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속선의 삶

이 마을을 떠나기로

by 속선

난 이 마을에 이사와서 고생을 많이 했다.

물론, 내가 좋아서 이 마을로 왔다.

처음 집을 알아 보고, 부동산에 소개받을 때만 해도 이 집을 참 마음에 들어 했다.

설레고 좋았다.

완만한 경사가 있는 언덕 마을이었으며, 수려한 산에 둘러 싸인 마을은 절경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마을을 떠나고저 한다.


내가 예상치 못 한 여러 변수들이 있고, 어떻게 보면 사소한 문제랄 수 있겠다.

집주인에게 섭섭한 것도 있고.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교통'이었다.

차가 없는 고로, 전적으로 모든 교통을 대중교통에 의존하는 나에게 이 마을의 위치는 별로 좋지 않다.


내 마을은 그래도 다른 마을에 비해 썩 나쁜 교통도 아니다.

드넓은 이 고장에, 아예 버스조차 다니지 않는 협소하고 작은 마을도 참 많다.

내 마을보다 더 윗 쪽에 위치하는 마을은 버스가 하루에 두 번 밖에 다니지 않는다.

그 버스노선은 읍내까지 무려 왕복 3 시간이 넘는다.

그 주민이 그 버스를 놓치기라도 한다면, 그 날 읍내는 못 간다고 봐야 하며, 만일 읍내에서 막차를 놓치면, 면내에 도착해서 꽤 비싼 금액의 택시비를 물어야 한다.


내 마을은 면 중심지까지 25 분, 읍내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안 된다.

버스노선도 핵심 노선이라 그래도 자주 다니는 편이다.

그럼에도 왕복 2 시간이 넘는다.

진짜 문제는 읍내 왕래가 아니라, 서울을 갈 때도 교통이 좋지 않게 개악되었다.


작년 계엄령 선포 무렵, 코레일은 그 전부터 임금 문제로 파업을 일으켰다.

그 후로 파업이 해제되고 시간표가 바뀌었는데, 나한테는 정말 최악의 시간표로 바뀌게 되었다.

그 전에는 열차를 타고 면에 도착하면, 거기서 대기하고 있던 느즈막의 버스를 타고 집에 올 수 있었던 것이, 기차를 타고 도착하면 버스 막차를 탈 수가 없게끔 바뀐 것이다.

막차를 못 타면, 면에서 집까지 택시비가 한 25000 원 남짓 된다.

아무튼, 여러 차례 기차, 버스를 갈아 타야해서 번거롭고, 피곤하고, 경비가 만만치 않다.


내가 요새 건강이 좋지 않아 자주 병원을 왕래해야 하는데, 좀 괜찮게 한다는 병원을 가려면 서울을 가야 한다.

시골에서는 기초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전문적인 병원은 더 발전된 인접 도시로 나가야 하거나, 아예 광역시나 서울로 나가야 한다.

이 곳에는 장례식장은 있으되, 산부인과 병원은 없는 곳이다.

큰 규모의 종합병원 따위는 아예 꿈도 꾸지 못 하고, 영세한 동네 의원만 조금 있을 뿐이고, 그 마저도 한 번 안과를 가 봤더니, 사람들로 북적인다.

버스 노인들이 하는 대화는 대부분 병원 때문에 인접 도시로 간다는 얘기들이 적지 않다.


시골 현실이 이렇다.

나도 여기에 속한다.

아무리 이 고장이 좋아서 뿌리를 내리고 싶어도, 아파 보니 내가 견디지 못 할 지경이다.

아픈 사람한테는 병원이 곧 학교이고, 직장이다.

글쎄, 몇 년을 이 고장에 더 살 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 고장을 아예 떠날 지도 모를 일이다.

떠나기 싫어도 병원 왕래 때문에 어쩌지 못 한다.


"이래서 사람들이 점점 떠나는구나."


분명 낙후된 시골은 맞다.

그런데, 이 곳을 떠나는 젊은이, 고향 토박이들의 심정은 분명 내키지 않았음이 분명할 것이다.

발전된 인접 도시보다 싸지 않은 물가, 연고가 없으면 직업적으로 비전이 없는 고장, 무엇보다 아플 때 돈 싸들고 인접 도시나 서울, 광역시로 날 잡고 원정을 가야하는 현실이 떠나지 않으면 살 수 없게끔 등을 민다.


원님, 군수님이 제 아무리 좋은 정책을 펼쳐서 인구를 유치시키려 해도, 병원은 어쩌지 못 한다.

이 고장에는 응급실이 없다.

아프면 무조건 몇 시간 걸리는 타지로 이송돼야 한다.

지난 해, 윤석열 대통령이 의료개혁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기로 강행하는 뉴스를 접했을 때, 아주 먼 미래지만, 그래도 낙후, 소외된 지역의 의료 혜택의 확대란 희망을 가졌다.


젊은이, 노인, 따질 것 없이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는 이유는 다른 게 없다.

아프면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만 갖춰 있다면, 타 도시로 유출하는 현상은 현저히 감소한다.

의대 정원 확충은 이런 의료 취약지역의 갈증을 해갈하는 유일한 마중물이다.

이 걸 두고 무슨 의대 정원에 대해 정부 비판을 하는 이해관계자들, 당신들도 이 곳의 아버지, 어머니 뻘들의 노인들처럼 똑같이 아파 봤으면 싶다.

병 자체가 괴로워서가 아니라, 아프면 하루 날잡고 이역만리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가야 하는 현실을 말이다.

이 분들은 그래서 아픔이 무섭다.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들이여, 타인의 아픔으로 폭리를 누리지 마라.

의사면, 정성껏 환자를 낫는 데만 정성을 기울여라.

순수해 져야 한다.

의료가 '복지'의 관념으로 국민들에게 제공돼야 할 '서비스'이지, 이 것이 무슨 시장에서 사고파는 '소비재화'인가?

이런 시골의 참혹한 현실을 알고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다면, 인정하겠다.

그래도 젊은 나는 그 전에 이 고장을 떠날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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