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시골을 넘나들다 보면, 늘 넉넉하고 평온한 시골의 풍경과 반대로, 도시는 출근길 지하철 안의 겨우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바닥만큼이나 각박하다.
시골을 좋게, 도시를 부정케 표현하고자 함은 아니지만, 어쨌든 현실은 그러하다.
시골은 늘 넉넉하게 살아 가는 탓에 상대방을 각박하게 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도시는, 상대방이 나를 배려하지 못 한다면, 나도 상대방을 배려할 이유가 없다.
이 둘은 이토록 다르다.
나 역시도 도시인의 때가 여전하고, 미처 동화되지 못 한 시골인의 습성이 뒤섞여 있는 묘한 중생이 되어 버렸다.
시골과 도시를 오갈 때 가장 극적으로 체감하는 것이 한 가지가 있다.
그 것은, 시골에서는 무조건 버스에서 내가 원하는 자리에 착석해서 종점까지 앉아 갈 수 있던 반면, 도시에서는 자리를 가려가며 앉아 가는 것은 모래밭 속 바늘 건지기이다.
버스나 지하철이나, 오히려 불편한 자리라도 앉아 가는 것이 행운이다.
또, 다양각색의 외국이 많이 타는 광경을 볼 때마다, '역시 서울은 서울이구나.', '내가 서울에 와 있구나.'하는 확인을 다시금 하게 된다.
이제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다시 시골로 귀환할 길이다.
그 기차역에는 내가 웬지 마주하기 싫은 사람이 꼭 있다.
어떤 사소한 다툼이나 그런 것이 있었던 건 아닌데, 마주하면 웬지 내가 불편한, 아무튼 그런 사람이 한 명 있다.
그 사람은 별 잘못은 없는데, 내가 좀 많이 예민해서일 테다.
내가 이 번 여행에서 많이 지친 탓도 있겠지만, 가급적이면 그 기차역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유독 컸다.
그럼과 동시에 불쑥 내 안에 싹이 튼 것이, ' 이건 미안해 할 일이 아니란' 것이었다.
이제 나도 도시를 왕래하는 나날이 들면서, 시골물보다 도시물이 더 많이 들어 버린 것일까?
그렇다.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은 그 역에 있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고, 다만, 그런 내가 그를 포용하지 못 해서이다.
그렇지만 미안하다.
어쩌다, 미안해야 할 사람이, 미안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려서.
이상한 얘기처럼 들릴 것이다.
품이 큰 사람은 상대방의 부족한 모습을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지, 싫다는 느낌이 든 것은 상대를 포용하지 못 한다는 것이고, 그 것에 대해 미안해할 줄 알아야 한다.
허나, 그 때의 나는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으니, 이 것이야 말로 미안해할 일이 아니던가.
나는, 나와 상관 없는 사람을 꺼려하는 것에 대해 '미안하지 않아서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