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여자 혼자라고 그랬건만, 웬 승용차에서 남녀 넷이 내리더니, 내 집의 문 앞까지 말소리가 가까이 들려 온다.
이윽고 벨소리가 울렸고, 나는 웃는 낯으로 그들을 환영했다.
"들어 오세요, 천천히 보세요."
까닭은 모르겠지만, 부동산에서는 여자 혼자 보러 갈 거라고 말하길래 그러려니하고 있던 찰나였다.
일행 넷은 그래도 화기애애한 모습들이었다.
그들은 내 집 안에 발을 들이자마자 탄성이었다.
그럴 법도 한 게, 거실 창이 상당히 컸는데, 그 창 밖으로는 맞은 편 산의 주봉과 산맥들이 봄의 옷으로 멋을 내며, 한껏 찬란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따라 날은 또 어찌나 온화하고 화창하던지.
일행들은 채 5분 남짓 둘러 보더니 집을 나간다.
한 3분 둘러 볼 때 즈음이었나, 이미 답은 나왔다는 듯이 일행 중 남자 한 명이 "해, 해.", "그냥 살어, 살어."를 연신 외쳐댔으니.
사실, 흠은 커녕, 누가 봐도 나무랄 데가 없는 집이었다.
하자가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실내는 황토벽돌과 편백나무 루바로 내장재를 마감했고, 원채 나는 정리정돈과 청소가 잘 돼 있는 터라, 분명 좋은 인상을 받을 거라고 예감은 했었다.
일행들과 살짝 말을 섞어 봤는데, 넷은 한전 소속이라고 했든지, 아무튼 그랬다.
넷 중에 여자 한 명만 상주를 할 거고, 나머지들은 뭐 그냥 겸사해서 둘러 보러 왔는 듯 보인다.
부동산 사장은 그래서 여자 혼자라고 얘기한 모양이다.
일행을 보내고 나서 부동산 사장하고 향후 계약진행하고 에어컨은 있는지 등의 통화를 몇 차례 하였다.
집주인 연락처를 오히려 나한테 물어본 걸 보아, 저장한 목록이 길어서 못 찾았나 보다.
하긴, 그 부동산 사장은 사무실에 거의 출근 자체를 않던 사람이었다.
나도 이 집을 최초 계약하고 나서 인사차 들르겠다고 한 것이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나갈 때가 되었다.
아무튼, 시골 부동산이라 도시처럼 매일처럼 출근할 일이 없기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보러온 일행과 집주인과의 계약 여부였다.
구두 계약은 의미가 없고, 계약금 지불하고 가계약서가 써져야 효력이 있는 것이기에.
다행히도 집을 보러 가고나서 부동산 사장이 계약서를 쓰게끔 나섰나 보다.
"어어, 계약됐고요, 언제 집을 비울 수 있어요? 이 사람들은 빠를 수록 좋다던데?"
"글쎄요, 이제 슬슬 알아 봐야죠. 저도 나갔다고 하니까 조금 더 서둘러 볼 게요."
"이 사람들한테는 제가 한, 한달 반을 얘기해 놨어요. 되겠어요?
"그만하면 될 거에요. 뭐 장담은 못 하지만, 여기저기 보러 다녀야죠."
계약이 됐다는 부동산 사장의 전화를 마치고, 나는 열심히 인터넷으로 올라온 매물들을 물색하고 있었다.
나에게 이 작업은 나를 여전히 설레게 하면서도, 오래 해온 익숙한 작업이기도 하다.
'1000-50 중곡동 방3, 보증금 월세 조금 조정 가능'
'500-40 수유동 백년시장 4층, 관리비 5만원'
'500-33 창동, 아주 저렴하고 서두르실 매물'
다 서울치곤 저렴하기 짝이 없는 월세방들이다.
원래는 강북 시내, 종로구나 중구 쪽을 훨씬 살고팠는데, 도저히 매물이 귀한 데다 비싸서 아쉽기만 했다.
종로구는 이따금 내 예산에 근접한 매물을 찾을 수 있었는데, 중구는 아예 도심 한 가운데라 강북이라도 강남 시세 버금가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버려 10년이 넘었지만, 당시 신당동은 시세가 이러지 않았다.
그래도 주택들이 있던 편이었고,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지난 주, 서울에 올라 갈 때 신당동을 둘러 봤는데, 완전 이태원 경리단이나 북촌 비스무리하게 상업화가 되어 버렸다.
이제사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이 되던 찰나, 아랫 입술 안 쪽이 질근 깨물려졌다.
"이러니..."
예전에 부동산에 들어 갈 때는 젊은 사람치곤 조금 건방졌다.
그 때는 그래도 나름 푼돈이라도 주물렀고, 젊은 패기라면 패기랄 수 있는 호기도 부렸던 시기였기에.
그렇게 세상물정 모르고 서울 시내에서 설치고 다녔으니, 그렇게 6년이나 버틴 게 용했다.
지금은 서울에서 반지하방을 면하면 다행인 처량한 신세 따위가 되고 말았다.
신당동의 부동산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서 바깥에 붙여 놓은 매물 시세를 보면서 망설이게 되었다.
내가 가진 돈으로는 아예 반지하방도 얘길 못 꺼낼 정도로 올라 버렸다.
예전처럼 호기롭게 가슴펴고 부동산 사무실 안에 들어가서 이 금액에 나온 집들이 있느냐는 물음조차도 나오지 못 했다.
물론, 애초에 돈도 변변치않은 녀석이 단 번에 서울 시내에 월세를 구한다는 게 말이 안 되기도 했지만.
"차선책을 택하자. 서울로 다시 돌아간다는 게 어디냐."
내일 청량리행 새마을호를 예약해 뒀다.
웃기게도 사람많아 학을 떼고 살았던 관악구 쪽은 제법 많이 올랐다.
시세가 이렇지 않았던 걸로 아는데, 하여튼 이 것으로 완전히 그 초록색 동네에 미련을 버리게 해줘서 다행이기도 하다.
내일 청량리 도착해서 점심 들고, 강북구 쪽을 한 번 싹 둘러 보고 올 작정이다.
꼴에 겉멋은 들었는지, 여전히 시내 쪽에 미련이 많이 남지만, 주제 파악하고 정신차렸으니 겸손한 태도로 부동산 사장님들한테 매달려 봐야겠다.
아까 낮에 내 집을 보러 왔던 네 명의 일행 중 한 명이 연신 한 말, "살어, 살어!", 과연 나도 내일 본 집들 중에 마음에 들어하며 그 얘기를 똑같이 하게 될 수 있을까?
'속선'이라는 설탕을 이 시골에 다 녹이지 못 한 채, 다시 서울로 돌아 오게 되었다.
글쎄, "돌아 오게 되었다."는 말 자체에 어쩌면, 나는 애초에 도시사람의 때를 벗길 수 없었나 보다.
다만, 이 시골에 잡초같은 뿌리를 내리려 했던 것은 진심이었다.
모르겠다.
내 남은 여생의 설탕을 과연 미아리에 녹일지, 아차산에 녹일지, 아니면 그 집값 싸다는 도봉구에 녹일지.
하다 못 해, 어릴 때 추억이 있던 돈암동만 해도 좋으련만, 거기도 만만치 않은 동네가 되어 버렸으니.
다만 장담컨데, 나는 돈을 모으고 나면 다시 시내로 나갈 거다.
지금이야 절뚝거리는 패잔병의 독백일지라도.
청량리에 도착하는 열차여, 내일은 어쩌면 많이 무거울지 모르네.
내일은 '꿈'을 한가득 싣고 가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