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by 속선

나에게 신정은 별 의미가 없다.

단순 숫자가 늘어난 것에 진배없다.

다망하게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실례되는 말씀일런 지 모르겠다만.


사람들은 새해에는 늘 좋은 일들만 생기길 바라고, 새해에는 승진, 합격, 장사 대박나길 바란다고 덕담을 한다.

그러나, 새해라고 해서 좋은 들만, 안 좋은 일들만 오지 않는다.

다 내가 하기 나름이다.

내가 잘못을 한게 있으면, 새해에 온 인류가 나를 축복해 줘도 나는 안 좋은 결과를 맞이해야 하며, 내가 잘한 게 있다면, 온 인류가 저주를 해도 희소식이 올 것은 온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덕담도 않고, 악담도 않는다.

그냥 덕담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형식적 인사치레에 불과하다.

물론, 사람들 문화 때문에 새해 인사를 주고 받기는 하지만.


진짜 '새해'를 말해 보고 싶었다.

숫자가 바뀌어야 '새해'가 오는 것이 아니고, 내가 바뀌어야 비로소 진정한 '새해'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새해라서 올 해에는 금연을 하고,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다시 하고, 왜 이런 계획이 번번히 실패할까?

'새해'라서 한다는 각오로 했기 때문이다.

새해라서 한다는 생각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그런 계획들은 다분히 내 안에 잠재해 있는 묵은 꿈들, 실현하기 힘든 계획들이다.


'새해'란 것은, 타성에 젖어 사는 현대인들에게 마침 해가 바뀌기도 했으니, 이런 기회에 힘입어 나 자신을 돌아 보고, 안 좋은 버릇도 잡아보고하는 기회로 삼기 좋은 구실이기 때문이지, '새해'니까 해야 한다는 생각은 너무 수준이 떨어진다.

스스로가 바뀌고 싶다면, 성취하지 못 한 것들을 성취하고 싶다면, 새해고 헌해고를 떠나서 내가 작심한 순간부터 차근차근 정보도 찾아 보고, 계획도 잡아보고 하면 될 일이다.

왜 '새해'란 단어에 구애를 받는가.


그냥 년도 숫자만 바뀌었을 뿐이다.

인간이 규정해 놓은 '관념'이자 시간 단위일 뿐이고.

자연을 보라.

'새해'라고 해서 해가 동 쪽에 떴던 것이 서 쪽에 뜨지도 않거니와, 토끼를 잡아먹던 호랑이가 풀을 뜯지도 않는다.

자연은 또 자연대로 또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간다.

오로지 인간만이 시간을 구별하기 위해 년, 월, 일, 시를 지정해 놓고 관념화해서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관념에 '새해'란 문화적 관념을 형성, 주입시켜서 우리가 거기에 매몰되고 마는.

아무리 명소에서 해돋이를 보면 뭐하나.

정작 '나'는 그대로인데.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내가 바뀌어야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뀌고, 나를 접하는 사람들도 태도가 달라진다.

이 사람은 나날이 '새로운 날', '새로운 달', '새로운 해'를 살아갈 것이다.

타성에 젖지 않고 늘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

어제보다 더 나은, 그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그 모레는 또 내일보다 위대하리니.

이런 사람은 한여름에도 '새해'를 맞이하고, 사시사철 '새해'처럼 살아간다.


1월 1일이 '새해'란 관념을 버려야 한다.

진정한 '새해'는 내가 바뀌기로 다짐한 순간부터 시작이다.

내가 바뀌기 시작한 순간, 이 세상의 잔잔한 혁명이 시작된다.

새로운 나로 부활한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래서 나는 위대하지 않았던 것처럼 살아왔을 뿐이다.

나 뿐이 아니고, 실은 누구도 그래 왔다.

나를 둘러싼 아집, 오만의 껍질을 벗겨내면, 두텁게 쌓인 타성의 먼지를 모두 털어내면, 비로소 빛이 난다.

나는, 아니 우리는 원래부터 그래 왔다.

그 때는 오늘이 마치 최고의 전성기를 살고있는 것 같았지만, 막상 내일이 되니 오늘보다 더 화려하고, 모레는 그 내일보다 비할 수도 없는 무한상승의 전성기를 살아왔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과거를 다시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다만, 다시 미래에 그려나갈 수는 있다.

'지금'부터.

매거진의 이전글"피할 수 없다면 당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