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만에 오디오와 함께 한 아침이다.
즉흥적으로 신형원의 '개똥벌레'를 선곡하였다.
초등학교 시절에 이 노래를 많이 들려주고, 부르게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어린 마음에 이 곡을 별로 달가워 하지 않았다.
이유를 꼬집어 설명할 순 없지만, '다른 노래도 있을 텐데 왜 이 노래만 부르게 하는 걸까?'하는 마음이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난 이 노래를 좋아 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여 즐겨 부를 수 있는 노래인 데다가, 한국적 정서와 정겨운 가사인 탓에.
그동안 글을 쓰지 못 했다.
병원을 꾸준히 통원하였지만, 아직 기저질환에 대한 진단을 받지 못 했다.
최초에 면역력과 무기력증으로 인한 갑상선 전문의원을 찾았으나, 의외로 갑상선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의사가 심지어 당뇨병까지 의심하여 당뇨검사를 받았으나, 모든 수치는 정상권이었다.
나는 차라리 뭐라도 하나 병 진단을 받기를 원했다.
증세는 분명히 느끼고 있는데, 지금처럼 진단을 받지 못 한다면, 얼마나 여러 병원을 수소문하면서 힘든 세월을 보내야 할 지 모르기에.
예전에는 조금만 활동해도 지쳤다면, 이제는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숨이 차다.
밤마다 운동삼아 공활한 도로를 달렸던 것도 이제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집 안에서 겨울옷을 아직도 벗지 못 한다.
분명 면역력의 저하 때문일 것이다.
다음에는 대학병원이나 더 큰 병원의 내과를 예약할 요양이다.
생각보다 증세가 심각함을 이제사 통감하게 된 것이다.
호기롭게 사이버대학에 진학해서 공부를 시작한 것도 진전이 없다.
교수님의 강의가 눈에도, 귀에도 들어 오지 않는다.
온통 병원 생각 때문인지, 원.
머리 속에 공부가 아닌, 현실적인 미래 구상과 계획으로만 가득하다.
과제 제출 기한이 머지 않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사태가 이 지경에 미치니, 글은 마땅히 뒷전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뉴스나 여러 화제거리를 보고도 글을 쓰고픈 마음이야 한아름이었지만, 어떻게 글을 전개해야 할 지, 또 컴퓨터에 앉아 있을 기력도 마땅치 않다.
더군다나 나는 지금 공부를 시작한 학생이 아니던가.
글을 쓸 시간이 있으면, 이 번 학기 수업이나 책 한 장을 더 봐서 좋은 성적에 매진해야지, 예전처럼 한가로이 글을 쓸 여유가 없다.
이따금 브런치 애플리케이션에서 글을 쓰라며 알림이 울린다.
왜 안 쓰고 싶겠나.
법학에 '미필적 고의'란 단어가 존재한다.
형법에서 다루는 단어인데, 어떤 행위를 하기 앞서, '반드시 그 행위를 실행해야 할 필요성의 존재함이나 타인으로부터 강제받은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가 범행 성립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실행한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범죄가 될 테면 되라지.", 식인 것이다.
내 절필도 이렇게 성립되었다.
"반드시 절필일 이유는 없지만, 이따금 간간히 글도 써 볼 게요."
아픈 것이 죄냐?
'죄'이지.
독자들을 위해 좋은 글을 써야 함에도 그 결과물을 제공 못 하니.
검색을 통해 방문한 뜨내기 방문자야 그렇다 치더라도, 꾸준히 방문해 주는 브런치 독자, 라이킷을 눌러 주시는 단골 분들께 심심한 마음이 있다.
병의 치료와 학업으로 당분간 자주 글을 올리지 못 할 것 같으나, 그래도 틈만 나면 글을 써보리라는 다짐으로 이 글을 마치며, 지금부터 속선의 브런치스토리는 '미필적 절필'을 선언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