
내가 판 물건이 하자가 있거나, 파손이 있던 것은 아니어서 상품가치는 현존했으나, 먼지가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다고 강조한 것에 반해, 조금 더 사용을 해서 먼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구매자 입장에서 기분이 나쁠 법도 하다.
그 건 내가 과실을 인정하고, 비록 상품가치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모호한 표현으로 기분을 나쁘게 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다만, 항변하는 과정에서 피고가 욕설과 2차적으로 더치트 등록을 시도한 것이 큰 잘못이긴 했어도.
내가 피고에게 편지와 돈을 동봉해서 보낸 것은 순전히 도의적인 차원에서였다.
내가 억울해서 소송을 한 것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기 싫은 것처럼, 나 또한 상대방을 억울케 하고 싶지 않기에.
본 소송에서 다루지 못 한 내 과실에 대해 묵과하고 통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떳떳해 지고자, 사과문과 돈을 보냈다.
처음에 피고가 내 우편을 못 받더라.
'폐문 부재'
다음 날 피고 지역의 우체국에 전화해서, "원래 등기우편은 세 차례 정도 추가 방문하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더니, "특수한 경우에는 그래요. 일반 등기우편은 한 번만 가고 나머지는 수령인이 받으러 와야 돼요.", 그러더라.
그래서 한 번 더 가 줄 수 있냐고 부탁을 했는데, 다행히 지난 월요일에 추가 방문해서 피고가 수령하였다고 등록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로소 완전히 다 끝난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단순하다.
내가 억울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남을 억울하게 하고 싶지 않은 것.
스스로 떳떳해 지고 싶은 것.
타인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되지만, 부득이 과실이 있다면 마땅히 사과하고 배상해야 함이 옳기에.
내가 그렇게 소송을 이겼고, 나도 그렇게 상대방에게 해야 한다.
당연하다.
민사소송 조정 조서, 그리고 내가 발송한 피고에게의 사과문 수령.
고개가 끄떡였다.
"이 것으로 다 끝났다."
나도 앞으로 조심해야지, 그리고, 계속 앞으로 나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