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때는 어머니께서 식수로 보리차를 항상 끓이던 때가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주전자가 항상 다 끓었다는 요란한 소리를 낼 때면, 어머니는 보리차물이 넘치는 주전자를 향해 황급히 달려가, 얼른 가스불을 끄시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그 때는 왜 보리차를 끓이는 지 잘 몰랐다.
막연히, 수도물을 그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것 정도.
물론, 그 하나로 충분한 이유였지만.
그 중에 왜 하필 '보리차'였는 지는 항상 의문이었다.
다른 곡물들도 많았을 텐데.
보리 말고도 이따금 말린 옥수수알을 넣어서 '옥수수차'를 끓였던 것 같기도 했지만서도.
보리차 다음으로 어머니는 결명자도 많이 끓였다.
결명자는 써서 싫다고 해도, 어머니는 "결명자가 눈에 좋은 거."라면서 타이르셨다.
그런 답변을 들을 때면, "눈에 좋은 것 하나도 필요 없으니, 저런 쓴 것 좀 안 끓였으면 좋겠다."다며 투덜댔다.
여튼, 식수로 먹는 물을 왜 보리'차'라고 하는 지도 모르겠고.
모름지기 '차'라고 하면, 녹차나 홍차의 티백차를 우아한 도자기 찻잔에 부어서 귀부인들이 고상한 담소를 주고 받는, 어릴 때는 그런 것만을 차라고 생각했기에.
어린 마음에 그 것이 의문이기도 했고, 한편으로 이상한 심보의 불만이기도 했다.
왜 서민들이 식수로 끓이는 곡물의 물을 '차'라고 하는 지.
하얀 부직포팩 안에 보리알들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뭐, 뜯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보리차 끓이는 일은 늘 어머니 몫이었고, 나는 항상 어머니가 그 부직포로 된 티백을 넣고 끓이던 모습만 봐 왔으니까.
다 끓고 나면, 어머니는 그 것을 꼭 '훼미리병'에 부어서 냉장고에 식혔다.
그 '훼미리병'이란, 델몬트 오렌지 주스가 담긴 반투명 무늬의 유리병을 일컫는다.
글쎄, 한 1 리터 짜리였을까, 철로 된 뚜껑을 돌려서 열 수 있게끔 돼 있으며, 오른 편에는 손으로 잡기 용이하도록 움푹 들어가 있는 형태이다.
90년대를 기억하는 세대들은 아마 익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보리차를 훼미리병에 넣었느냐면, 당시에 변변한 식수통을 못 구해서는 아닐 것이다.
당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델몬트 오렌지 주스를 사면, 자연히 그 쓸 만한 유리병을 공짜로 쓸 수 있으니까.
뭐하러 플라스틱 물통을 돈 주고 살까?
그 훼미리병이란 게 유리병 치고 제법 두꺼워서 튼튼하고, 손잡이 형태도 있으며, 보리차를 붓기 쉽도록 뚜껑도 넓직하게 돼 있다.
그런 실용적인 식수병을 놔두고 따로 돈 주고 살 이유가 하등 없었다.
어쩌면, 당시 주부들은 오렌지 주스를 즐겨서가 아니라, 단지 그 '훼미리병'을 얻기 위해 순전히 돈을 내고 샀다 해도 공감 못 하지 않을 듯 하다.
오렌지 주스를 마신 후 유리병이 '덤'이 아니라, 먼저 '덤'으로 담긴 오렌지 주스를 마셔서 해치우고 난 후, '훼미리병'에 보리차를 넣기 위한 것이 궁극적 목적이라 설명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 때는 그랬다.
수돗물을 믿지 못 했고, 특유의 묘한 단 맛은 필시 우리 몸에 안 좋은 화학약품의 맛일 거라고 여겼다.
나 역시도 초, 중학교 시절, 더워서 벌컥벌컥 마셔댄 운동장 식수대의 수돗물을 마신 후, 머지 않아 심한 배탈을 느꼈다.
그 후로, "수돗물은 역시 날로 먹을 게 못 된다."고.
나 뿐이 아니고 8, 90년대의 거의 모든 가정이 이런 수돗물의 불신을 이유로 물을 끓여 먹었다.
훼미리병은 아무리 열심히 씻고 헹군다 한들, 아예 병 내부 표면에 배어 있는 오렌지 주스를 완전히 씻어 내지 못 했고, 그 상태에서 그대로 뜨거운 보리차를 부어 대니, 갓 씻어낸 훼미리병에는 늘 보리차와 오렌지 주스가 혼합된, 이상한 맛이 났다.
그래서 나는 갓 씼어낸 훼미리병의 보리차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구수한 보리차에서 희안한 오렌지 주스의 신 맛이 났기에.
그 것도 많이 쓰다 보면 결국 완전히 희석되어 오렌지 주스의 맛은 나지 않게 되었고, 그 때 즈음이면 훼미리병 표면에 붙어 있는 초록색 상표 스티커도 잦은 설거지로 인해 너덜너덜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 스티커를 그냥 놔 둘 수도 있었지만, 너무 가루가 되어 떨어진다거나, 보기 흉할 정도가 되면 아예 다 떼어 버렸던 것 같기도 하다.
글쎄, 그러다가 그 훼미리병도 실증날 때가 오면, 어머니는 새 훼미리병으로 바꿔 버리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새 훼미리병의 보리차는 또 다시 맛보기 싫은 시큼한 맛을 느끼게 했다.
훼미리병은 늘 저렴하고 구하기 쉬웠기에, 게다가 당시에 훼미리병은 슈퍼에서 공병을 150 원씩이나 쳐주는, 여러 모로 본전을 뽑을 수 있는 용이한 녀석이었다.
그러던 보리차도, 훼미리병도 어느 샌가 우리 집에서 더이상 자취를 감추었다.
정확하게 언제부터인가 모르겠지만, 2000 년대가 들어서면서, 아예 안전한 정수기를 들였던 것 같다.
당시에는 그래도 아직, "뭐 하러 돈 주고 물을 사 먹어.", 하는 인식이 있었기에.
건강 회복을 위해 체질에 관련된 음식을 찾다가, 문득 '보리'를 접하게 되었고, 오랫 동안 잊고 있었던 보리차, 그리고 훼미리병에 대한 추억도 떠 올랐다.
서울 상경을 앞둔 오늘 밤, 한 자락의 추억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