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사랑하면서 나를 사랑한다."

by 속선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주는 것도 없고, 받고자 하는 것도 없이.

물질이나, 여타의 호의를 베푸는 것은 주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존재가 곧 나와 같음을 인식할 때,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다.

분리된 개체 같지만, 결국 우리는 커다란 우주의 한 덩어리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너가 즐거우면 나도 덩달아 즐겁고, 너가 슬프면 나도 슬프다.


노력은 사랑이 아니다.

널 사랑하니까, 널 위해 노력한다는 말은 사랑을 모르는 이들의 고백일 뿐이다.

사랑은, 사랑을 하기 위한, 사랑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을 완전히 끝낸 자들이 할 수 있다.

사랑은 그 기나긴 여정 끝에 피어 나는 한 송이 꽃이지, 꽃은 꽃을 피우기 위해 아무 노력을 한 바가 없다.

무심히 길을 지나치는 이들에게 아름다움을 주고자 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벌이 날아들어 꿀을 채취하기 위해 꽃으로 모여드는 것도, 벌을 유혹해서도 아니고, 그저 벌이 와서 꿀을 얻기 위해 앉는 것을 말없이 포용할 뿐이다.

꽃은, 그저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얻고자 함도, 주고자 함도 없다.

다만, 내 존재로 누군가를 미소짓게 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을 가치있게 할 수 있다면, 다만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존재만으로 사랑이다.


너의 존재를 통해서 나를 깨닫게 되고, 너도 나를 통해 너를 깨닫는다.

우리가 완전한 동일체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같이 즐거워 하고, 같이 아파할 수 있다.

나를 위해 네 것을 빼았는다면, 너는 아플 것이고, 그 아픔은 결국 나에게 전달된다.

정녕 사랑한다면, 그래서 네 것을 뺐을 수가 없다.

비록 내가 아파할 지라도, 네가 아프지 않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너를 위해 아파할 것이다.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보다 더욱 크기에.

너가 아프더라도 내 이익을 위해 네 것을 뺐는다면, 그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것이 자명하다.

그 게 곧 '욕심'이다.


모든 것이 결국 '하나'라는 것.

그렇기에, '너를 위한 것이 곧 나를 위한 것이고, 너를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임을.

길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타인'도 결국 하나이고,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지구 어딘가에 존재하는 누군가도 결국 나와 '하나'이다.

지금은 모두가 서로를 멀리하고, 미워하고 다투고 있지만, 우리는 그 사랑을 향한 여정에 있을 뿐이다.

모두가 우리는 '하나'임을 깨달을 때, 꼭 연인과 부부, 부모와 자식이 아니라도 모두를 사랑할 수 있다.

모두가 서로를 위해 상생하며 사는 세상.

그 것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큰 사랑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면서 나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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