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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1. 2023

기업 탐구: 신라면 블랙으로 들여다 본 농심 1

2020-12-30 15:53:14

2011 년에 기존 신라면보다 더욱 고급스러운 신제품으로 출시되었으며, 국민 라면이라는 신라면의 후광을 업고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물론, 기존 신라면보다 2.5 배에 달하는 고가 논란도 흥행에 한 몫을 톡톡히 했다. 

기존 신라면보다 맛이 좋다는 호응도 있었지만,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나 또한 그랬다. 

건더기가 더 들어 가고, 맛이 좋은 것은 맞는데, 그 만한 값을 치룰 정도로 월등한 맛이라 보기도 애매했다. 

면발은 크게 달라진 점은 없고, 주목할 것이라면 그나마 하얀 우골 스프였다. 

겨우 이 정도로 고급화라고 포장해서 내세울 수 있는 정도인가 의문이고, 상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상당수였었다. 

그 때 당시에 어느 지식인 층(식품 관련된 교수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확하지는 않음.)이 어디까지나 라면일 뿐인데, 어찌 이 걸 보양식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성토했었던 것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농심의 의욕이 지나친 것일까, 신라면과 농심의 브랜드 파워를 믿고 너무 자신감이 넘쳤던 것일까. 

공정거래 위원회의 허위, 과장 광고로 빌미로 시정명령을 당했다. 

문제가 된 문구는, “설렁탕 한 그릇의 영양을 그대로 담았다.”, “완전식품에 가깝다.”였다. 

관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 것은 넌센스이다. 

설렁탕을 어떻게 제조하느냐에 따라 그 것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설렁탕을 아주 부실하게 만들면, 도리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고, 풍성하게 잘 만들면 비교가 될 수 없는 평범한 라면 한 그릇에 불과한 것이다. 

설렁탕과 견주긴 했으나, 어떤 특정한 설렁탕과 비교한 것도 아니고, 막연한 표현이다. 

또한, 완전 식품에 가깝다는 표현도 한 번 보자. 


어차피 영양과 성분 표시가 되어 있고, 이 것을 대놓고 어길 기업은 없을 것이다. 

신뢰할 만 한 영양 표시라고 한다면, 완전 식품에 가깝다는 표현은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영양의 비율의 관점은 완전 식품의 요건 중에 하나 아닌가? 

완전 식품이란 무엇이라고 보는가. 

단 한 끼의 식사나 음식물로도 우리 인체에 필요한 모든 영양 성분이 고루 균형있게 갖춰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헌데, 아무리 잘 만든 라면이라고 해도, 기름에 튀긴 밀가루 음식이다. 

이 것을 어찌 완전 식품이라 볼 수 있겠느냐 말이다. 

허나, 이 문구에서 주의할 것은, 완전 식품에 ‘가깝다’라는 표현이다. 

완전 식품의 기준이 제대로 정립된 것도 아니고, 어디부터 완전 식품이고, 아니고를 가르는 뚜렷한 기준은 없다. 

고로, 신라면 블랙이 완전 식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농심 측에서 완전 식품이라고 명확히 표현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농심이 구매자를 호도하려는 저의가 드러 났다는 것이다. 

어차피 농심은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위시한 유통력과 영업력을 충분히 갖춘 회사이다. 

더군다나, 전 국민이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무후무한 신라면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본질적인 맛에 충분히 자신이 있을 진데, 뭐가 아쉬워서 저렇게 대중을 미혹시키는 문구를 써야 했는가 말이다. 

가장 문제가 많았던 가격 책정도 살펴 보자. 


정가가 1600 원으로 출시가 되었는데, 당시 시중 라면이 싸게는 500 원부터 7~800 원 대에 책정된 것을 비교하면 꽤나 비싼 가격이었다. 

프리미엄만 강조를 했지, 실질적으로 구매자를 납득시킬 만 한 품질과 내실을 갖추지 못 했다. 

그래 봤자 라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프리미엄 제품, 명품으로의 확장은 분명히 반길 만 한 것이다. 

값을 지불하는 이가 납득시키기만 하면 이런 가격 논란은 없다. 

모두가 고급 스포츠카가 수억 대를 호가하는데도 그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가 없다. 

명품 핸드백이 수백 만 원이어도 문제 제기를 하는 이들이 없다. 

이미 그 브랜드들은 구매자를 납득시켰으며, 이 것이 상식으로 통용되어 버릴 정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런 고가 제품을 구매하는 이들은 재력가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로 인정해 버린다. 

평범한 자가용도 엄연한 자동차이고, 시장에서 파는 핸드백도 충분히 제 기능을 한다. 

자동차를 비교하기 곤란하다면, 핸드백은 시장 제품보다 명품이 기능이 뛰어난 것이 아니다. 

쓰는 용도 자체는 같다. 

다만, 원단이나 디자이너의 노동, 제작의 난이도와 브랜드의 가치를 고려해서 책정된 가격인 것이다. 

라면도 안 될 것이 없다. 

이런 점에서 신라면 블랙이 프리미엄 라면 대중화에 앞장선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라면과 다를 바 없는 음식인 김밥도 그렇지 않은가. 


바르다 김선생부터 고봉민 김밥이란 브랜드가 고급 김밥 대중화로 잘 알려져 있다. 

평범한 보통 김밥이 적게는 1.5 배 내지는, 2 배에 달하는 가격임에도 사람들은 꾸준히 사간다. 

그만한 내실과 품질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반면, 신라면 블랙은 가격에 비례하는 내실과 맛을 보여 줬어야 했다. 

신라면 블랙을 시식해 본 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갸우뚱이었다. 

기존 신라면보다 맛이 좋기는 한데, 2 배에 달하는 가격을 내고 먹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기존 신라면이 더 낫다는 반응도 심심치 않았다. 

신라면 맛의 핵심은 소고기와 표고 버섯 베이스의 칼칼한 매운 맛인데, 유순한 맛이 영 탐탁치 않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고, 나 또한 두 라면을 번갈아 가면서 비교해 봤지만, 다른 의견을 낼 수 없었다. 

깊은 국물 맛 하나는 얻고, 신라면 특유의 매콤함은 잃은 느낌이었다. 

신라면 블랙의 고가 출시를, 항간에는 꼼수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기존 신라면을 단종시키고 신라면 블랙을 출시했다면 맞는 말이 될 수는 있겠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시장의 자율성에 맞긴 것이기 때문에, 꼼수라는 표현은 무리이다. 

프리미엄 라면으로 인정받으려 했으나 실패한, 정확히 그 것이다.


신라면 얘기를 더 하자면, 어린 시절, 학창 시절까지 라면하면 무조건 신라면이었다. 

이 의견에 이의를 낼 자는 없을 것이다. 

분식집에서도 무조건 신라면을 취급했었고, 다른 라면을 끓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신라면 맛은 대중들의 입맛을 확실히 잡았다. 

국민들이 유일하게 라면을 박스 채로 사서 쟁여 놓고 먹는 라면, 라면 시장에서 수많은 제품들이 출시됐다 사라 져도, 꿋꿋하게 점유율을 지켜온 라면이 신라면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기인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고가 정책을 내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대중들의 눈높이는 녹록치 않았다. 

신라면 아니어도 선택의 여지는 충분히 있었고, 라면은 어디까지 인스턴트 저가 식품이라는 뿌리 깊은 인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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